수단 이태석 신부님의 미니홈피

수단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는 이태석 신부님의 소식을 전하는 작은 미니홈피입니다.

미주 아프리카 희망 후원회 웹사이트에 보다 많은 정보가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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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W. 182nd Street,
Torrance, CA 9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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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WithLeeTaeSuk




이태석 요한 신부님 가시는 길에...

하느님께서는 이태석 신부님을 너무 사랑하시어 그리도 빨리
보고 싶으셨나 봅니다.
우리들 마음에는 아직도 젊고,
해야할 당신의 사업들을 뒤로 한채 말입니다.

성직자로서, 의자로서, 교육자로서, 또한 건축가로서
이 많은 일들을 혼자 하시는 모습에 내 가슴을 치며
주님의 동참 한지도 일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사람에게 해 준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직자로서 일생을 바치신 신부님의 그 맑은 영성의 씨앗들이
이제는 저희들의 몫으로 열매를 맺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낌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아주 열약한 수단!!
그 톤즈땅에서 해맑은 눈망울을 가진 어린아이들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온 몸과 마음으로 헌신과 희생을 다하신 한국의 슈바이쳐 이택석 신부님을
이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사모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
진정 당신은 우리 마음에 사랑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새겨 놓으신분이십니다.
어지러운 이 세상에
우리들의 눈을 뜨게 해 주셨고, 귀를 열게 하셨으며,
마음을 움직이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의 믿음에 그 믿을을 더하여, 진정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려 합니다.

이 세상에서 청지기 역활에 충실하셨던 당신의 모든것을
닮을것입니다.
수 많은 이메일을 오가면서 저와 같은 나이로 친한 벗으로서 다가 오셨고,
제 마음까지도 보담들어 주셨던 일들을 이제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랑의 실천만이...
이것이 주님이 저희 모두에게 원하시는 일임을 깨닫고,
생을 다하는 그 날까지 저의 모든것을 봉헌하려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9~20절에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저의 삶속의 레마로 묵상하며 실천하려고 합니다.

신부님 손을 한번도 못 잡아 봤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서로를 껴 안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신앙안에 한 형제로서
진솔한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이태석 요한 신부님!!
진실로 진실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시간에 주님안에 아주 편안히 잠들고 계실
신부님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미주 아프리카 희망 후원회
간사 이인석 비오 드림



김태호(안토니오), 이승준(알렉산델), 한만삼(하느님의 요한) 신부 등 교구 사제 3명이 2009년 3월 25일 수단에 파견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찾은행복- 이태석 신부님

오는 8월 28일 목요일 본당에 오시는 이태석 요한 신부님에 관한 동영상입니다.

[가톨릭 신문] 수단 파견 김태호,이승준,한만삼 신부

수단 파견 김태호,이승준,한만삼 신부

[가톨릭신문 2008-03-02]

김태호(안토니오), 이승준(알렉산델), 한만삼(하느님의 요한) 신부 등 교구 사제 3명이 3월 25일 수단에 파견된다.

이 번 선교사 파견은 룸벡교구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세계 교회에 기여하는 수원 교구를 위한 교구장 최덕기 주교의 의지 또한 크게 작용했다. 자동차 및 포클레인 정비 기술, 응급 의학과 목수일, 도예를 배우는 등 아프리카 선교 활동 준비에 바쁜 젊은 사제들을 최근 교구청에서 만났다.

▲ 미지의 땅으로 향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각오와 소감은.

- 김태호 신부 : 10년 20년 후에 지금의 나에게 스스로 다짐한 말이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미래는 누구나 장담할 수 없는 것이지만 늘 기쁨 속에서 살면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이승준 신부 : 아프리카로 가는 심정을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저 ‘가야하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기에 가는 것입니다.

- 한만삼 신부 : 우리교구가 세계 교회와 일치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 자신으로서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 수단 현지에서의 사목 활동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 김태호 신부 : 우선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일’을 하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려고’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조금씩 배운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 한만삼 신부 : 저희들은 교회 본연의 사명인 영혼의 구원과 신자들을 위한 교육사업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지금 당장 아프리카에 가서 특별한 일을 벌이고, 사업을 전개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현지에 도착하면 해야할 일들이 생기겠지요. 하지만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할 일은 주민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방식과 고집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 동료 사제들과 교구민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이승준 신부 : 두려운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과연 내가 잘 살 수 있을까. 또 내가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며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많은 성원과 기도 바랍니다.

- 김태호 신부 : 금전적 후원도 필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동료 사제들과 신자들의 사랑과 우정입니다. 그분들의 기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늘 기도로 저희와 함께 해 주셨으면 합니다.

[파견 일정]

아 프리카 수단 룸벡교구 지역에서 사목할 김태호(안토니오), 이승준(알렉산델), 한만삼(하느님의 요한) 신부는 현재 응급 의학과 수지침, 택견, 옹기 제작, 목공 등 기술을 배우고 있으며 이밖에 자동차 정비 및 중장비 운전 면허 취득 등 아프리카 선교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세 명 사제들은 수단 현지 사제관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각자 별도의 관할지역을 사목할 예정이다. 1월에 골롬반선교회에서 교육을 마친 이들은 2월과 3월 마지막 준비 작업을 마친 뒤, 3월 25일 파견미사 후 4월 초 현지에 파견된다.

교구에선 첫 아프리카 선교사 파견인 만큼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룸벡교구 지역은 현재 치안은 안정된 상태지만, 말라리아 등 질병 위험이 상존하고 식생활 환경 또한 열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식수 오염 또한 심각해 우물 공사도 시급한 실정이다. 우물 공사에는 약 900여 만원이 소요된다.

또한 상당수 주민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성당 건립이 시급한 상황으로 대부분 주민들이 허름한 임시 공소 건물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장 세 명 사제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기본 물품도 부족한 형편. 현재 교구에서 나서서 생활 물자와 필수품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신자들의 관심이 적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광호 기자 woo [at] catholictimes [dot] org

수단은 어떤 곳 ▶▶▶

전통 무슬림 지역… 내전으로 만신창이

지난 2월 10일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수단 정부군의 공습이 계속돼 다르푸르 지역 주민 1만2000명이 국경을 넘어 차드로 대피했다고 밝혔다. 수단 다르푸르에서는 2003년부터 친정부 이슬람 민병대가 가톨릭 등 그리스도교 주민을 상대로 인종 청소에 나서 지금까지 20만명이 숨지고 3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수단 내전의 뿌리는 영국 식민지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으로 무슬림 지역인 수단 북부와 비무슬림이 절대 다수인 남부를 철저히 분리해 통치하던 영국은 1946년 북부를 중심으로 나라를 통합했다. 북부와 남부를 분리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1956년 1월 수단이 독립했을 때 북부 엘리트(이슬람)가 독립국의 정권을 장악했고, 이에 남부 무장 세력이 중앙정부에 맞서 무장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 이후 17년간 이어진 제1차 수단 내전으로 약 50만 명이 사망했다.

일 단 1972년 남부의 자치를 인정하면서 평화회담이 성립됐지만, 1983년 정부는 또다시 수단 남부의 자치 정부를 전격 해산, 남부가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무장투쟁에 들어갔다. 이후 20년 넘게 이어진 제2차 내전으로 남부에서만 19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400만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이때 발생한 난민만 50만여 명에 이른다.

수단 정부와 남부 해방운동은 3년 전인 2005년 마침내 평화협정에 합의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부 지역에선 6년간 자치가 보장됐다. 원유 수입은 중앙과 지방이 절반씩 나누기로 했고, 이슬람 율법은 북부에만 강제하기로 했다.

평화협정이 발효된지 3년째. 하지만 다르푸르 지역과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인종 청소가 계속되고 있다.

수 단 남부는 사하라 사막에 인접한 북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내륙으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강우량도 많고, 호수 등 수자원도 풍부하다. 땅도 기름져 농사일에 적합하다. 게다가 수단 전체 수출액의 70%를 차지하는 원유 자원도 남부에 밀집해 있다. 북부를 중심으로 한 중앙정부가 가톨릭이 대부분인 남부의 독립을 무력으로 저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아프리카 선교 후원 문의
교구 복음화국 수단 선교 위원회 031-244-5002

■ 수단 선교 위원회 후원계좌
신협 03227-12-004926 천주교 수원교구

■ 기증받는 물품
▲발전기 ▲음향장비 ▲의약품 ▲문구류 ▲공구류 ▲통신장비 ▲컴퓨터 장비 ▲기타 생활 물품

기사제공 : 가톨릭신문
등록일 : 2008-02-28 오전 11:21:50

수단의사 이태석 신부(KBS)

KBS-World 자료
2008-11-20

아프리카 수단의 의사, 이태석 신부

의사, 이태석 신부

수단에서 신부 겸 의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태석 신부는 2년 마다 한 번씩 휴가차 한국을 찾는데, 이번에는 대한의사협회의 초청으로 대한의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인 ‘해외활동 의사 초청 심포지엄’에 참가하고자 고국을 방문했다.

이태석 신부는 의사 공부를 하고 군의관을 마친 후, 로마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사제 서품을 받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어릴 때부터 카톨릭 신자로 원래 꿈이 ‘의사 신부’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교에 진학 중이던 1999년, 이태석 신부는 여름 방학 기간에 아프리카를 가게 되었는데 하루 한 끼로 연명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고 그 곳에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2001년 아프리카 중에서도 가장 낙후한 곳이 수단이란 생각에 수단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아프리카 수단

이태석 신부가 의료봉사활동 중인 수단은 실제로 보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된 곳이다. 수단은 내전과 기아가 얼룩진 곳으로 아프리카 원주민이 살고 있는 남수단과 아랍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북수단으로 나뉜다. 두 곳은 인종과 종교 등 상황이 달라 거의 두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이 중 이태석 신부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곳은 남수단으로 가난은 물론 전기나 전화, 수도 등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이고 1년 내내 50도를 넘나드는 혹서의 땅이다.

봉사활동

- 의료봉사
처음에 이태석 신부가 수단에 왔을 때 반경 100km 이내에 병원은 물론 환자를 보는 의사들이 없었다. 병원의 필요성을 느낀 이태석 신부는 2000km 떨어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트럭으로 2~3개월에 걸쳐 필요한 자재들을 공수해 2004년에 병원을 건축했다. 이태석 신부는 하루에 150~200명 정도의 환자를 보는데, 병원을 찾는 환자들 중에는 말라리아, 장티푸스, 이질 등 감염성 질환자들이 많다. 복부, 임파선 등 각종 결핵환자들과 한센병 환자는 물론 아프리카 오지라서 뱀이나 악어에 물려서 오는 환자도 가끔 있다. 또한 원주민들이 살고 있어서 부족 간의 전쟁으로 창에 찔리거나 총에 허벅지 관통상을 입은 환자도 심심찮게 있다.

- 교육활동
이태석 신부는 의료봉사활동은 물론 교육활동도 하고 있다. 이태석 교사가 머무는 지역에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등 학교가 전혀 없어서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이에 이태석 신부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약 400명 정도의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현재는 학교 규모가 점점 커져서 18개의 교실에서 140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로 성장했다.

이태석 신부는 교육 외에도 음악도 가르치고 있다. 수단은 오랜 내전을 겪은 나라로 그로 인해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이 상처를 음악으로 치료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피리부터 시작해 기타, 오르간을 가르치다 4년 전에 10개의 악기와 35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밴드를 결성했다.

앞으로 계획

이태석 신부는 수단에서의 봉사활동 외에 한국에서 2년 마다 수단 어린이 돕기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1회와 2회는 작은 규모로 가족적인 분위기의 음악회였으나 이번 3회는 각계 전문가들과 수단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있는 장학회와 함께 하는 큰 규모로 열린 예정이다. 제 3회 아프리카 수단 어린이를 위한 사랑음악회는 오는 11월 29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동작문화복지센터에서 공연한다.

이태석 신부는 현재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운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고등학교는 건물이 없어서 중학교 건물을 빌려서 운영하고 있다. 이태석 신부가 있는 곳 반경 200km 내외로 고등학교가 없어서 최근에는 고등학교 건물을 건축하고 있다. 이태석 신부는 학교를 잘 건축해서 교육은 물론 의료와 봉사를 통해 수단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자 한다.

출처: http://world.kbs.co.kr/korean/koreannetwork/koreannetwork_global_detail....

척박한 땅, 아름다운 씨앗을 뿌리는 이... 살레시오회 이태석 요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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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목요일에는
의사이며 살레시오회의 이태석 요한 신부님을 모시고
현재 선교사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아프리카 수단 남부 톤즈지역 의료봉사 및 선교활동에 대한 말씀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특강이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의 참여를 바라며
수단에서의 사목 동영상및 신부님의 글을 함께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날짜: 2008년 8월 28일 목요일
시간: 저녁 7시 30분
장소: 새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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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병으로 발가락의 형태도 찾아 보기 어려운 수단 어린이들을 위해
신부님께서 직접 폐 타이어를 이용해 신발을 만들어 주셨다는 군요....

문둥병으로 육신이 오그라 들어도 아이들은 천사같은 미소를 늘 띄고 있다고 합니다.
온전한 신체를 갖고도 늘 부족함으로 행복을 잃어가는 우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한장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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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어린이들의 슈바이쳐이신 이 태석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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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어린이들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봉헌하기로 하셨다는 이요한 신부님과 수단 어린이와 학생들

기브 미 어 펜(Give me a Pen!!)

8년전 여름 방학을 이용해 열흘간 여기 수단에 온 적이 있다.
말로만 듣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다. 초를 다투는 응급 상황이었다.
먹질 못해 뼈만 앙상히 남은 사람들, 손가락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른채
너무 쉽게만 살아왔던 것에 대한 죄책감마저 들었다.

발가락 없이 지팡이를 짚고 돌아다니는 나환자들, 삐쩍 마른 엄마 젖을 빨다 결국 지쳐 울어대는 아기들..
이러한 현실이 무엇보다도 마음을 더 아프게 한 것은 다닐 학교가 없어 하루종일 나무밑에 앉아
그냥 시간을 때우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우리 어려운 시절 가난했지만 젊은이들의 미래가 있었기에
희망을 잃지 않았던 모습과는 달리 그들의 모습에선 전혀 미래나 희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재의 모습은 무서움마저 들게했다.

그때 막 이곳에서 선교를 시작했던 제임스 신부님도 ‘교육은 이곳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 같다’며
급한대로 70여명의 학생을 데리고 나무 그늘 밑에서 학교를 시작했다.
최고 학년이 초등학교 3학년에 불과했지만 학생들의 평균나이는 열여덟 살 정도였다.
일 년 뒤엔 대나무와 흙으로 작은 움막들을 만들어 교실로 쓰기 시작했는데 책상은 없었지만
Y자 형태의 두 개의 나무 사이에 얹힌 긴 통나무 의자가 제법 교실다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처음으로 수업이라는 것을 받아보는 아이들의 눈은 설렘과 호기심에 너무나도 반짝거렸다.
교과서는 물론이고 공책이 부족해 흙바닥에 나뭇가지나 손가락으로 영어 단어를 써가고
수학 문제를 푸는 아이들을 보며 다 쓰지도 않은 멀쩡한 문구류들을 마구 버리는
우리의 지나친 소비 문화가 분명히 ‘죄’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전 보름달이 너무나 아름다워 마을로 산책을 나간 적이 잇었다.
집밖에 나와있던 많은 아이들이 인사를 해왓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책이나 책을 무릎에 펴 놓고 그것들을 읽고 있었다.
전기가 없던 집 안에선 공부를 하지 못하고 달빛을 이용해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달빛으로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형설지공’이란 말을 방불케 하는 학구열이 대단한 아이들,
배도 고프지만 그보다도 공부를 더 고파하는 정말 기특한 아이들을 보며 다른 것은 몰라도
그들이 하고 싶어하는 공부만큼은 최선을 다해 여건을 마련해주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그 후로는 전등이 세 개가 달려있는 간이 성당을 밤에 자습실로 쓰도록 했고 병원의 환자대기실에도
전등을 달아 야간 학습실로 쓰기 시작햇는데 매일 밤 많은 아이들이 공부할 것을 들고 찾아왔다.
야간 자습을 무었보다도 싫어하는 한국의 아이들이 정상인지 공부할 시간을 늘려달라고
졸라대는 이곳 아이들이 정상인지 햇갈릴 때가 있다. 처음엔 태양열을 이용한 전기라
용량이 부족해 밤 9시까지만 공부를 하게했는데 30분만 더 늘려달라고 졸라대는 통에
전동기를 돌려가며 9시 반까지 공부시간을 늘렸다. 몇 달이 지나자
그것도 부족해 ‘30분만 더’하며 졸라대는 아이들의 등쌀에 못 이겨 ‘공부하라고 애원을 해도
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래! 하고 하고 싶은 공부 실컷 한번 해봐라!’는 심정으로
결국은 밤 11시까지 공부 시간을 늘려놓았다.

자습을 시작할 때 다같이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끝날 때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함께 일어나
성모송으로 마무리하는 이곳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기특하고 예쁜지 모른다.
올해 겨우 고등학교를 시작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고등학교가 없어 많은 아이들이 불편을 겪었다.
중학교를 마치고 공부를 게속하고 싶은 아이들은 근처에 고등학교가 없어 120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도시로 유학을 가야했다.

없는 살림에 새로운 곳에서 스스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 보통 큰일이 아니었기에
많은 아이들이 중학교를 마치면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공부를 할 수 없이 포기를 해야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다. 형편이 그래도 조금 괜찮아 유학을 갔던 아이들도 학교의 낮은 질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고 많이 되돌아왔다. 선생님도 충분치 않고 작은 월급대문에 선생님들이
학교에 제대로 나오질 않아 정해진 시간표도 없고 학생들은 교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
교사가 오면 하루 한두 시간의 수업을 하고 그나마 선생님이 오지 않는 날엔 하루 종일
한 시간의 수업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했다.

이런 가슴 아픈 사연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고등학교를 시작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기에
꼭 필요한 것인 줄은 알면서도 당장 시작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더 더욱 아팠다.
기도는 들어줄때까지 끈질기게 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 때문인지 아이들은
‘제발 고등학교를 열어달라’고 끈질기게 수년간을 졸라댔다. 고등학교를 시작해보려했지만
고등학교를 나무밑에서 할 수 없는 노릇이고 부지걱정, 건물걱정, 돈 걱정, 선생님 섭외 걱정 등
걸리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기에 선뜻 시작할 수가 없었다.

몇해를 미루고 미루다 ‘에라 모르겠다’벌려놓고 보자! 어떻게 되겠지! 라는 똥배짱으로
-아니 섭리에 대한 강한 믿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올해 고등학교를 시작해버렸다.
한국에서 가져온 한 고등학교의 재고품을 교복으로 하고 케냐에서 교과서를 사서 나이로비에서
급히 교사 세 명을 구해 데리고 들어와 시작을 했다. 시작을 하고보니 처음엔 보이지도 않던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윤곽이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잇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건물이 없어 초등학교 건물 창고를 교실로 꾸며 고등학교를 시작하던 날, 모르는 사람들에겐
아프리카의 조그만 마을의 작은 고등학교의 초라한 개교식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우리 선교사들과 이곳 아이들에겐 수년간 함께 꾸어왓던 소중한 꿈을 이룬 감격스러운 날이었고
마음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벅찬 날이었다.

교사를 구하기가 힘들어 나도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가르치는 것이 꽤나 재미있다.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과
순수한 아이들의 질문 때문에도 더 그렇고 무엇보다도 내 자신의 삶에 특별한 맛을 내게하는
교실에서 만들어지는 나와 아이들간의 특별한 형태의 끈끈한 우정 때문에도 더 그렇다.

가전제품’, ‘할부구입’, ‘복리이자 ’, ‘소시지’, ‘세금 ’등이 무엇인지를 묻는 때묻지 않은
이곳 아이들의 순수한 질문덕에 가끔씩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와 있는 착각을 하곤 한다.
야간에 진료실에 앉아 가끔식 오는 응급환자를 치료하거나 수학문제를 들고 들어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하나의 소박한 즐거움이 되어버렸다. 요즈음은 연합고사를 준비하고 있는 중학교 졸업반 아이들의 부탁으로
매일 밤 환자대기실의 희미한 전등불 밑에서 수학과외 수업을 하고 있다.

케냐나 탄자니아를 가면 길거리에서 ‘기브 미 비스켓’ 또는 ‘기브 미 머니’라고 외치며 먹을 것이나
돈을 구걸하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아이들과는 달리 이곳 수단에선 ‘기브 미어 펜’하며
연필이나 볼펜을 구걸하는 특이한 아이들을 많이볼 수 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특한 아이들이다.
이들이 구걸하고 잇는 것은 단순하게 볼펜을 사기위한 돈 ‘백원’이 아니라 생각한다.
이들의 작은 외침은 배움의 권리에 대한 정당한 요구요 ,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이유이건
교육의 충분한 여건을 마련해주지 않는 것은 어른들의 명백한 직무유기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작은 외침이 아닌가 생각한다.

요즈음은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한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성당과도 같은 거룩한 학교 , ‘내 집’처럼 느껴지게 하는 정이 넘치는 학교, 그런 학교를 말이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미주 아프리카 희망 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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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어주실래요? (생활성서사) 이태석신부님 책

[사람들] 수단에서 선교하는 이태석 신부

[연합] `신앙 열정이 뜨거워야 선교 가능`
2009년 5월 19일기사

"그냥 봉사한다는 것이라면 오래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하고 하느님의 뜻을 편다는 신앙적인 열정이 바탕이 돼야 꾸준히 일할 수 있습니다."

이태석(46) 신부는 의사로 일하며 선교하는 아프리카 수단을 '이곳'이라고 표현하며 선교의 진정한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인제대학교를 나와 의사가 된 그는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신학교에 들어가 2001년 사제품을 받았다.

"10년 전 여름방학 때 케냐에 갔던 길에 수단을 들렀다가 헐벗고 굶주리며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런 현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른 채 너무 쉽게만 살아왔던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수단에서 8년간 일해 이제는 환자의 걷는 모습이나 안색만 봐도 어떤 종류의 말라리아에 걸렸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신부는 이런 경험을 책으로 엮어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발간했다.

그는 선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신앙을 키우고 다시 체험하는 것"이라며 "그저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 자체가 하느님의 뜻을 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풀이했다.

이어 "전쟁 중이던 수단을 떠나지 않고 남아 그들과 함께 어려움을 겪어냈다는 게 그들에게 일체감을 줬고 나아가 믿음과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아프리카 국가에 선교 사제가 2명이 더 왔다고 전하면서 "인내심이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며 "인내심을 배워야 자신의 시각이 아닌 그들의 눈으로 볼 수 있고, 그래야만 그들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의 나환자들을 보면 그들을 위로하며 함께하는 예수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며 "그들은 우리에게 온 작은 예수님이자 천국의 열쇠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책은 여아를 중시하는 수단의 풍습을 비롯해 길 앞에 야생 동식물이 나타나는 모습이라든가 달걀부침을 생일에나 먹을 수 있는 어려운 경제 사정 등 수단의 생생한 모습을 풍부한 사진을 곁들여 보여준다.

생활성서사. 247쪽. 1만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