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단체분과












제단체분과 사목 계획 및 실천방안








1.제 단체의 활성화 및 신규 설립 협조
○ 본당 신심 단체 및 문화/친교 단체의 원활한 활동을 위한 간접적 지원

2.소속단체
레지오 마리애,
파티마세계사도직 (셀기도),
포콜라레회,
성령기도회,
재속프란치스코회
한글학교,
청년회,
아도라무스,
성물방,
축구회,
골프회




레지오 마리애

레지오 마리애

기도와 봉사 활동으로 자기 성화를 지향 하는 성모님의 강력 한 군대인 레지오가 영적 지도자 이신 반영억라파엘신부님을 모시고 3 년전에 꾸리아를 발족하였고, 샌디에고 꼬미씨움 아래 등록 하였습니다. 이제 새로 오신 안철민 아브라함 신부님을 모시고 성모님의 푸른 군대로 단원들의 결속과 기도, 봉사로써 거듭 태어날 것입니다. 우리 본당에는 '모든이의 어머니 꾸리아' 직속으로 일곱 쁘레시디움이 있습니다 꾸리아 월례회는 매월 세째 주일에 본당에서 (오후 2시 30분) 열리며 단원들의 참관이 허용됩니다.

(꾸리아 단장 박순천 아브라함 858-717-1072)

쁘레시디움-------- 회합 장소, 시간, 쁘레시디움 단장 연락처

자비의 모후-------- 본당에서 화요 오전10시 30분 회합 (단장 김순근발바라)619-583-6335
평화의 모후-------- 본당에서 목요 저녁 7시 30분에 회합(단장 최진호 세례자요한)858-245-5639
영원한 도움의 성모--본당에서 금요 오전 9시 30분에 회합 (단장 박윤경 로사) 619-216-2564
신비로운 장미-------에스콘디도에서 수요 오전 10시에 회합(단장 김재숙 베로니카)760-940-1488
사랑하올 어머니-----출라바스타에서 일요 오전 8시에 회합 (단장 최영학 율리아노) 619216-3854
티없으신 어머니-----본당에서 일요 오전 11시에 회합 (단장 이재흡 바오로)858-509-5989
바다의 별-----------본당에서 금요 오전 9시30분에 회합 (단장 정순자 스테파니)619-397-7172
은총의 모후-----------본당에서 일요 오후 4시30분에 회합 (단장 김민애 아네스)858-436-6004

레지오 가입 문의는 (꾸리아 단장) 로 해주세요. 기도로 숨을 들여 쉬고 활동으로 숨을 내쉬어서 세상을 밝히는 작은 촟불이 되시지 않겠습니까?

가입자격은 본당 교우분이면 됩니다. 할동단원들을 기도로 지원 하는 협조 단원과 활동 단원이 있읍니다. 우리 레지오 마리애는 매 주회합 때 마다 레지오 수호 성인들을 의지하여 모든 단원을(세상을 떠난 단원까지도) 위하여 기도 합니다.

링크모음
링크 : ✤교회가 인정한 마리아 공식 발현
링크 : 레지오 마리애 공인 교본 및 해설
4/11/2010 아치에스(Acies)행사

2009년 10월 18일 꾸리아 회합모습, 박순천 아브라함 형제님께서 꾸리아 단장에 선출되셨습니다.

까떼나

레지오 단원들이 매일 바쳐야 하는까떼나 한글과 영문 기도문입니다.

바다의 별

바다의 별

4/11/2010 아치에스

2009년 4월 아치에스 행사

사랑하올 어머니

사랑하올 어머니
사랑하올 어마니 쁘레시디움은 일요일 아침 8시에 출라비스타에 있는 단장 댁에서 주회를 합니다.연락이나 문의는 죄영학 율리아노 단장에게 해 주세요.

4/11/2010 아치에스 행사

2009년 4월 아치에스 행사

신비로운 장미

신비로운 장미

4/11/2010 아치에스

2009년 4월 아치에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영원한 도움의 성모

4/11/2010 아치에스 행사

2009년 4월 아치에스 행사

은총의 모후

은총의 모후 소개페이지

5/7/2010 성모의 밤

4/11/2010 아치에스(Acies) 행사

4/25/2010 바실리오형제 선서후

자비의 모후

자비의 모후

4/11/2010 아치에스

2009년 4월 아치에스 행사

티없으신 어머니

저희 "티없으신 어머니" 쁘레시디움은 매주 주일 오전 11시에 새성전 도서실 옆방 에서
회합을 가지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언제나 방문을 환영합니다.

4/11/2010 아치에스

2009년 4월 아치에스 행사

평화의 모후

평화의 모후

모든이의 어머니 Cu. (꾸리아)` 소속 8개 Pr. (쁘레시디움)중 하나인 `평화의 모후 Pr.` 안내입니다.

2011년 10월 현재, 정단원 6명, 예비단원 1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주 목요일 오후 7:30 새성전에서 주회합을 가집니다. 문의 사항은 아래의 간부들을 통해서 답을 얻으시면 되겠습니다.

* 단 장: 최진호 세례자요한(858-245-5639/ humanity72gmail.com)
* 부단장: 주성하 어거스틴
* 서 기: 황혜진 로사리아
* 회 계: 이재선 어거스틴

그 외의 소속 단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단원-10명)
조세형 요셉, 박명렬 가브리엘

(예비단원-1명)
조수명 베드로

04/07/2011 황혜진 로사리아 자매선서

02/03/2011 김그레이스 바울라 자매선서

12/09/2010 주성하 어거스틴 형제선서

4/22/2010 이 어거스틴 형제선서

4/11/2010 아치에스(Acies) 행사

12/17/2009 회합후

6/13/2009 야외행사 준비

이번 야외행사에서 저희 평화의 모후 Pr. 은 바베큐를 맡았습니다.
고기는 Cu. 에서 공급이 되고, 저희는 챠콜과 여분의 그릴 (2개)를 준비하여, 현장에서 굽기만 하면 됩니다.

또한, 저희 Pr. 이 먹을 음식은 저희가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이번 주회합에서 논의하겠습니다.

7/24/2009 Pr. 친목회(캠핑)

2009년 7/24에 있었던 1박2일 캠핑사진입니다. 당초 계획과는 달리 남자들끼리의 캠핑이 되었습니다.

9/5/2009 꽃동네 봉사활동

이동일 안드레아 형제님 사진입니다.
고생들이 참 많으셨습니다.

9/6/2009 테니스 친목모임

주말 아침마다 가족끼리 모이는 테니스 운동모임입니다.
이동일 안드레아 형제님 사진입니다.

[꽃동네 봉사활동 Manual]

1. 집합장소와 시간
꽃동네까지 각각 가는것은 비효율적이라 생각하여 한곳에서 모여서 차 몇대로 이동함
모이는 장소는 '1000 W. El Norte Pkwy, Escondido, CA 92026'
시간은 6:45분 출발(따라서 커피한잔 하실 분은 6시 30분까지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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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꽃동네 소개
주소:37885 Hwy, 79S. Temecula, CA 92592
꽃동네 페이지 참조

3. 활동계획
06:45: 집합
06:45 – 07:30: 꽃동네로 이동
07:30 – 08:30: 아침식사
08:30 – 13:30: 봉사활동
13:30 – 14:20: 점심식사
14:20 – 15:00: 꽃동네에서 오전 집합장소로 이동
15:00: 귀가

4. 활동시 주의사항
복장 : 보통 그 곳에서 하게되는 일이라는 것이, 허드렛일 (노가다) 입니다. 한번 입고 버려도 될만한 옷이 있으시면 그런 옷을 착용하시는 것이 최선입니다. 신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할 때 쓰게될 장갑등은 그 곳에 항상 준비되어 있으니 가져 오시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 성모님과 같이하는 레지오 활동임을 잊지 않는다.
  • 수녀님과 수사님께 샌디에고 '평화의 모후', '은총의 모후' 에서 왔다고 소속을 정확히 밝힌다.
  •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모두 모여서 짧은 시작기도를 바치고 시작한다.
  • 레지오 정신으로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활동에 임한다.
  • 어려운 일은 서로 형제애를 가지고 도우며 안전하게 끝마친다.
  • 일이 끝난후 다 같이 모여 짧은 마침기도를 하고 정리한다.

빈센치오회

매월 세번째 주일
2:00PM
성순진(엘리자벳)
760-729-3650
빈센트 성인의 뜻을 따라 불우한 사람을 돕는 봉사회

성령기도회

성령 기도회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을 경배하는 모임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이므로 머리이신 분과 지체가 함께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기도회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경배를 최우선시 합니다.

샌디에고 기도회는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새 성전에서 기도회를 갖습니다.

성령기도회에 참석하면

  1. 개개인의 기도 생활과 영성생활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2. 공동체에도 좋은 영향을 줍니다.
  3. 잠자고 있던 많은 신앙인들을 깨어나게 하여 회개하게 합니다.
  4.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 고백하게 합니다.
  5. 신앙인들 사이에서 기도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신앙을 활성화 합니다.

성령송가






성 령 송 가

오소서, 성령님.
당신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가난한 이 아버지, 은총의 주님.
오시어 마음에 빛을 주소서.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생기 돋워 주소서.
일할 때에 휴식을, 무더울 때 바람을,
슬플 때에 위로를.
지복의 빛이시여,
우리 맘 깊은 곳을 가득히 채우소서.

주님 도움 없으면 우리 삶 그 모든 것
이로울 것 없으리.
허물은 씻어주고 마른 땅 물 주시고
병든 것 고치소서.
굳음 맘 풀어주고 찬 마음 데우시고
바른 길 이끄소서.

성령님을 믿으며 의지하는 이에게
칠은을 베푸소서.
공덕을 쌓게 하고 구원의 문을 넘어
영복을 얻게 하소서. (아멘)

재속 프란치스코회

모임: 매월 둘째 주일 2:30PM
송문현(베드로)
Tel: 858-335-2773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가톨릭 교회의 2천년 긴 역사를 통해 탄생한
수많은 영적 가족들 중,
재속 프란치스코회는 재속 신분으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발자취 안에서
예수님을 따라 사랑의 완성과 복음적 삶을 살고자 하는 형제들의 모임입니다.


















     



가난의 성지 성 다미아노 성당

프란치스칸 성지 - 성 다미아노 성당

아시시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난 성문을 벗어나면 아래로 올리브 나무 밭이 이어진다.

평화로운 햇살 아래 흔들거리는 올리브 나무를 바라보며 그 가운데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내려오면 조용하게,

그리고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그래서 정감이 어려있는 집처럼 정겹게 맞이해 주는 다미아노 성당을

만나게 된다.

다미아노 성당의 기원 및 역사

의사로서 순교한 동방의 두 성인 고스마와 다미아노에게 봉헌된 이 성당은 9세기 또는

10세기에 처음으로 건축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 성당은 처음에 베네딕토회 소유였다. 그러다가 1212년 말 또는 1213년 초에 클라라와

아녜스 및 몇몇 동료 자매들이 이 성당으로 옮겨오게 된다.그리고 1260년 클라라의 자매들이

성녀 클라라 대성당으로 옮겨가고 이 성당은 아시시 주교 참회의 소유로 남게 된다.

다시 1380년에는 바올루쵸 트린치의 옵세르반티 형제들에게 양도되었다가 1604년 개혁파

형제들에게 넘어가 그들의 관구 중심 수도원으로 남게 된다.

16세기에는 수도원 혹장 및 수도원 마당의 건축, 임구 현관 건축 등이 있었다. 그러다가 18660년

이탈리아 정부 소유로 넘어갔고 1867년 월 일 형제들은 정부에 의해 추방되었다. 폐쇄된 기간에는

단 두세 명의 형제들만이 수도원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1879년 리폰의 후작이며 인디에의 총독인 로빈슨 경은 이 성당을 매입하였고, 같은 해 4월 15일자

계약을 통해 개혁파 형제들의 복귀를 허락하였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소유자였던 로티안의

푸작 피터 케르 경은 1983년 9월 22일 이 성당과 수도원이 "기도와 피정의 장소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형제들에게 넘겼다

프란치스코의 회개 삶의 시작

오상을 받은 라베르나 산이 그의 영적 여정의 마지막이라면 그의 영적 여정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 곳, 다미아노 성당이다.

1205년 늦가을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에서 가까운 폴리뇨에서 돌아오던 중 이 성당에서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하는 도중 "프란치스코야, 가서 무너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는 영적 투쟁의 길을 시작하게 되는 곳이 바로 이 다미아노 성당이니,

우리 프란치스칸들에게는 뿌리가 닿아 있는 곳이 된다고 할 수 있다.(첼리노 제2생 10)

프란치스코는 이제 마음이 완전히 바뀌어 어느 날 거의 다 허물어져 아무도 돌보지 않는

성 다미아노 성당 근처를 걷고 있었다.

그는 성령의 이끄심에 안으로 들어가 기도하려고 십자가 앞에 겸손하고 경건하게 엎드렸다. ...

십자가에 달리신 고상이 입술을 움직이면서 말을 하였다. 고상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말하였다.

"프란치스코야, 보다시피 다 허물어져가는 나의 집을 가서 수리하여라."....

그때부터 십자가에 달리신 분에 대한 애처로움이 그의 거룩한 영혼에 뿌리를 내렸고, 아직

살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경이로운 오상이 그의 마음 속 깊이 찍혔음을 경건히 추측할 수 있다.

성당에 얽힌 이야기들

이 다미아노 성당은 또한 클라라의 자매들의 본격적인 수도생활을 시작한 곳이며,

사라센인들이 쳐들어왔을 때 이미 쇠약한 클라라 성녀가 자매들의 부축을 받으며 성체를

모시고 회랑까지 나아가 기도하면서 아시시를 구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프란치스코 성인이 포르치운콜라에서 돌아가시고 나서 그의 시신이 죠르죠 성당을

옮겨가는 도중 글라라 성녀가 머물고 있는 이 성당에 멈추어서서 움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오는 곳이다.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지만 1228년 어느 날 교황 그레고리오 9세의 청으로 클라라가 빵을

축성하자 모든 빵에 십자가가 새겨진 사건을 표현한 두 폭의 프레스코화가 지금도 식당의 벽면에

남아 있다.

태양의 찬가 가 만들어진 곳

오상으로 인해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성인은 이제 죽을 날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구세주를 사랑으로 따르는 길에서 오랫동안 단련되어 많은 병과

고통에 신음하는 자기 육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었다.

눈이 멀게 되어 성인은 형제 태양의 빛을 못보고 있었다. 오히려 태양의 빛이 그의 눈에게

아픔을 주었고, 주위의 소리와 소란 그리고 피조물 모두가 그를 괴롭히기만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밤을 지내고 나서 성인은 형제들을 불러모은 후에 사랑과 기쁨의 무아경

속에서 그들에게 태양의 노래를 가르쳤을 것이다. 이 곳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태양의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그러니까 아마도 1225년 겨울이었을 것이다.

눈병 치료를 위해 리에티로 떠나기 전까지 이 곳에 머물면서 태양의 찬가의 일부 11-9절

"태양의 찬가"를 썼던 것이다.

[완덕의 거울 100]

그 이튿날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자기 동료들을 보고 "나는 내 질병과 고통 때문에 기뻐해야

하고 주님 안에서 힘을 얻고 하느님이신 성부와 성령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 언제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큰 영광을 허락하셨고 당신의 보잘 것 없는 종인 나는 아직

이 현세에 살고 있는데도 당신의 왕국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찬송하며 우리의

위안을 얻고 이웃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는 새로운 <태양의 찬가>란 것을 짓고 싶습니다.

잠시 후... 그는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시며 자비하신 주님..."하고 중얼거리더니 그 말에 멜로디를 붙여 자기

동료들에게 암송하여 부를 수 있도록 가르쳤다.

다미아노 십자가

1205년 성 프란치스코는 바로 이 십자가의 주님으로부터 "가서 무너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

" 하는 음성을 들었다(2첼라노 10). 그는 즉시 이 성당의 보수에 착수하였고, 이후 성 베드로 성당과

포르치운쿨라의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도 보수하였다. 주님의 이 말씀이 교회 재건을 의미함을

그는 나중에 깨닫게 된다. 따라서 성 프란치스코의 초기 삶에 있어 중대한 전기를 마련해 준 이 십자가는

타우 십자가와 더불어 프란치스칸들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이 십자가는 1260년 성 다미아노의

클라라 자매들의 이전과 더불어 성녀 클라라 대성당으로 옮겨져 보관하고 있다.

다미아노 십자가의 해설

Image and video hosting by TinyPic

다미아노 십자가 부분 설명



개관
이 이콘은 오랫동안 아씨시의 성 다미아노 성당에 걸려 있었기에 “성 다미아노 십자가”라고 불리어졌다. 이 십자가는 12세기에 시리아 수도자에 의하여 그려진 비잔틴 양식의 이콘이다. 풍요로운 의미가 담긴 이 이콘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광의 모든 신비가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이콘은 분명 요한 복음에 기초를 둔 요한계 이콘이다. 가시관 대신 놓여진 영광의 관은 이것을 입증하는 분명한 표이다. 여기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이 영광으로 변모되어 있다. 예수님의 오른쪽 옆구리 상처 역시 사랑하는 사도 요한에 의하여 표현된 신앙고백의 하나이다.

이 이콘은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주는 공관복음서들과는 달리 요한의 독특한 표현을 빌어 그리스도, 하느님 말씀의 심오한 신비를 말해준다. 요한 복음은 빛과 어두움 사이의 투쟁을 묘사하고 있다(1, 5). 이 이콘에서 이 마지막 싸움의 결과가 두드러진다. 승리를 거둔 그리스도의 몸이 어두운 배경(즉, 검은 색은 빛에 반대되는 상징이나 불신앙의 상징, 죄의 상징으로서)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더욱 더 밝은 빛을 비추고 있다. 한편, 붉은 색은 사랑을 상징하며 이콘에 관한 모든 것을 뒷받침해 주고, 어두움을 극복한 빛과 사랑의 승리를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1205년 성 프란치스꼬는 바로 이 십자가의 주님으로부터 “가서 무너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하는 음성을 들었다.(2첼 10) 그는 즉시 이 성당의 보수에 착수하였고, 이후 성 베드로 성당과 뽀르찌웅꿀라의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도 보수하였다. 주님의 이 말씀이 교회 재건을 의미함을 그는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따라서 성 프란치스꼬의 초기 삶에 있어 중대한 전기를 마련해 준 이 십자가는 타우 십자가와 더불어 프란치스칸들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이 십자가는 1260년 성 다미아노의 글라라 자매들의 이전과 더불어 성녀 글라라 대성당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우리 모두 성 프란치스꼬가 이 십자가 앞에서 바쳤던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치며 이 이콘에 대한 신심과 교회 쇄신에 대한 열망을 지닐 수 있도록 하자: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느님이시여,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 주소서. 주여, 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하도록 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주시며 지각과 인식을 주소서. 아멘.”

1. 테두리: 조개껍질

조개껍질들로 이루어진 이콘의 테두리는 조화된 색조를 이루고 있다. 조개는 그 아름다움과 견고성 때문에 고대인들에게 천상적 아름다움과 영원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 이콘의 조개 테두리는 천상의 신비를 나타내주고 있다.

테두리의 밑부분은 열려 있다. 이 열려져 있는 부분에 열심한 신앙인으로 여겨지는 듯한 네 사람이 보인다. 두 명은 쉽게 식별이 되고, 나머지는 윗부분만 볼 수 있다. 그들은 이미 하늘나라에, 하늘왕국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에 커다란 크기의 몸으로 채워진 예수님은 거룩한 도성에서의 생명의 나무(창세 2, 9 ; 묵시 22 : 14, 19)로서 나타내 보이신다. “주님의 빛 속”(묵시 22, 5)에서 그 분 팔 아래에 있는 인물들은 “만일 밀알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는 말씀대로 살아있는 열매들이다. 이와같이 이 이콘은 우리에게 하느님 왕국을 계시해 주고 있다.

2. 영광의 후광

이 영광의 후광은 그리스도의 고통의 신비를 덮어 가리지 않고, 오히려 영광 속에 그 의미와 성취를 밝히 드러낸다. 예수님은 이미 영광을 받으신 분으로 나타나신다. 따라서, 예수님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기쁨의 상태에 있다. 우리는 이 후광의 빛 안에서 전체 이콘을 읽어야 한다. 이 후광은 죽음을 뛰어넘는 생명의 승리를 선포한다(요한 12,24).

후광 안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생애를 요약하고 있다. “그 분은 본질이 하느님이셨지만,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필립 2,6-11).

3. 예수님의 옷

예수님의 옷은 금사로 장식한 아마포 잠방이로 되어 있으며 이는 제의에 사용되던 것이다(출애 28,42). 마태 12,4절에 보면, 예수님도 다윗이 사제로 활동하였다는 것을 인지하고 계셨다. 예수님은 다윗과 비슷한 허리에 두르는 간단한 옷을 입고 계시며, 여기 이콘에서 사제로서 행동하고 계시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가 희생 제물이 되셨고 스스로를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셨다.

4. 성삼의 성전이신 예수

예수님 가슴팍 아래 중앙에 사람 머리의 윤곽을 어렴풋이 식별할 수가 있는데, 그 자태는 거의 옆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있으며 예수님의 왼편을 향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요한 17,21)라고 말씀하시듯 성부를 나타낸다. 성부의 형상 아래에 둥근 고리 모양이 있고 그 안에 왼쪽을 향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을 볼 수 있다. 원 안의 인물은 영원한 분 즉 나자렛 예수에 앞서 존재해 있던 말씀이신 성자이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이마 위에 날개를 펼쳐 하강하는 듯한 한 마리의 비둘기는 성령이시다.
삼위일체에 깃들여지고 세 분의 신적 위격(位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성소이다.

5. 예수님 얼굴 위의 휘장

이 이콘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예수님의 얼굴과 후광과 목까지 얇은 천에 가리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의 영광이 구름의 장막으로 뒤덮여 있었던 것처럼(출애 24,16), 예수의 영광은 그분의 인성(人性)에 의하여 가리워져 있다. 사도 바오로는 “그분의 후광은 그분의 육체”라 하였다(히브 10,20). 예수님 성변모 때에 장막이 말끔히 걷어치워져 “그분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여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셨다”(마태 17,2). 오로지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 사도만이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모든 신자들이 보게 된다.

우리가 인간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즉 신앙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그만큼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요한 6,63).

6. 예수님의 눈

또렷하게 뜨고 계신 예수님의 눈은 그분이 살아계신 분임을 보여준다. 그분 자신이 말씀하신다 :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존재이다. 나는 죽었었지만 이렇게 살아 있고 영원무궁토록 살 것이다”(묵시 1,17-18). 그분은 생명을 주관하는 분이시고(사도 3,5) 생명 자체이시다(요한 14,6).

또한 예수님 눈은 얼굴 전체에 비하여 어울리지 않게 매우 크다. 이것은 예수님이 항상 하느님을 향하여 계신 분이기에(요한 1,18), “아버지를 본 유일한 사람”(요한 6,46)으로서 “보시는 존재”이심을 말해주는 하나의 묘사 방법이다.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

예수님의 시선은 하늘과 땅의 중간을 향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하여 아버지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시는 대사제요 중재자(히브 8,6)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분의 눈길은 매우 위엄스럽고 동시에 평온하다. 즉, 예수님은 당신 자신의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온전히 깨닫고 계시기에 바라보시는 눈길이 위엄스러워 보인다. “지옥의 문도 감히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라는 것을 그분은 알고 계셨기에 그렇듯 일별의 눈은 마냥 평온하기만 하다. 그리고 예수님 눈은 또한 우리를 보고 계신다.

7. 예수님의 목

예수님의 목이 아주 두툼하다. 부활하신 후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하셨다 :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다”(요한 20,22). ‘숨’이라는 그리스말은 인간 창조의 그 순간을 상기시키게 하며(창세 2,7), 예수님의 숨은 새로운 창조요 참 부활을 가져다줌을 암시하고 있다(에제 37,9; 로마 4,17). 두툼한 목은 바로 영을 불어넣어 주시는 즉 창조의 힘을 지니신 분을 표현한 것이다.

8. 예수님의 상처

예수님의 손,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는 하느님의 어린양의 피를 쏟아내는 샘으로 변화되었다. 피는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원을 얻어주신 새 계약의 피이다 :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흠없는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나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살아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히브 9,12.14).

두 천사들이 예수님 손의 상처를 유심히 응시하고 있다. 예수님 팔 밑에 있는 다른 천사들은 하느님의 독생 성자가 흘리신 비참한 피의 광경에 매우 놀라운 표정을 짓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알려주신 성령” 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천사들일지라도 이 사건을 보고 싶어합니다”(1베드 1,12)라고 적는다.

9. 예수님 팔 아래에 있는 인물들

이들은 우리가 보기에 왼쪽에서부터 성모 마리아, 사도 요한,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백부장이다. 이들은 예수님과 가까웠던 사람들로써 이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기도가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내가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나에게 주신 그 영광을 그들도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24). 더욱이 이들은 모두 빛으로 휩싸여 바로 “빛의 자녀들”(요한 12,36)로 변해 있다.

또한 여기 인물들 모두의 키가 같은 것은 각 사람의 개인적인 거룩함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만이 전부로서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시는 분”(골로 3,11)이심을 뜻한다.

끝으로 이들은 똑같은 커다란 눈, 작은 입, 그리고 달걀형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어, 서로 닮았다. 예수님의 얼굴도 그들과 같아 보인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29). 그리고 그 아드님은 ″아버지의 살아계신 형상”(골로 1,15)이시요, 또한 “나를 본 그 사람은 아버지를 뵌 것”(요한 14,9)이라고 말씀하신 분이시다. 이와같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와 똑같은 유형을 접하게 된다. 본래의 하느님 모습이 예수님에게서 되찾아진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창세 1,26).

① 성모 마리아

“오필의 금으로 단장한 왕후는 당신 오른편에 서 있나이다”(시편 45,10)라는 말씀처럼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오른 편에 서 계신다. 동방 문화에서 이는 영예의 자리를 뜻한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여인”(루가 1,30)이시며, 새로운 에와요 육화된 말씀의 어머니이시자 성령에 의해 우리의 어머니가 되신 분이다.

요한을 바라보고 있는 마리아의 얼굴은 충만한 부드러움으로 빛나고 있다. 마리아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을 보십시오”(요한 19,26)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신다. 마리아는 요한 안에서 예수님을 보시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관조하신다.

마리아는 왼손을 얼굴로 가져가며 요한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신비 앞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고 계신다. 성모님과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런 손동작은 자신들의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얼굴 윤곽의 바깥에 그려졌다. 성서는 이러한 동작들의 의미에 대하여 잘 설명해 주고 있다(지혜 8,12 욥기 21,5. 29,9). 마리아가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러운 눈으로 요한을 바라보시며 온화하게 미소 지으신다. 우리들은 “그 여자의 남은 자녀들”(묵시 12,18)이기에, 성모님의 눈길이 우리들에게도 널리 미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행한다면(요한 2,5), 마리아의 미소띤 빛이 우리 위에도 번질 것이다.

마리아와 예수님은 이 이콘에서 유일하게 미소짓고 계시는 두 분이시다.

한편 마리아의 오른손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이 동작은 대화 상대인 요한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예수가 그 들 두 생명을 충만케 하신 분이라는 것도 뜻한다.

마리아의 얼굴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 그것은 예수님 얼굴을 그대로 반영한 표정이다.

※ 성모님의 옷을 살펴보자

성모 마리아의 흰 겉옷은 첫째로 복음에 대한 충실성이 승리하였음을 나타낸다(묵시 3,5). 두 번째,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해진 정화(淨化)의 상징이다(묵시 7,14). 마지막 세 번째, 하느님께서 성인들에게 성취하라고 주신 선행들의 상징이다: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었다.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고, 하느님의 허락으로 빛나고 깨끗한 모시옷을 입게 되었다. 이 고운 모시옷은 성도들의 올바른 행위이다”(묵시 19,7).

마리아는 이 외투를 두르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이다. 왜냐하면 태중에 예수님을 모실 정도로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신 여인이시고”(루가 1,45),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제자들에게 믿음을 보여주셨으며, 갈바리아상 구속사업을 위해 구원 생명을 낳아 주셨기 때문이다.

● 흰옷 위에 줄지어 장식된 보석들과 귀금속들은 성령의 선물(하느님의 은총)을 상징한다(창세 24,22 ; 에제 28,13 ; 이사 61,10). 마리아는 완전히 그것들로 덮여 있다. 여기 보석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은 여인, 혹은 은총이 가득한 여인, 신성한 이름으로서의 마리아라는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 길다란 외투 속에 마리아가 검붉은 옷을 입고 계신다. 붉음은 사랑의 상징적인 색채이기에 검붉음은 열애(熱愛)를 의미한다. 즉, 그녀의 특별한 내구력에 의하여 사랑의 강도가 깊어진 것이다. 이런 색깔이야말로 칼로 살을 에이는 듯한 아픔과 십자가의 발 밑에서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고통의 삶을 온 가슴으로 끌어안아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신 이 여인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 자주색 속옷은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 곧 육화된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참다운 계약의 궤임을 상기시켜 준다. 사실 고대 계약의 궤의 내부는 자줏빛 천으로 두르고, 주께서 말씀하신 십계명을 새긴 돌판 두 개를 담고 있다.(신명 10, 1-5) 이 궤는 마리아의 태중에 살아계신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려 했던 성모 마리아의 형상이었다.

② 요 한

요한은 최후만찬에서 처럼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요한 13,23). 그는 실로 물과 피가 샘솟는 사랑의 옆구리 상처 아래인 예수님과 성모님 사이, 사랑의 핵심 부분에 자리하고 있다.

요한의 머리는 성령에 의해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에게 기울어 있다. 이는 성모님의 사랑을 맛보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려는 어린이와 같은 자세이다.

성모님이 하신 것처럼 그의 오른손은 부드러움과 찬탄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 요한의 장옷은 영원한 지혜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장미 빛인데, 이는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한 그 지혜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다. 성서에서 이런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 “원하는 사람들이 알아 볼 수 있도록 지혜는 스스로를 나타내 보인다”(지혜 6,13). “나를 사랑하면 내 사랑을 받고 애타게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잠언 8,17).

요한의 하얀 속옷은 육에 대한 승리, 즉 교회 전통이 그에 대하여 말한 완전한 정결을 의미한다. 이 정결이 요한에게 지혜와 성령을 받을 만한 자격을 얻게 하였다(지혜 1,4).

③ 마리아 막달레나

“지금 꼴찌지만 첫째가 될 사람이 있다”(루가 13,30)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왼쪽 가장 가까운 곳에는 한 때 악령의 무리들에 사로잡혔던(루가 8,2) 마리아 막달레나가 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의 밝고 붉은 색은 사랑을 상징한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머리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의 머리에 닿아있는데, 이는 그들이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비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왼손을 입에 대고 있는 표정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그녀 역시 비슷하게 경탄과 놀람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경탄하는 까닭은 그녀의 동료에게 “속세에서 저는 매춘부였지요. 그런데 지금 예수님 가까이에 서 있는 저를 보세요”라고 하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비밀을 들어내고 있는 때문이다.

그녀는 예수님이 여행하실 때, 비록 갈바리아처럼 먼곳(요한 19,25)일지라도 함께 동행하였다. 그녀는 사도들에게 “내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18)라는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한 전령사였다. 의심할 나위 없이 마리아 막달레나는 이층 다락방에서 성모님 그리고 다른 여인들과 함께 있었다(사도 1,14). 숱한 악령들에게 사로잡혀 그 공포감에 시달렸던 이 여인은 분명히 아주 대단한 열정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청했을 것이다.

④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이 여인은 예수님의 사촌 야고보의 어머니이다(마태 27,56;13,55). 그녀는 십자가의 발치에 성모님과 함께 있던 사람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 여인은 사도들과 함께 지냈으며 성령의 세례를 준비하면서 기도에 전념하였던 여인들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사도 1,5. 13-14).

그분을 믿기에 어려움을 주는 예수와의 “친척관계”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갈바리아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 줄곧 충실하였다. 아마도 그녀는 언젠가 하느님의 심판이 있는 날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겸손하고도 잊혀진 역사의 숱한 신앙인들을 대표하는 분이 아닐까?

그녀가 걸친 외투의 짙은 흙색은 겸손의 표지이다. 긴 겉옷의 옅은 초록색은, 비록 십자가의 발 밑에 있었을 절박한 상황일지라도 그녀의 마음 안에 깃들여져야 하는 굳센 희망의 상징을 보여준다. 그녀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털어놓고 있는 비밀을 주의깊게 듣고 있다. 그들의 손동작은 악마의 덫과 죄의 사슬로부터 당신의 벗들을 구해주신 예수님께 대한 무한한 경탄을 암시한다.

⑤ 백 인 대 장

이 백인대장은 예수께 대한 믿음으로 아들이 치유되었고, 그 가족 모두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요한 4,46. 53) 그의 왼쪽 어깨 너머로 치유된 그의 아들의 조그마한 얼굴이 보이고, 그 소년의 뒤에 세 사람의 이마가 보인다. 그들은 신앙에로 인도된 백인대장의 가족으로 보인다. 화가가 백인대장의 머리 둘레에 후광을 그려넣지 않은 것은 아마도 아들의 얼굴을 그 위치에 그려놓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백인대장의 신앙은 두 가지 형태로 표현된다. 우선, 오로지 예수님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은 그분께 대한 신심을 드러내고 있고, 동시에 삼위일체께 대한 그의 신앙을 상징하는 펼쳐보인 오른쪽 세 손가락, 나머지 펴지 않은 두 손가락은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신성, 인성)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나타낸다. 그는 가파르나움에 세워졌을 회당을 상기시키는(루가 7,5 참조) 한 나무 조각을 손에 쥐고 있다. 백인대장 아들의 치유 직전에 성 루가는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나에게 와서 내말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주겠다. 그 사람은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루가 6,47-48) 백인대장은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나서 그 말씀들을 효과적으로 실천에 옮겼으며.(루가 1,3), “그와 그의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었다”(요한 4,53). 이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 옮기는 사람에 의하여 바위 위에 튼튼히 세워지는 집은 참으로 믿는 이의 가정을 의미한다.

10. 작게 그려진 인물들

성모님과 백인대장 앞에 신원 미상의 작은 두 인물들이 보인다. 왼쪽 사람은 백인대장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고, 마리아쪽의 사람은 평복을 하고 있다. 이들은 무릎을 들어올린 것하며 손을 엉덩이에 바쳐놓은 태도 그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눈을 치켜뜨고 있는 것 등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둘은 분명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두 사람은 “유다는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보낸 경비병들(유대인들)과 함께 한 때의 군인들(로마인들)을 데리고 그리로 갔다”(요한 18,3)라고 쓰여진 복음의 말씀대로, 유대인으로서 로마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교수형에 처하는 임무를 띤 인물들이다.

그들이 축소되어 그려져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역할이 적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요한 10,18)라는 말씀을 잘 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반대하여 매질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예수님을 하느님의 영광에로 높이 들어올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11. 수탉

예수님 왼쪽 다리 가까이에, 수탉 한 마리가 있다. 이는 성 베드로의 배반을 상기시켜주는 닭이 아니라, 이제와 영원히 세상에 떠오르는 참 빛이요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사실, 베드로 사도가 말했다 : “여러분의 마음속에 동이 트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는 어둠 속을 밝혀 주는 등불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겠습니다”(1베드 1,19). 또한 성 요한은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이미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1요한 2,8)라 쓰고 있다.

나아가 “이와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세상의 빛이어야 한다.

12. 십자가 밑에 있는 인물들

십자가 밑의 네 사람 중 둘은 아마도 오랜 기간 신자들의 친구로 지워져 보이지 않는다. 둘은 상체만이 십자가 안으로 들어와 있다.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 먼저 그들이 조개껍질로 된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주시한다면, 이미 그들은 하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로 간주된다. 게다가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후광을 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은 그들이 하늘 나라에 속해 있지만, 그들 몸의 상체만을 보이고 있듯이 지금은 불완전한 여정에 있을 뿐이다. 그들을 주의깊게 응시해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순례자와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그들의 후광을 보아) 흠없는 자가 되게 하시어 당신 앞에 설 수 있게(그들이 예수님 곁에 있음으로) 하셨습니다”(에페 1,4)라는 바오로의 표현이 적절함을 알 수 있다.


13. 돌

이콘의 맨 아래에는 돌 아니면 바위로 보여지는 것이 있다. 아마도 이 바위는 교황의 수위권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만약 이콘 전체가 하느님의 나라를 드러내면 여기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 반석과 같이 보인다고 생각할 때, 이 반석은 그리스도가 세우신 교회의 기초로서의 반석, 즉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의 수위권으로 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반석은 우리 각자에게 개인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 즉 말씀을 실천한다면 반석이 된다. 과연 우리들의 영적인 건물은 견고한 것일까?

14. 글씨

예수님의 후광 위에 그리스어로 쓰여진 I,H,S는 예수 이름의 첫 세 글자로서 유대인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뜻한다. 그 원제가 예수님의 생애를 요약하고 있다.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라는 성서의 말대로, 여기 예수님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경멸받는 마을의 출신이라는 사실을 통해, 그의 신분에 대한 지독한 모욕이 증언된 것이다. 반면에 예수님의 영광이 당신의 왕권에 대한 보편적이고 공식적인 선언으로 말미암아 널리 포고되었다.

이 제명은 또한 모든 세대와 온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께 내린 판결문에 대한 요지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분을 “육의 눈(세속적인 표준)으로”(2고린 5,16) 바라보면서 사기꾼으로 여기는가 하면(마태 27,36), 아니면 성령의 힘을 입어 그분을 “정말 하느님의 아들”(마르 15,39)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요한 6,63)는 말씀 그대로이다. 이 제명 앞에 사람은 예수님을 택하든가 아니면 반대하든가 해야 한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상기하자 :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차라리 네가 차든지, 아니면 뜨겁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나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5-16).

15. 원형 안의 예수님

이콘의 맨 위쪽의 원형 안에는 살아 계시는 예수님의 또 다른 신비의 차원이 나타나 있다.

예수님이 오른쪽 다리를 올리시는 동작은 승천을 나타낸 것이고, 그분이 입고 계신 긴 금빛 통솔 옷은 승리와 왕권을 나타낸다.

어깨 위에 펄럭이는 진붉은 색의 영대는 “요나단이 왕의 명령으로 영광을 차지하고 진홍색 사제복을 입은 것을 보고 그를 비난하던 자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다”(1마카 10,64)라 쓰여진 성서의 구절처럼, 사랑 안에서 행해진 당신의 통치와 왕권을 상징한다.

왼손에 쥐고 계신 십자가는 승리의 도구요 정의의 지팡이이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당신 왕권이 정의의 홀(忽)이 되어”(시편 45,7) 지금은 황금색을 띄고 있다. 사실상,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을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1고린 1,23-24)라고 한 성 바오로의 말씀대로, 우리는 이 십자가에 의하여 심판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면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띄고 계시다. 실상 예수님은 “즐거움의 기름으로 도유되셨다”(시편 45,8). 그 분을 환영하는 천사들도 곧 주님이 입으신 것처럼 붉은 색, 금색의 옷들로 치장하고 있다. 아버지의 곁을 떠나 세상에로 파견되시는 아드님을 목격한 그 천사들이 아버지 품으로 되돌아가는 예수님을 환호하며 맞이하고 있다(요한 16,28).

16. 하느님 아버지의 손

이콘 맨 꼭대기의 반원 안에 축복을 내리고 있는 손은 성부의 오른손이다. 아버지의 축복은 예수님이 죽음을 통해 얻어주신 성령의 선물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예수께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요한 16,7)라고 약속해 주신 그대로이다.

성령께서도 똑같은 역할을 수행하시겠지만,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예수님의 업적을 완성하고(요한 14,26),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온전히 깨닫도록 해 주실 것이다(요한 16,13).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께서는(요한 15,1) 당신의 선물인 “생명의 샘”에 의하여 많은 열매를 맺으시고 당신을 믿는 이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요한 17,1). 그리고 이렇게 아드님의 영광이 믿는 이들 안에서 드러날 때, 아버지의 영광도 아드님을 통해 드러나신다(요한 17,1).

사부님의 권고


사부님의 권고

우리 사부 프란치스코의 권고 말씀들은 회개생활의 여러 가지 관점에 관해서 초기 형제들에게 말씀하신 28장으로 된 짧은 권고와 훈계, 주의사항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권고 말씀들은 프란치스코가 프란치스칸 카리스마에 대한 자기의 이상을 제시하고 있기에, 프란치스코의 생활양식을 따르도록 불리움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완덕의 지침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권고문의 주된 내용은 성체 안에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현존을 다루는 권고1 외에 내적 가난과 평화, 그리고 단순성 및 마음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권고 말씀들은 한마디로 복음적 단순성이 그 근본을 이루고 있는 프란치스코의 산상설교라고 불리우고 있다.

1. 그리스도의 몸

2. 자기 의지를 자기 것으로 하는 악

3. 완전한 순종

4. 아무도 장상직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말 것입니다.

5. 아무도 교만에 빠지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할 것입니다.

6. 주님을 본받음

7. 지식에 선행이 뒤다라야 합니다.

8. 질투의 죄를 피할 것입니다.

9. 사랑

10. 육신제어

11. 다른사람의 악행을 보고 분개하지 말 것입니다.

12. 누가 주님의 여을 지니고 있는가

13, 인내

14. 마음의 가난

15. 평화

16. 마음의 깨끗함

17. 하느님의 겸손한 종

18. 이웃에 대한 동정심

19. 하느님의 겸손한 종

20. 좋은 수도자와 헛된 수도자

21. 텅비고 수다스런 수도자

22. 꾸지람 앞에서 겸손

23. 겸손

24. 참된사랑

25. 참된 사랑에 대한 부언

26. 하느님의 종들은 성직자들을 존경할 것입니다.

27. 악습을 몰아내는 덕행

28. 은총의 선물을 잃지 않도록 감출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프란치스꼬는 1181-82년 겨울, 부유한 포목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많은 재산 덕분에 젊은 시절에 이미 부(富)와 쾌락과 명성(名聲)을 누렸으며, 동료들 사이에서 무절제한 선동자로 불려지기도 했었다. 18세 되던 해에 뻬루지아와의 전쟁에 참가하여 기사의 꿈을 실현하려 했지만, 불행히도 그 전쟁은 아씨시의 패배로 끝나고, 그는 뻬루지아인들에게 잡혀 1여 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였다.

긴 회복기를 거치는 동안 깊은 영적 변화를 맞는다. 그리고 세속의 모든 생활을 청산하고 스스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다미아노 성당에서의 "나의 집을 고쳐라"라는 음성과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복음말씀을 따라 세속에서의 모든 생활을 포기하고 완전한 가난의 삶으로 귀의한다.

프란치스꼬 성인의 열정은 하느님을 향한 노래의 몸짓으로 이어져 리보또르또에서 그를 포함한 열 두 형제들을 구성하기에 이르렀고, 이것은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구두 인준을 통한 수도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뒤이은 그의 사도적 활동은 술탄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데까지 뻗어갔다.그리스도를 그대로 닮기를 열망하던 그는 죽기 2년 전인 1224년 9월 17일, 라 베르나 산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상처를 상징하는 오상(五傷)을 받았다.

그 날부터 세상과 모든 피조물은 프란치스꼬 안에서 더욱 새롭게 변화되었다: "모든 피조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선하심에 깊은 애정을 느꼈다." 성인은 모든 자연 만물에게 자신들을 창조한 주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모든 자연을 형제 자매라고 불렀던 것이다.

1226년 10월 3일 저녁 프란치스꼬는 뽀르치웅꿀라로 돌아와 형제들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시편을 낭송했다 "소리 높여 당신께 부르짖을 때 이 호소를 들으소서...". 그리고 죽음을 맞이했다.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연대기)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연대기)


1182(1181?)년
프란치스꼬가 아씨시에서 탄생

1205년

기사가 될 마음으로 아뿔리아로 가서 브리엔의 월터군에 입대.
그러나 스뽈레또에서 환시를 보고 아씨시로 다시 돌아옴(봄).
회개 생활을 시작(여름). 나병환자를 만남(겨울).
성 다미아노 십자가에서 "프란치스꼬야, 가서 나의 집을 고쳐라"하는 주님의 말씀을 들음.

1209(1210?)년

프란치스코는 첫 동료들과 함께 로마로 가서 인노첸시오 3세 교황 성하로 부터 회칙을 구두로 인준 받음.

1212년
3월 18일 밤에 클라라를 뽀르지웅꼴라에서 복음적 생활로 받아들임.

1220년
연초에 술탄의 허락을 받아 성지를 순례하고 시리아까지 선교 여행을 함. 형제회가 성지에서도 처음으로 조직됨.
1월 모르코에서 5명의 형제가 순교함. 봄에 프란치스꼬는 형제회에 대한 걱정스러운 소식을 듣고 이탈리아로 급히 돌아옴.
우고리노 추기경이 형제회의 첫 '보호자 추기경'으로 임명됨.
프란치스코가 형제회의 총봉사직을 사임하여 까따니의 베드로가 총대리로 선출됨.

1221년

호노리오 3세는 우고니로 추기경이 재속 형제회를 위하여 작성한 회칙을 인준함.
시에나의 루케치오와 보나돈나 부부가 재속 형제회의 첫번째 회원이 됨.

1223년
연초에 프란치스코는 폰테 콜롬보에서 다시 회칙을 작성, 6월 11일에 총회가 개최되어 이 회칙을 검토한 후 교황께 인준을 청함.
11월 29일 교황 호노리오 3세가 Solet annuere 대칙서로 작은 형제회의 회칙을 인준함. 이것을 인준받은 회칙이라고 함

1224년

9월 17일 프란치스코는 라베르나 산에서 오상을 받음.

1226년
봄에 눈병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하여 형제들이 그를 시에나로 모셔감.
7~8월에 죽음이 다가올 줄 알고 아씨시로 돌아감. 이때 유언을 씀.
10월 3일에 뽀르지웅꼴라에서 해질녘에 자매인 죽음을 맞이함.

1228년

7월 16일 아씨시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성인 반열에 오름

1230년
5월 256일 그의 거룩한 시신이 성 죠르지오 성당에서 그의 영광을 위해 새로 세워진 아씨시 대성당으로 이장됨

1916년
교황 베네딕도 15세에 의해 가톨릭 액션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됨.

1939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와 함께 이탈리아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됨.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환경 보호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됨

성녀 클라라의 생애

성녀 클라라의 생애



[생애]
1193~4년 아씨시 최고 귀족 가문에서 출생
1211년 성지주일 저녁에 출가하여 프란치스코와 그 동료들과 합류
- San Paulo a Bastia 분도 수녀원에서 잠시 기거
- Sant' Angelo in Panzo 수도원에 손님으로 거주(친동생 아녜스 합류)
1215년 제4차 라떼라노 공의회에서 새로운 수도생활 회칙 불인정 - 클라라는 베네딕도 회칙을 따를 수 밖에 없었음.
1216년 가난의 특전을 얻어냄(인노첸시오 3세)
1219년 우골리노 회칙(주교 권하에서 면속, 베네딕도 회칙에 따른 생활양식) - 가난에 대한 언급, 프란치스코의 가족에 속한다는 언급 없음
1224년 클라라의 중병 시작 - 죽을 때까지 지속됨
1226년경 어머니 오르똘라나가 산 다미아노 입회
1227년 가난의 특전 재 확인
1229년 막내 베아뜨리체 입회
1234년 프라하의 성녀 아녜스 수도원 창설 - 편지 교환 시작
1240년 클라라의 성체의 기적으로 사라센인들 쫓아냄
1241년 오랑캐를 물리침
1247년 인노첸시오 4세 회칙 - 작은 형제들의 권하에 예속, 베네딕도 회칙이 아니라 프란치스코 회칙에 따른 서약 - 가난의 특전 내용이 없음
1252년 9월 16일 클라라의 회칙 보호자 추기경 라이날도에 의해 인준
1253년 8월 9일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부터 인준
1253년 8월 11일 선종
1255년 8월 15일 알렉산드로 4세가 Anagni에서 클라라 시성

[클라라의 글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성녀의 이미지]
1. 강인하고 투쟁적이며 항구심이 강한 여성
2. 여성을 위한 최초의 회칙 작성한 여성
3. 중세의 몇 안되는 여성 영성작가

[클라라의 세가지 우선 관심사]
1. 충실성(프란치스코와 그 형제회와의 결속, 가난의 생활양식)
2. 공동생활의 체계 - 민주화
3. 그리스도적-혼례적 영성
- 긍정적 인간관, 기쁨의 영성, 친교의 달콤함
- 하느님관(그리스도는 우리의 길,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께로 가는 우리의 길)

* 프란치스코가 제2의 그리스도가 되려고 했다면 클라라는 제2의 마리아가 되려했다.

성화로 보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성화로 보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1
한 단순한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은 성 프란치스코(대전 1,1)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아시시의 한 단순한 사람이 복되신 프란치스코 앞에 망토를 깔아 놓고 프란치스코를 통하여 위대한 일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의해 공경받고 영광스럽게 될 것이므로 온갖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고 외쳤다.

2

가난한 귀족에게 망토를 선물함(대전 1,2)

복되신 프란치스코께서 귀족 출신이지만 너무 가난하여 옷차림이 남루한 한 기사를 만났다. 프란치스코는 측은히 여겨 즉시 자신의 옷을 벗어 그에게 주었다.

3
스폴레토에서 꿈을 꾼 후 아시시로 돌아감(대전 1,3)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밤에 잠들었을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징으로 장식된 기사들의 무기 호화롭게 빛나는 훌륭한 궁전의 환시를 보았다. 프란치스코가 이 모든 것 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하늘로부터 이 모든 것 은 자신과 자신의 기사들을 위한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4


성 다미아노 십자가의 신비스런 목소리를 들음(대전2,1)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프란치스코야, 가서 나의 집을 고쳐라. 이렇게 쓰러져 가는 것이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느냐." 하는 소리를 들었다

5

프란치스코가 아버지에게서 받는 모든 것을 포기함(대전 2,4)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되돌려주었다. 옷을 벗어 아버지에게 되돌려 주며 아버지의 재산과 땅을 포기하면서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이제까지 나는 당신을 나의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나와의 연을 끊으셨으니 지금부터 나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이십니다."
6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꿈(대전 3,10)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서 복되신 가난한 사람, 프란치스코가 허물어져가는 라테라노 대성당을 무너지지 않도록 떠 받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7.

교황이 회칙을 인준함(대전 3,10)

교황(인노첸시오3세)가 회칙을 인가하고 회개를 설교하라는 사명을 주고, 프란치스코 동료들 중 평형제들에게는 아무런 방해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설교할 수 있도록 삭발례를 베풀었다

8.

불마차 위에 나타난 프란치스코(대전 4,4)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리보토르토 외곽의 오두막에 모여 있는 형제들과 상당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다른 오두막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리보토르토에 있는 형제들 중 몇 사람은 기도하고 다른 사람은 잠들어 있었을 때에 이상한 광채를 지니니 번쩍거리는 사륜마차가 오두막 문안으로 들어와서 방 주위를 이리저리 세 번 돌았고 깨어 있던 형제들은 아연해져 버렸으며, 다른 사람들은 놀라서 깨어났다

9.
한 천사가 파치피고 형제에게 천상의 자리를 보여줌(대전 6,6)

파치피코 형제가 프란치스코와 함게 여행 중 폐허가 된 성당에 들어가 열심히 기도하였다. 거기서 이 형제는 탈혼 중에 하늘에 많은 왕좌가 있는 환시를 보았는데 그 중 하나가 유독 영광 중에 빛났으며 귀한 보석으로 장식되고 다른 것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었다. 그때 그는 한 소리를 들었다: "이 왕좌는 타락한 천사의 것이었다. 지금은 그것을 겸손한 프란치스코를 위해 비워두고 있다."

10.

성인이 아레쪼에서 마귀를 쫓아냄(대전 6,9)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당파 싸움으로 갈라질 위험에 처해 있는 마을 아레쪼에 갔을 때 그 마을 위로 마귀들이 활공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실베스트로 형제에게 "성문으로 올라가서 전능하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악마들은 순명하여 즉시 따나라고 명하시오"하고 말하였다. 실베스트로는 이를 실행에 옮겼고, 마귀를 쫓아 보낸 바로 그 순간 마을은 평화를 되찾았다.

11.

술탄 앞에 선 프란치스코(대전 9,8)

복된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 신앙을 증거하기 위하여 바빌로니아 술탄의 제사장들과 함께 타오르는 불속에 들어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술탄은 그의 제안에 그와 같은 선택을 감히 받아들이지 않겠노라고 대답하며 거절하였다. 술탄은 성인에게서 존경심을 느꼈으나,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기를 거절했다.

12.

프란치스코의 탈혼 상태(대전 10,4)

어느 날 기도하던 복된 프란치스코를 지켜보던 형제들은 그가 두 손을 십자가 모양으로 뻗치고 가끔 땅에서 들어올려져 빛나는 구름으로 둘러싸인 것을 볼 수 있었다.

13.

그레치오에서의 성탄 밤(대전 10, 7)

복된 프란치치스코는 그레치오에서 아기 예수의 성탄을 기념하고자 했다. 그래서 교황의 허락을 받아 구유를 짚과, 소 한 마리, 나귀 한 마리와 함께 준비하도록 하고 사람들을 초대하였다. 성인은 구유 앞에서 창미사를 노래했고, 성탄에 관하여 설교하였다. 성 프란치스코의 가까운 친구였던 한 기사는 성인이 가져오게 한 구유에서 한 아기 예수가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14.
샘의 기적(대전 7, 12)

한번은 몸이 허약하여 진 복된 프란치스코가 라 베르나 은둔소로 갈 때 한 농부의 나귀를 얻어타게 되었다. 때는 여름철이고 계속되는 여행에 지친 농부는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성인은 이 농부를 위하여 즉시 나귀에서 내려 바위 위에서 물이 솟아나오도록 기도하였다. 그래서 하느님의 놀라운 아량으로 농부는 바위로부터 물을 마실 수 있었다.

15.
새들에게 한 설교(대전 12,3)

복된 프란치스코가 베바냐에 가는 중 많은 새들에게 설교하셨다. 그가 설교하는 동안 새들은 자기들의 기쁨을 놀라운 모양으로 나타내 보였다. 새들은 부리를 벌리고 그를 빤히 쳐다보면서 목을 쭉 펴고 날개짓을 했다.

16.

프란치스코가 첼라노의 한 기사의 죽음을 예언함(대전 11, 4)복된 프란치스코는 첼라노의 한 기사의 식사 초대를 받아 점심을 함께 하게 되었다. 거기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의 죽음을 예언하며 성사를 볼 것을 권하였고, 그 기사는 고백성사를 보고 자신의 모든 것들을 정리하였다. 사람들이 식탁에 앉아 막 식사를 시작하려고 할 때 그 기사는 명을 달리하였고, 주님의 품안에 잠들었다

17.

프란치스코가 교황 앞에서 설교함(대전 12, 7)

복된 프란치스코가 교황과 추기경들 앞에서 설교를 하였다. 그의 말은 인간의 학문에서 나오는 지식적인 말이 아니라 거룩한 영에 이끌려 나온 말로서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참된 회개를 하게했다

18.
프란치스코가 관구회의에 나타남(대전 4,10)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이 아를르 관구회의에서 십자가 명패의 문귀에 대해서 설교하는 중에 복된 프란치스코가 십자가 모양으로 양팔을 뻗치고 형제들을 축복하며 허공 중에 나타났다. 거기 모인 형제들은 마음의 위로를 느꼈으며 실제로 사부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성령에 의해 확신하게 되었다.

19.

프란치스코가 오상을 받음(대전 13,3)

복된 프란치스코가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무렵 어느 날, 라 베드란 산에서 기도하고 있던 중, 프란치스코는 여섯 날개를 가졌고, 십자가에 못박힌 형상의 세라핌이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환시를 보았고, 그 환시후에 그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환시에서 본 것과 똑같이,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오상과 같은 못자국이 나타났다.

20.

성 프란치스코의 죽음과 장례식(대전 14,6)

마침내 하느님의 신비가 프란치스코 안에서 다 이루어졌을 때그의 영혼은 하느님 영광의 심연으로 들어가고 프란치스코는 하느님 안에서 잠들었다. 그의 형제들 중 한 형제는 그의 영혼이 빛나는 별의 모습으로 수많은 바다를 넘어 흰 구름 위를 떠받쳐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21.

아우구스티노 형제와 주교가 받은 계시(대전 14,6)

복된 프란치스코의 임종 때에 '테라 디 라보로'에 있던 봉사자 아우구스티노 형제가 갑자기 "사부님,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나도 당신과 함께 가겠습니다"하고 외쳤다. 바로 그 때 그도 그 자리에서 육신을 떠나 그의 사부를 따라 갔다. 또한 성인의 임종시 당시 성 미카엘 성지를 순례하러 가던 아시시의 주교는 꿈에서 "나는 이제 하늘로 돌아갑니다"하고 말씀하시는 성인을 보았다.

22.

기사 예로니모가 성 프란치스코의 오상을 확인함(대전 15,4)

돌아가신 성 프란치스코의 시신이 포르치운쿨라에 모셔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성인의 몰려들었고, 교양있고 사려깊은 예로니모라는 사람이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성인의 양손과 발, 옆구리를 자기 손으로 만져보았다.

23.

프란치스코의 시신이 성 다미아노에 멈춤(대전 15,5)

수 많은 군중이 나무에서 가지를 꺽어들고 큰 촛불을 들고 찬미가와 성가를 부르며 성인의 유해를 아시시로 옮기던 중 클라라 성녀와 자매들이 있는 다미아노 성당을 지날 무렵 잠시 멈추고 고결한 동정녀와 자매들에게 그의 몸을 보게하고 입맞추게 하였다.

24.

프란치스코의 시성(대전 15,7)

성인 생존 당시부터 그를 잘 알고 있던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프란치스코가

하늘에서 영광을 받았다는 것을 온 세상이 믿게 하기 위해서 성인이 일을킨

여러 기적을 글로써 기록하고 증인들로부터 확인하였고 추기경들과

고위 성직자들의 동의로써 프란치스코를 성인품에 올리기로 결정하고 1228년 7월 16일,

교황은 아시시의 성 죠르죠 성당에서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25.

25. 그레고리오 9세의 꿈에 나타남(대전, 기적 모음집 1,2)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성인의 시성식 전에 프란치스코의 옆구리

상처를 의심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프란치스코 성인이 꿈에 나타나 유리잔을

가져오라하고는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받으라고 말했다.

교황은 환시 중에서 유리컵을 가져왔는데 컴 가득히 채워지는 것을 보았다.

타우(Tau) 란 ?

타우는 (Tau)는 십자가의 일종으로 역사적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의 생활과 행동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나아가 신심의 대상이 됨으로써 다미아노 십자가와 더불어 탁월한 프란치스칸 상징이 되었다.

타우는 그리스어 알파벳 아홉 번째, 히브리어 스물 두 번째 즉 마지막 글자다. 타우는 성서적으로 하느님의 것, 구원의 표로 인식되었다.


타우는 성프란치스코의 문장인 동시애 서명이다.

타우표시는 프란치스코의 십자가에 대한 신심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전 인격과 사명에 대한 그의 신심을 보여준다. 그에게 있어서 타우는 구원에 대한 보증이었다. 또한 보편적인 구원의 표지였으며 타우는 회개와 가난의 표지였다.

타우로 낙인찍히는 것이 가난의 동기요, 삶 자체였으며 그리스도처럼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른이들에 대한 섬김과 선교의 기치로서 타우를 내세웠다. 프란치스코에 있어서 타우는 하느님의 선과 사랑의 표지였으며 영광의 명폐였으며 완전한 기쁨의 원천이었다.

성 프란치스꼬가 남긴 타우 표시들

이렇듯 타우 표시가 프란치스꼬에 의해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기작가들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역사 자료들을 보기로 하자.

첫 번째 사료는 1229년에서 1238년 사이에 수비아꼬 분도회 수도원의 미사 경본에 쓰여진 “모든 성직자들에게 보내신” 두 번째 편지의 사본이다. 이 사본에는 그의 편지와 더불어 그의 타우 서명이 정교하게 베껴져 있다. 두 번째 사료는 현재 아씨시 성 프란치스꼬 대성당 유물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는 성 프란치스꼬가 라 베르나에서 영원한 구원에 대한 의심과 낙심에 빠져 있던 ‘레오 형제에게 써준 축복문’이다.

프란치스꼬는 이 축복문에 타우 표시를 남겼다. 레오 형제는 이 축복문의 끝부분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복되신 프란치스꼬가 나, 레오 형제에게 자신의 손가락으로 이 축복문을 써주셨습니다. ”

끝으로 폰떼꼴롬보의 막달레나 성당의 오른쪽 복음을 앍는 쪽 위의 창문턱에 남아있는 붉은 색 타우를 들 수 있다. 이것은 15세기부터 흰석회 도료로 덮혀있던 것인데 1920년대 초에 발견되었다. 이 타우가 그려진 시기는 성 프란치스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사료들에 덧붙여 그분의 사후에 일어난 다음과 같은 기적들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스띠아 교구내 코리 출신의 한 주민이 한쪽 다리를 완전히 못쓰게 되었다. 성 프란치스꼬는 그의 이런 사정을 모르는 채 할 수 없었으니 한 동료와 함께 그에게 나타났다. 성인은 그의 간청을 들어주러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타우자가 밑에 새겨져 있는 지팡이를 그의 환부에 갖다 대었다. 잠시 후 상처가 아물고 환자는 건강을 회복했으며, 지금까지도 성인이 당신의 지팡이를 댄 그 자리에서 타우자를 볼 수 있다.’(3첼 159)


폰테 콜롬보 경당의 타우 십자가

프란치스코의 영성


프란치스코의 영성

그리스도의 인간성 (The Humanity of Christ)

그리스도와 프란치스코간의 애정 관계에 대해서는 하등의 의심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중세 말엽의 회화들 속에 그렇게도 많이 나타나는, 최후의 심판을 맡으신 심판관으로서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인간을 사랑하시어 인간이 되신 베들레헴의 그리스도이었고, 영적으로 굶주린 인간을 위해 음식으로서 자신을 내주었던 최후 만찬의 그리스도이시며, 인간이 자기 자신의 비인간적 상태로부터 일어날수 있도록 희생재물로서 죽으셨던 갈바리산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했던 프란치스코 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 사람이여 보십시요! 육신에 있어 당신이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모상에 따라 그대를 지으시고 형성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얼마만큼 탁월하게 그대를 들어 높이셨는지를!"

보속, 회개 (Penance-Conversion)

우리가 그같은 아버지(하느님)와 그같은 형제(그리스도)를 가졌음을 발견하면서 압도 당할 때 전적인 회개이외에, 곧 자신의 옛 생활을 슬퍼하거나 거부하는 것 이상의,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쳐버리는 애정관계 같은 그 회개 외에 다른 응답이란 불가능합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의 회개 그이 보속은 대단히 기쁨의 일들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완전한 충족감을 주었고, 만약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으면, 결코 자기를 버리질 않을 신부인, 다른 어느 신부보다도 더 뛰어난 신부(정배)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의 회개에 대해서 , 프란치스코는 "나에게 쓰디쓰게 보였던 것이 영혼과 육신의 감미로움으로 변했습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생활양식으로서의 복음 (The Gospel as a way of life)

그러한 회개이후, 프란치스코는 크리스찬으로 남아 있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들만을 이행하고는 더 이상 살수 없었습니다. 그는 법을 초월하고, 법보다 훨씬 더 멀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삶과 동화되는 정도로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복음이라는 도전과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인간성을 넘어 오르도록 해 주고 또 세상으로 하여금 그것이 지닌 집합적인 죄악을 넘어 오르도록 복음이 문을 열어준 그 가능성들이 프란치스코의 영혼 안에 있는 현을 너무도 힘차게 진동시키어 그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온 마음과 영혼으로 그리던 것이다."

계속 되는 육화 (The Continuing Incarnation)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육화는 단순히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역사적인 사건만은 아니었습니다. 육화는
과거에 이루어 졌지만 또한 현재에도 일어납니다. 복음적 생활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의 자신의 역할에서 그리스도를 탄생시키도록 계속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사명을 수임 받습니다. 지극히 독특한 표현으로 프란치스코는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가지고 우리의 몸과 마음에 그분을 모실때,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들이 됩니다. 표양을 보여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할 거룩한 행실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게 됩니다."

형제애 (Brotherhood)

프란치스코의 유언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구절은 아마도 그가 그의 첫 번째 제자들과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시작을 표현하는 데에 사용한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주께서 나에게 몇몇 형제를 주셨습니다." 계급 구분이 경직화되고 수도원의 규칙에서조차 제 2계급의 시민들에겐 평수사 직분만 허용되었을 때, 또한 주인과 하인 귀족과 농민, 특권 상류층과 평민하층의 계급이 있었을 때, 또 의혹과 불신이 친구들 사이에서조차 그 시대의 하나의 질서가 되었을 때, 프란치스코는 적어도 자신의 수도회에서는 참된 형제애가 아직도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수도회를 작은 형제들의 회라고 이름지었을 때, 형제애란 인간에 대한 인간의 비인간적 행위에 그리스도께서 도전하시는 것은 물론 자신도 도전하는 일임을 분명하게 나타내었습니다.

작음 (Minority)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수도회를 형제들의 수도회로 보았다면, 그는 또한 그것을 특별히 '작은 형제들'의 수도회로 보았을 것입니다. 소수 혹은 작음이란 말이 가난하고 무력하며 침묵을 지켜야 하는 소수 그룹에 대해 말할 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작음은 권력과 특권과 지위에 대한 추구와의 절연이었습니다. 그것은 가난하고 무력하며 무방비 상태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에 축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이들, 곧 성서가 말하는 "야훼의 가난한 자"처럼 되려는 욕망이었습니다. 그것은 봉사 받지 않고 봉사하려는 욕망이고,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고통을 겪고 함께 나누며, 서로 관심을 갖고 도와주며 서로 유용한 자가 되려는 욕망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군림하려는 욕망, 즉 인간의 가장 악한 경향을 극복 하려는 욕망입니다.

가난 (Poverty)

재산, 풍요 그리고 개인재산과 물질에 대한 집착, 이것들은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형제애 및 하느님과의 일치에의 장애물로 보였습니다. 그 삶이 돈과 돈으로 살수 있는 것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보다는 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자연질서의 가장 나쁜 악용 가운데 하나인데, 대단히 빠르게 개인을 비인간화에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인격이 재산보다 더 중요하고 사람들이 물건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난은 확실히 그런 것에 대한 증거자로서의 의미를 지닙니다.

인격주의 (Personalism)

채스터톤(G.K. Chesterton)은 프란치스코의 인격주의에 관해 아마도 결정적인 말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군중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은 더욱더 사실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존경했고, 이는 그가 사람들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그들 모두를 존경했음을 의미한다. 그에게 놀라운 인격적 힘을 주었던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즉 교황으로부터 거지에 이르기까지, 술탄으로부터 숲 속에서 기어 나온 누더기 옷을 입은 강도에 이르기까지 불타는 그 갈색 눈동자를 들여다 본 사람은 누구나 프란치스코가 진정으로 '그 사람'에게 관심 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신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 개개인의 삶에 관심을 가졌고 그 사람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고 진지하게 대하였습니다."

기도 (Prayer)

기도, 특히 관상기도는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너무도 중요해서 한때 그는 세상에 대한 사도직 사명을 포기하고 관상 생활로 은퇴하려는 유혹을 심하게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 해주셨듯이 그의 임무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동굴에서건 장터에서건 라 베르나 산에 있는 백작의 저택에 있건, 홀로 있건 형제들과 함께 있건 노동하는 중에 있건 간에, 프란치스코는 늘 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관상기도를, 때로는 자유기도를, 때로는 형제들과 함께 공동기도를, 때로는 노동기도를 바쳤습니다.

고통의 수용 (Acceptance of Suffering)

고통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고통은 모든 대가를 치루고서 피해야 하는 악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경외심을 가지고 고통에 접근했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다음의 메시지를 알아들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하고 고양시키기 위해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프란치스코는 고통을 수용했을 뿐 아니라, 사도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그리스도 고통의 남은 부분을 나의 몸으로 채우겠다"고 했듯이 고통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평화 (Peace)

프란치스코는 전쟁상태에 있는 귀족과 하인, 크리스챤과 모슬렘 교도, 아씨시의 귀족계급과 하층 서민계급
사이의 분쟁에서 평화의 건설자로서 인정받았습니다. 그 스스로가 평화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입술로 평화를 선포하고 있는 동안에, 당신의 가슴속에 평화를 더욱더 충분히 간직하도록 힘쓰십시오. 어느 누구든 당신 때문에 분노나 모욕적 언동을 불러 일으켜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당신이 보이는 자제의 결과로서 평화와 선의, 자비에로 움직여야 합니다"라고 그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말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존경 (Respect for the Church)

교회는 본질적인 교의 및 윤리영역에서 보다 다른 영역, 즉 인간적 나약함과 심지어 오류에 항상 떨어 질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시대에 있어서 교회 안의 인간적 나약성은 대단히 커서 교회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현존의 표지가 거의 되지 못하였습니다. 교회는 정치적 권력을 지님으로 인하여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성직자의 대다수가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며, 反聖職(Anticlericalism)主義가 충분히 근거를 지닌 채 만연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네 가 보다시피, 폐허가 되어 가고 있는 나의 교회를 수리하여라"고 프란치스코를 부르셨습니다.프란치스코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성직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파견되었습니다. 그것은 성직자들의 부족함을 우리들이 보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평화의 자녀들처럼 행동한다면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 성직자도 사람들도 함께 얻을 것이고, 그러면 주님은 그것을 성직자의 타락에서 사람들만 구 하는 것 보다 더욱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십니다”

오늘에 있어서의 프란치스칸 증거 (Franciscan Witness Today)

세상은 프란치스코의 시대 이래 여러번 변화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슬프게도 똑같은 조건들과 문제들이
우리의 시대에 너무도 많이 되돌아 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상황을 변화시키며,냉담자들을 깨우치는가 하는 방법들을 권고하는 수 백만개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다수의 말들은,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상투적인 말에 불과 합니다. 또한 말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말은 모순된 소리였으므로 다른 이들에게 받아들여 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로서 그들은 말한 것에 대한 파괴적 논리를 갖게 됩니다. 폴 사이몬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것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내가 의심하게 된 것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내가 한때 진실이라고 주장했던 모든 것을; 나는 신념도 없이 홀로 서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진리는 당신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너 역시 나의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아마도 그분은 우리 시대 사람들이 알게 될 유일한 진리는 개개인, 신앙인,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 애정 깊고 평화를 애호하며 충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일 것입니다. 그것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당신은 당신의 이웃이 항상 읽게 되는 유일한복음이 될 것입니다"

파티마 세계 사도직 CELL 기도회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알기(CELL 기도회)

1917년 포르투칼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복되신 성모 마리아의 요청에 응답하기 위한 운동이며, 교회 내의 강력한 쇄신 운동으로써 전세계의 수천만 명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의 목적은 성모님의 파티마 발현을 통하여 드러나게 된 천상 평화의 계획을 받아드리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성모님께서 제시한 성화의 길, 즉 묵주의 기도와 희생, 보속,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께의 봉헌, 첫토요일 신심 등으로 성화됨으로써 영적 어머니의 손길과 교회의 지도를 받아들여 평화의 도구가 되는데 있다.


★ 역사와 기원

1946-1948년 미국의 콜겐 신부는 존 헤퍼드와 함께 푸른 군대의 공동 창설(존 헤퍼드는 파티마 발현의 세 어린이 중 한 명인, 루치아 수녀님의 도움으로 파티마 레이리아 주교의 승낙을 얻어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 군대)의 서약서가 작성 되었다. 1950년 콜겐 신분와 존 헤퍼드는 성모 성년을 맞이하여 처음으로 파티마를 순례했다. 그들은 약 백 만명의 서약서를 성모님께 바치고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나무 밑에 그것을 묻었다. 오늘날에도 서약서는 그곳에 묻혀 있으며 그곳에는 새로 서약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가 계속해서 바쳐지고 있다. 푸른 군대란, 창설자 존 헤퍼드의 말처럼 소리없는 군대, 기도와 희생의 군대, 주님 앞에 겸손되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군대이다.



★ CELL 기도 모임

CELL 기도는 1917년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의 '기도하라, 희생하라, 티없는 내 성심에 봉헌하라'는 요청에 응답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를 이루는 세포(CELL)들의 소그룹 모임이다. 일주일에 한 번 성모님의 요청대로 자신의 성화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 한 시간 정도 기도하는 소규모의 영적 모임을 말한다.

★ CELL 기도의 기원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죄인들의 회개와 세계 평화를 위해 세 가지 조건을 주셨다. 그것은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고 자신이 받은 모든 고통을 희생으로 바치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들을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봉헌하라는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이일을 파티마의 순박한 세 어린이들에게 먼저 가르치셨고 그들을 빠른 시일 내에 성화 시키셨다. 그 어린 세 목동들이 성모님과 함께한 기도가 바로 파티마 세계 사도직 푸른 군대 셀기도의 시작이 되었고, 셀기도는 성모님으로 부터 배우고 영감받은 그 어린이들의 방법을 따른 것이다.

★ CELL 기도의 목적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평화의 계획을 전달하는 전달자로서 어린이들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성모님의 뜻을 받아드리는 셀기도 회원들을 통해 이 평화의 계획을 이루고자 하신다. 그럼으로 셀기도는 성모님께서 파티마에서 제시하신 요청들에 응답하여 자신과 이웃의 성화,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고 파티마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파티마 세계 사도직(푸른 군대) 미주 평의회 지도 신부: 김 재섭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TEL: 818-571-8438

샌디에고 본당 파티마 세계 사도직(Cell)기도회 지도 신부: 안 철민 아브라함 신부










각 단체별 CELL 기도 모임


매월 첫 금요일
연합 CELL 기도회: 오전 10:00(새성전)
성모 신심 미사: 오전 11:00(새성전)

전체 CELL 연합회 회장: 안숙례 아드리아나(858)-472-8589

부회장: 정경휘 스텔라

총무: 김은경 글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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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샘: 이 경민 베로니카 (858)-877-0931 장소: 본당 새성전 매주 금요일 오전 10:30

즐거움의 샘: 김 은경 글로리아 (858)-248-0545 장소: 렌초 버나도 매주 금요일 오전 10:00

하늘의 문: 최윤경 안젤라 (858)-750-5270 장소: UTC 매주 금요일 오전 10:00

바다의 별: 박윤경 마리아 (858)-245- 8625 장소 :UTC 매주 금요일 오전 10:00

궤약의 궤: 이봉주 데레사 (858)-717-3245 장소: 미라메사 매주 금요일 오후 7:00

원죄없는 성모님의 마을:
박성수 요셉 (760)-458-2358 장소:칼스베드 오션 사이드 매주 화요일 오후 1:00



기도회 모임과 활동사진



금요 신심 미사



금요 신심 미사


연합 셀 기도회

가정 방문 기도


본당 내 주방 봉사


33일 봉헌 기도

준비 중입니다.

사랑의 샘

서로 사랑하기

포콜라레회

매월 첫 금요일 10:00AM
김미경(세실리아) 619-743-3509

포콜라레란
이탈리아어로 "벽난로"를 뜻하며 가정의 따스함과 사랑의 열기를 상징하는 말로,
초창기에 주위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마리아 사업회로도 알려진 포콜라레 운동은
1943년 끼아라 루빅에 의해 이탈리아 북부 트렌토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포콜라레 운동이 태어난 목적은
예수님의 유언인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17:21)를 실현시키기 위한 것으로
이를 실천하는 생활은 일치의 정신을 형성하게 됩니다.

포콜라레 영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불어 살게하는 강한 공동체의 특성을 갖고있으며,
복음말씀에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빛을 따라 걸어 온 길

"나는 이 세상을 지나는 영혼입니다.
아름답고 선한 많은 것들을 보았고,
늘 오로지 아름답고 선한 것들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어느 날, 특별하지 않은 어느 날,
하나의 빛을 보았습니다.
다른 아름다운 것들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기에,
나는 그 빛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진리였다는 것을"


-끼아라 루빅 (포콜라레 운동의 창시자. 2008년 3월14일 지상 여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