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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 한인성당 가톨릭 정보 San Diego Catholic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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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가주 한인사제 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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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홍가브리엘 신부님의 미니홈피

과테말라에서 천사의집을 운영하시는 홍가브리엘 신부님의 소식을 전합니다.

과테말라 선교후원회
11751 Monarch St
Garden Grove, CA 92841
TEL : 714-903-4588
FAX : 714-903-4343
email: austinnac.com

2008 부활절 메세지

Date: Wed, 19 Mar 2008 23:30:56 -0600
From: honggabriele [at] gmail [dot] com

이렇게 메일로 종종 후원회원님들에게 인사를 드릴까 합니다. 우선 광주리에 봉사자님께 메일을 보냅니다. 각 회원들께도 항상 연락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직접 모든 회원님들께 통합메일을 보내는 것이 나으면 그렇게 하고요. 4광주리 김윤경 로사 자매님의 이메일이 빠져있습니다. 주소를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가까우신 분이 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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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사람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경배합니다.

지난 성탄이 지나고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제일 큰 일은 저희 집 두 아이가 중학교를 가면서 기숙학교로 자리를 옮기게 된 일입니다. 조금한 잔돈을 요령껏 모아서 생일날 조잡하면서 풍성한 길거리표 목걸이를 제 목에 걸어주던 녀석들이어서 그런지 빈 자리가 느껴지네요.

두 번째는 지난 일월에 저한테 선교사제라는 직함이 생겼다는 거지요. 후……

이름에 수식어 하나 더 달라 붙는 것이 무겁고 부담스러운 일이듯, 어머님의 씁쓸한 표정 속에 담긴 무거움이 뒤섞여 가슴에 청둥 항아리 하나 얹어 놓으듯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그냥 가볍게 생각하려 합니다. 먼 길 가려면 마음도 가벼워야 하니까요. 선교사제로 파견 받았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사랑하고 있는 이 자리에서 지금보다 더 깊게 사랑해야 한다는 소명을 받은 거라고 그렇게 여기기로 했습니다. 선교사제라는 직함 덕택에 앞으로 적어도 10년 동안은 이 곳에서 인사이동을 걱정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됐으니 그것이면 된 것이지요.

세 번째는 작은 나눔이 이제 작은 기적들로 변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

이제 50주년을 맞는 청주 교구가 미국 메리놀 신부님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과테말라 사업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 3000원씩 5000명의 후원회원을 목표로 한다네요. 함께함을 느끼는 마음처럼 고마운 게 없겠지요. 저희 교구 젊은 사제 밴드 그룹들도 과테말라 자선 콘서트를 열어서 함께 하는 마음을 보내주셨고요. 모든 분께서 만들어 주시는 나눔 가운데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나 봅니다..

참 사람으로 참 기쁨으로 또, 다시 한 번 사랑으로 부활하시는 예수님께 깊게 경배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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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람의 눈에서 푸르른 슬픔을 보았습니다.

천사의 집 10월 소식지

천주교 과테말라 대교구 사회복지법인 미리내. 아동보호시설 천사의 집.
Arquidiocecis de Guatemala. Obra bienestar social. Asociacion Minine. Hogar para ninas : Casa de Angel.
주소 43-85. 9Av. MonteMaria 3. Villa Nueva. Guatemala.
Tel. 집 (502) 2479-0063. . 원장신부 홍승의 5990-1537.
담당교사 연규련 4194-2418.

과테말라 천사의 집 소식 2008년 10월


우리 식구 이야기 홍승의 가브리엘 신부

미운 다섯 살이라더니 저희 집에서도 다섯 살 박이 쌍둥이 다루는 일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몸 놀림이 거칠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치대고 뛰고 올라타고 난리를 칩니다. 거기다 두 녀석이 함께 움직이니까 웬만한 체력으로는 감당하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자원 봉사자가 오는 날이면 은근슬쩍 이 두 녀석을 그분들에게 맡겨 놓습니다. 두 녀석만 맡아줘도 집안이 조용하니까요. 그런데 자원 봉사하시는 분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상황을 파악해 버리고 나면 야속하게도 어떻게든 머리를 써서 되도록 이 녀석들을 피해 다른 아이들을 맡아 버립니다.
만만치 않은 이 쌍둥이 중에 에스텔이 언니이고 브리히다가 동생입니다. 에스테르는 언니답게 성격이 밝고 적극적인 편이지만 엄살은 누구에도 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고요. 언니들한테도 지지 않고 끝까지 말다툼할 정도로 지독한 구석이 있기도 합니다. 항상 신경 쓰이게 만드는 동생 브리히다는 몸도 약하고 내성적인 모습이 많아서 항상 다가가기가 쉽지 않은 녀석입니다. 서로 다른 성격 때문인지 함께 살다 보면 둘이 쌍둥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욕심 많고 고집 세고 거칠고 말썽 피는 것 하나는 쌍둥이답게 똑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동생들 못살게 굴 때는 정말 완벽한 한 마음 한 몸이 됩니다. 요즘 쌍둥이의 주요 일과 중에 하나가 어린 동생들 못살게 구는 일이랍니다. 갑자기 두세 살짜리 동생이 다섯이나 생기다 보니 속이 편치 않나 봅니다. 선생님이 보지 않으면 동생들을 때리고 꼬집고 합니다. 더 심한 경우는 둘이 합동을 해서 동생 하나를 벽에 세워다 놓고 손을 들라고 하면서 벌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 사용하는 유일한 체벌이 손을 들고 있는 벌이거든요. 아이가 새로 들어오면 제일 먼저 걱정되는 것이 저 어린 것이 어떻게 저 거친 쌍둥이의 등살을 이겨낼 건가 하는 측은함이 먼저 생길 정도입니다. 정말 저희 집에 만만치 않은 골치덩이들입니다.
이 년이 됐습니다. 쌍둥이가 처음 들어 오던 날처럼 당혹스러웠던 적도 없을 겁니다. 남자만 보면 울어대고 무서워하던 네 살짜리, 상처 입어 날지 못하는 작은 새의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살 때 아버지가 사고로 죽고 나서 엄마가 새로 시집을 갔는데 새 아버지에게 많이 맞아서 시골 외할아버지 댁으로 보내져 일년 살다가 저희 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남자를 보면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서워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일 년 정도 지나면서 많은 부분이 좋아지긴 했는데 무언가 석연치 않은 아이의 모습이 많아서 특별한 심리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이 아이들의 상처가 외할아버지의 성폭행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적으로 엄마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이 아이들을 만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해놓은 상태입니다.
한 주간 엄마와 함께 지낼 수 있는 휴가가 시작되는 날, 비 오는 문 밖에 쪼그리고 앉아서 엄마를 기다리느냐 하염없이 길 밖을 바라 보던 브리히다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쓰라립니다. 항상 저와 데레사 선생님을 ‘아빠’ ‘엄마’라고 부르면서 졸졸 따라다니지만 속으로 그늘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숨길 수가 없나 봅니다. 어린 것이 감당해야 하는 인생이 너무 벅차 보이고, 너무 일찍 상처 입어 세상을 날 수 있을까 안쓰럽습니다. 상처가 깊은 만큼 갈증도 심하겠지요.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한 우리 식구 쌍둥이입니다.

1. 작년 일월, 천사의 집에 처음 들어오던 날 적의를 들어내면서 서럽게 울던 에스텔
2. 같이 울던 브리히다는 과자를 쥐어줘도 끝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3. 웃음을 찾는데 2달은 걸린 듯 합니다. 3달 지나서 동물원으로 소풍을 가서 기차를 타고 놀았습니다.

건축 및 후원회 소식(9.1-9.30)

물품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Norma, Josepina pacheh (이상 옷) 이상숙, Wendy de castro (이상 주방용품)김홍진,배카타리나.원유선글라라,이양구.한인성당.한인회장.홍익슈퍼. Josepina pacheh. Jilda. (이상 음식과 간식)

과테말라 지역 후원안내
이메일가입  : 홍승의 가브리엘 신부  honggabriele [at] gmail [dot] com
전  화가입  : (502) 5990-1537. 5990-1312. 5990-1262 2479-0063
후 원 계좌  : 체크발행이름 및 계좌명  Asociacion Mirin
입 금 계좌  : 달러  Banco de G&T. 91-5801977-7
.께잘     Banural    3-109-07762-7
(입금 후 반드시 전화나 이메일로 알려주십시오)

미    국 지역 후원안내
뉴  저  지  : 표윤환 스테파노                 theresapyo [at] yahoo [dot] com
켈리포니아  : 박희주 아오스딩 (714-906-3280)
미주 기 타  : 강석주 바 오 로
보내실  곳  : Asociation Mirine. 8762 Garden Grove Blvd. #102. Garden Grove, CA 92844 (캘리포니아외 지역은 별도 문의)
체 크 발행  :  Asociation Mirine
후 원 계좌  :  US METRO BANK. Routing Number 122244427
               Account Number (01-2004347)

한    국 지역 후원안내
이메일로 가입 후 자동이체  ( 외환은행 090-19-46397-1  홍승의 )

초대합니다.

천사의 집과 무료 초등학교 기공식

일시 : 2008년 11월 9일 오후 2시
장소 : Finca el Mora carretera Al Platanar San José Pinula

천사의 집 12월 소식지

천주교 과테말라 대교구 사회 복지 법인 미리내. 아동 보호 시설 천사의 집. Arquidiocecis de Guatemala. Obra bienestar social. Asociacion Minine. Hogar para ninas : Casa de Angel.   주소  43-85. 9Av. MonteMaria 3.  Villa Nueva.  Guatemala.   Tel.  집 (502) 2479-0063. . 원장신부 홍승의 5990-1537.  담당교사 연규련  4194-2418.

2008년 11월 .12월 과테말라 천사의 집 소식


살아가는 이야기 홍승의 가브리엘 신부

목동의 작은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성탄의 이야기 속에서 목동들은 하루 땀 흘리고 돌아가는 한 밤 중에 느닷없는 천사의 목소리와 깨끗한 한 아이의 탄생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진 것 없는 목동들이지만 고단한 가운데서도 잃지 않은 소박한 기쁨을 아기 예수님께 예물로 드렸다 합니다. 이번 성탄, 그런 목동의 마음으로 맞이했습니다.
돈 아끼자고 직영 방식을 선택하는 바람에 요즘은 공사장 주변에서 하숙을 하면서 새 집 짓는 일에 시간과 마음을 모두 모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느닷없이 성탄을 맞이 했습니다.

24일 오후까지 공사장에서 씨름을 하다가 헝클어진 모습으로 부랴부랴 현지 본당 성탄 밤 미사에 도착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렇게 마주 하게 된 성탄이지만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성탄 미사를, 목동들의 미사를 드렸습니다. 제 모습도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가진 것은 없어도 기뻐할 줄 아는 목동을 닮아있었으니 말입니다. 평소에 경건함도 없어 보이고 대답도 없어 답답하다 여겨졌던 사람들이 이 날은 모두 가난한 목동들의 순박함과 삶의 힘겨움을 이겨내는 소박한 웃음을 기꺼이 들고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쁨이 저를 물들여 버려서인지 미사 중에 중요한 순간 마다 제대 앞 정 중앙을 유유히 걸어가는 망할 놈의 개마저도 이 날 만은 목동들의 미사에 썩 어울린다 싶어 그냥 웃어버렸습니다. 이 놈의 개도 멀 알긴 아는지 항상 어슬렁거리다 성당 입구에 찍 싸고 가던 오줌을 성탄 밤 미사라고 꾹 참아 주더라고요. 이번 성탄의 기쁨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 혼자 사는 신부가 이 나라의 훌륭한 인사방식을 따라서 성탄 인사를 나누다 보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 수 많은 여성들을 안아 보았다는 것입니다. 한 300명 정도는 안은 것 같습니다.

과테말라의 성탄 축제에는 확실히 다른 곳보다 더 순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있습니다. 성탄 전이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면서 “방이 있나요? 아기가 나와요” 라고 묻는 순례행사도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문을 열어 주면 자신들의 구유를 들고 들어와서 성탄의 축복과 인사를 하고 갑니다. 또 성탄 밤이면 가족마다 곱게 차린 작은 아기 예수상을 들고 미사에 와서 축복을 청합니다. 축복을 청할 때는 집 안에 가장 작은 아이들이 아기 예수상을 들고 나와서 사제에게 입맞춤과 축복을 받습니다. 축복을 받은 아기 예수상은 집 안에 차려진 구유에 모셔두고 밤 12까지 천으로 덮어 놓습니다. 사실 집 안에 차려진 구유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곳도 없을 것입니다. 집이 마구간을 닮아 있어서 그대로 예수님을 모시면 그 곳이 구유 같습니다. 이어 밤 12시가 되면 가족들이 모두 모여 노래를 부르면서 아기 예수님 상에 덮어 놓은 천을 벗기고 성탄 축하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세상 가장 낮은 자리에 사랑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과테말라에선 유독 더 정겹습니다. 말 구유 위에 누워있는 작은 아기 예수상을 덮은 천이 벗겨지는 순간에는 마치 세상 아무리 척박한 삶의 자리라 해도 거기 따뜻한 사랑이 있으니 와서 보라는 당당한 선언 같아서 눈물겹기도 합니다.

정말 힘들어도 잃지 말아야 할 것이 기쁨인 듯 합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나눌 수 있고 나누어야만 하는 것이 기쁨이기도 하고요. 힘든 한 해를 보냈고 또 힘든 한 해를 맞이해야 합니다. 힘겨운 자리마다 사랑도 함께 있으니 먼저 기뻐하자는 목동의 마음을 이 곳 사람들에게 배워가고 있습니다.

10월 말에 6명의 아이들이 첫 영성체를 했습니다.

천사들 같지요…소니아.클라리자.실비아.마야리.루이사.소이나 6명의 고운 천사들입니다. 첫 영성체 후에 식구들이 성당 앞에 다 모였습니다.
다른 녀석들이 더 신났어요.

집에 돌아와서 축하행사도 했습니다. 첫영성체 후에 정말 말썽쟁이들이 많이 달라졌답니다.

더 밝고 책임감이 생겼지요..

11월 9일에 천사의 집 건축 기공식이 있었습니다

한인성당 신자 분들이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모든 준비를 해 주셨습니다.

리오스 주교님과 여러 신부님들 그리고 L.A 후원회장님이 함께해 주셨고요

뉴저지 후원회에서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예식 가운데 카푸친 수녀님들이 고운 노래를 불러주셨고요.

기공식을 이곳에선 Primera Piedra라고 부릅니다. 건물의 첫 돌을 축복해서 놓는 다는 뜻입니다.

첫 돌 안에 건축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사람들의 사인이 담긴 문서를 함께 넣게 됩니다.

문서가 들어간 첫 돌은 나중에 건물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묻혀지게 될 것입니다.

첫 돌과 함께 땅에 묻는 문서입니다.

“과테말라 아이들을 사랑하는 저희의 마음을 담아서 오늘 여기에 첫 돌을 놓고자 합니다.
여기에 머무는 아이들이 저마다의 꿈을 찾아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첫 돌과 함께 땅에 묻히는 문서에 유지은 대사님과 많은 분들이 사인을 했습니다 큰 녀석들은 뭘 아는지.. 모습에 간절함이 배여 있습니다. 속 썩이는 오넬다가 철 들었나 봅니다.

착한 멜리사도 분위기 좋습니다.

역시 분위기 파악 못하고 만만한 사람 찾아서 달려 붙어 노는 건 통제불능 쌍둥이 들입니다.

데레사 선생님도 이 날은 과테말라 전통복장을 했습니다. 거의 원주민과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우리 아이들이 한국 노래로 기쁜 나의 집을 불렀습니다. 제법 발음이 괜찮았습니다.

이번 달에 선정된 생활 사진입니다

저녁 기도 시간에 구석으로 사라진 둘세가 잠이 들었습니다.
막내 두 살 넬리네 집입니다. 성탄 때 집에 보냈는데 걱정이 되서 성탄 선물들고 다녀왔습니다.

후원회 소식


죄송합니다. 11월 소식지를 보내드리지 못했고 12월 소식지도 이렇게 늦게 보내드리게 됐습니다. 1월부터는 꼬박꼬박 늦지 않게 소식 보내 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후원회 소식지가 오지 않는다고 걱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11월에 공사가 시작되고 천사의 집은 데레사 선생님이 혼자서 운영을 책임져야 하고 저는 공사장에서 살아야 하다 보니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없어서 소식지 작업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물품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0.1-11.30)

다니엘회장님  (어린이날 행사용품)  IRIS  교리선생( 피자) NORMA . ROLENA . SOLEDAD , LUCY  (첫영성체 드레스, 양말등 음식)  ADELITA  ( 첫영성체 케잌)   MICHALE  (첫영성체 화관, 양초, 머리장식)  조아녜스  (냉장고, 옷, 문구용품, 사무용품 등)  우주 ( 매트리스 및 이불세탁) FRANCISCO ( LIMON, NISPERO) CARMELA 수녀님 (속옷, 신발, 선물, 초코렛등) 성완해신부님  (간식비)  이선경루시아 ( 바나나, 수박)  뉴저지 후원회원 (피자, 옷, 액세서리.점심식사)  원유선글라라   (문구용품.유모차.보행기)    CARMEN  BLUSA DE (TIPICO 옷)  김주창아오스딩 ( 아기침대, 유모차, 아기옷)  FAVIANO  (약품, 간식, 양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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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동 이 체   (외환은행 090-19-46397-1  홍승의 )

천사의 집 9월 소식지

천주교 과테말라 대교구  사회복지법인 미리내  아동 보호 시설 천사의 집. Arquidiocecis de Guatemala. Bienestar social Asociacion Minine. Hogar para ninas pabrecitas Casa de Angel.  주소 43-85. 9Av. MonteMaria 3. Villa Nueva. Guatemala.   Tel. 집 (502) 2250-5378. . 신부님 5990-1537.  데레사 4194-2418.

과테말라 천사의 집 소식 이천 팔년. 팔월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연규련 데레사 드림

제 머리에 이가 생겼습니다. 왠지 투정이 심하고 쓸쓸해 보이는 꼬마 녀석 하나를 하룻밤 데리고 잔 다음에 생긴 일입니다. 이 녀석을 제 방으로 데리고 가면서 문득 생각이 나서 “너 머리에 이 있는 거 아냐? 이 있으면 너랑 잘 수 없는데..”라고 은근히 떠 받더니, 이 녀석이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하는 말이 “이모, 나 딱 한 마리 밖에 없어” 라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함께 자고 싶으면 그럴까 싶어서 모른 척 데리고 자기는 했는데 다음 날부터 제 머리가 가렵더니 한 마리라고 하던 이가 무려 6마리나 나왔습니다. 속이 상해서 이 꼬마 녀석한테 “야 이가 6마리나 나왔단 말이야” 하고 투덜대니까 이 녀석은 “난 이제 머리가 하나도 안 가려워.” 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이와 벼룩을 잡는 일이 천사의 집에선 먹고 자는 것처럼 평범한 일상이라 아무도 놀라지 않습니다. 식후에 우리 집 아이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 이를 잡아주기도 하고요. 옛날에 엄마들이 커다란 달력종이를 펼쳐놓으시고 반짇고리에서 참빗을 꺼내 가려운 곳마다 빗어주었던 것처럼 여기서도 이가 생기면 달력종이 대신 A4지 이면지를 펴고, 나무참빗 대신 플라스틱 빗으로 가려운 곳을 정성껏 빗어 준답니다.

한번은 애들 머리에서 이를 잡아주던 신부님께서 이 많이 잡는 사람한테 사탕을 상으로 주겠다고 하시자 그날 저녁, 집안 곳곳에서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군데군데 종이와 바가지를 가져다 놓고 아이들이 이를 잡기 시작하더니 종래에는 이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몸에 열이 많고 머리 숱이 많은 아이들을 자기 그룹에 포함시켜야 하기 때문이었죠. 물론 다음날 삼십 마리가 넘게 이를 잡은 아이를 비롯해 모두 사탕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 이가 생기면 여간 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거품 나는 락스라고 밖엔 생각이 안 되는 독한 이 샴푸로 아이들 머리를 감기고 서캐를 모조리 뽑아놓아도 방학 때 집에 다녀오거나 학교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 머리에 다시 이가 생기고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머리를 박박 긁고 있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부족한 영양으로 눈 밑이 시커멓던 아이들의 머리에 살던 삐쩍 말랐던 이가 요즘엔 통통하게 살이 올라 크고 새카매졌다는 것이겠지요. 잘 먹으니 이도 살찌는 거겠거니 생각하면서 애들 머리를 빗어줍니다. 오랫동안 우리 아이들을 돌보아 주시고 계시는 봉사자 어머님들에게 제가 이 잡은 얘기를 하니까 “지금은 양호한 거야. 전에는 애들 머리에서 이를 잡는데 물 받아 놓은 양동이 바닥이 새카맣도록 많았어” 하시며 웃으십니다.

이처럼 두려운 것이 또 벼룩입니다. 머리는 이가 살아 가렵고 몸은 벼룩과 모기에 물려 가렵다며 이 샴푸 찾고, 이불을 햇볕에 널겠다고 난리를 치는 저에 비해 아이들은 부끄러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오늘도 이를 잡습니다. 서로 더 많이 잡았다고 자랑하면서요. 이번 주 장을 볼 땐 이 샴푸를 좀 많이 사야겠습니다. 그나마 우리 아이들은 시골에서처럼 그 이를 먹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싶습니다. 이와 싸우는 일, 이런 불편함 속에도 제법 괜찮은 웃음과 행복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있습니다.

건축 및 후원회 소식(8.1-8.31)

천사의 집과 무료학교 건축 기공식이 11월 9일로 확정되었습니다. 과테말라 대교구 로사다 케사다 추기경님의 주례로 간단한 축복이 있을 예정입니다.

천사의 집 담당 신부님이신 홍승의 신부님께서 그 동안 겸임해 오시던 과테말라 한인 본당을 떠나셔서 9월부터 천사의 집 전임으로 일하시게 되었습니다.

뉴저지 데마레스트 본당에서 뉴저지 지역 후원회원 일일 피정이 있었습니다.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형제로서 언제나 기쁘게 초대해 주시고 맞아 주시는 데마레스트 김정수 신부님과 후원회원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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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집 8월 소식지

천주교 과테말라 대교구  사회복지법인 미리내  아동 보호 시설 천사의 집. Arquidiocecis de Guatemala. Bienestar social Asociacion Minine. Hogar para ninas pabrecitas Casa de Angel.  주소 43-85. 9Av. MonteMaria 3. Villa Nueva. Guatemala.   Tel. 집 (502) 2250-5378. . 신부님 5990-1537.  데레사 4194-2418.

과테말라 천사의 집 소식 이천 팔년. 팔월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연규련 데레사 드림

필라델피아에 사는 17살 마가렛이 2주동안 아이들과 지내다 돌아갔습니다. 생각이 깊고 따뜻해서 함께 사는 동안 저희 가족 모두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떠나기 전날 마가렛 발을 침대에다 묶어서 돌아가지 못하게 하자는 아이들도 있었고, 떠난 뒤에는 학교에서 돌아와서 마카렛을 찾아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 함께했지만 아이들에게 또 저희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친구였습니다. 마가렛이 남기고 간 짧은 편지입니다

I will never (and I really mean never) forget these 2weeks. They really have been amazing, life changing-however tiring…. It was here, in La casa de angel, that I found the true love of angels.
- Margaret suh guest to the house of angels from July 22nd to August 5th


우리 식구랍니다 홍승의 가브리엘 신부 드림

카르멘이 우리 집에 들어 오던 날을 기억합니다. 만 2년이지만 햇수로 3년이나 됐네요. 처음 집에 와서는 복도며 거실, 식당과 침실바닥에 누런 가래침을 수시로 뱉어 내는 모습으로 저희 모두를 당황스럽게 만들었지요. 그때는 이 아이가 움막 같은 집에서 살았으니까 땅바닥과 실내를 구분하지 못하는 거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나쁜 습관을 고치겠다고 가끔 아이를 몰아세우기도 했습니다.. 나중에야 학교담임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보니까 과테말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려서부터 흙을 먹어 생기는 습관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카르멘이란 녀석은 알아갈수록 가까워질수록 저희들 마음을 당혹하게도 하고 쓰라리게도 하는 녀석이랍니다. 다른 녀석처럼 무어라 때를 쓰고 울어대는 게 아니라 살아온 가난한 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항상 밝게 웃고 있는 아이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미워할 수 없는 아이랍니다.
카르멘에게 얼마 전에 아픈 일이 일었습니다. 알코올릭인 아버지 틈에서 항상 마음 속으로 의지하고 있던 엄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카르멘의 엄마가 진찰을 받았던 시립병원에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도 몇 달 동안이나 누워서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카르멘이 보고 싶다고 해서 저도 몇 번 아이와 함께 시골에 내려갔었습니다. 여전히 술 냄새 풍기는 남편 옆에서 온 뼈 속으로 수 백마리 곤충이 기어 다니는 거 같다고, 이제 죽을 거 같다고 되풀이하는 말을 들었지만 저도 단순히 영양실조이거나 정신적인 문제일 수 있을 거라고 여겨서 비타민과 칼슘을 사서 보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국 병명도 없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카르멘의 손을 잡고 서있는데 저희를 쳐다보는 카르멘의 얼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순진무구한 녀석이라 옆에 저희가 서 있는 게 좋아서 웃고 싶은데, 슬퍼서 웃을 수가 없는 쓰라리고 묘한 표정으로 저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관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서럽게 울던 녀석의 울음은 이제 잦아들었고 예전처럼 품에 안겨서 웃고는 있지만 그 웃음이 예전 같지 않은 듯 해서, 어딘가 슬픔이 진득하게 베어있는 듯해서 안쓰럽습니다.
11살에 일학년을 3년째 다니고 있고, 15점짜리 성적표가 3년 만에야 80점짜리로 바뀌었습니다. 대기만성의 아이입니다. 공부는 좀 못해도 카르멘이 어서 밝은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카르멘 사진들을 모았습니다.

후원회 소식(7.1-7.31)

저희 천사의 집이 7월에 Association Mirine 라는 이름으로 미국 내 비영리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미국 내에 법인설립과 함께 은행계좌를 열고 세금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L.A 후원회 봉사자이신 박희주 형제님과 이윤경 형제님 그리고 샌디에고 반영억 신부님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알레스카 한인 성당과 샌 루이스 한인 성당에서 7월부터 조그만 후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알레스카의 유민성 신부님과 신자 분들. 샌루이스의 이명재 신부님과 신자 분들께도 감사 드립니다.

청주 교구 서운동 성당에서 7월부터 건축을 위한 후원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최광혁신부님과 함께 해주신 신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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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이태석 신부님의 미니홈피

수단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는 이태석 신부님의 소식을 전하는 작은 미니홈피입니다.

미주 아프리카 희망 후원회 웹사이트에 보다 많은 정보가 실려 있습니다.
Pay to the order of : CFACM
1927 W. 182nd Street,
Torrance, CA 90504

다음 카페 주소
http://cafe.daum.net/WithLeeTaeSuk




이태석 요한 신부님 가시는 길에...

하느님께서는 이태석 신부님을 너무 사랑하시어 그리도 빨리
보고 싶으셨나 봅니다.
우리들 마음에는 아직도 젊고,
해야할 당신의 사업들을 뒤로 한채 말입니다.

성직자로서, 의자로서, 교육자로서, 또한 건축가로서
이 많은 일들을 혼자 하시는 모습에 내 가슴을 치며
주님의 동참 한지도 일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사람에게 해 준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직자로서 일생을 바치신 신부님의 그 맑은 영성의 씨앗들이
이제는 저희들의 몫으로 열매를 맺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낌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아주 열약한 수단!!
그 톤즈땅에서 해맑은 눈망울을 가진 어린아이들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온 몸과 마음으로 헌신과 희생을 다하신 한국의 슈바이쳐 이택석 신부님을
이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사모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
진정 당신은 우리 마음에 사랑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새겨 놓으신분이십니다.
어지러운 이 세상에
우리들의 눈을 뜨게 해 주셨고, 귀를 열게 하셨으며,
마음을 움직이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의 믿음에 그 믿을을 더하여, 진정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려 합니다.

이 세상에서 청지기 역활에 충실하셨던 당신의 모든것을
닮을것입니다.
수 많은 이메일을 오가면서 저와 같은 나이로 친한 벗으로서 다가 오셨고,
제 마음까지도 보담들어 주셨던 일들을 이제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랑의 실천만이...
이것이 주님이 저희 모두에게 원하시는 일임을 깨닫고,
생을 다하는 그 날까지 저의 모든것을 봉헌하려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9~20절에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저의 삶속의 레마로 묵상하며 실천하려고 합니다.

신부님 손을 한번도 못 잡아 봤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서로를 껴 안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신앙안에 한 형제로서
진솔한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이태석 요한 신부님!!
진실로 진실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시간에 주님안에 아주 편안히 잠들고 계실
신부님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미주 아프리카 희망 후원회
간사 이인석 비오 드림



김태호(안토니오), 이승준(알렉산델), 한만삼(하느님의 요한) 신부 등 교구 사제 3명이 2009년 3월 25일 수단에 파견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찾은행복- 이태석 신부님

오는 8월 28일 목요일 본당에 오시는 이태석 요한 신부님에 관한 동영상입니다.

[가톨릭 신문] 수단 파견 김태호,이승준,한만삼 신부

수단 파견 김태호,이승준,한만삼 신부

[가톨릭신문 2008-03-02]

김태호(안토니오), 이승준(알렉산델), 한만삼(하느님의 요한) 신부 등 교구 사제 3명이 3월 25일 수단에 파견된다.

이 번 선교사 파견은 룸벡교구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세계 교회에 기여하는 수원 교구를 위한 교구장 최덕기 주교의 의지 또한 크게 작용했다. 자동차 및 포클레인 정비 기술, 응급 의학과 목수일, 도예를 배우는 등 아프리카 선교 활동 준비에 바쁜 젊은 사제들을 최근 교구청에서 만났다.

▲ 미지의 땅으로 향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각오와 소감은.

- 김태호 신부 : 10년 20년 후에 지금의 나에게 스스로 다짐한 말이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미래는 누구나 장담할 수 없는 것이지만 늘 기쁨 속에서 살면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이승준 신부 : 아프리카로 가는 심정을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저 ‘가야하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기에 가는 것입니다.

- 한만삼 신부 : 우리교구가 세계 교회와 일치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 자신으로서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 수단 현지에서의 사목 활동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 김태호 신부 : 우선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일’을 하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려고’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조금씩 배운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 한만삼 신부 : 저희들은 교회 본연의 사명인 영혼의 구원과 신자들을 위한 교육사업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지금 당장 아프리카에 가서 특별한 일을 벌이고, 사업을 전개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현지에 도착하면 해야할 일들이 생기겠지요. 하지만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할 일은 주민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방식과 고집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 동료 사제들과 교구민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이승준 신부 : 두려운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과연 내가 잘 살 수 있을까. 또 내가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며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많은 성원과 기도 바랍니다.

- 김태호 신부 : 금전적 후원도 필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동료 사제들과 신자들의 사랑과 우정입니다. 그분들의 기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늘 기도로 저희와 함께 해 주셨으면 합니다.

[파견 일정]

아 프리카 수단 룸벡교구 지역에서 사목할 김태호(안토니오), 이승준(알렉산델), 한만삼(하느님의 요한) 신부는 현재 응급 의학과 수지침, 택견, 옹기 제작, 목공 등 기술을 배우고 있으며 이밖에 자동차 정비 및 중장비 운전 면허 취득 등 아프리카 선교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세 명 사제들은 수단 현지 사제관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각자 별도의 관할지역을 사목할 예정이다. 1월에 골롬반선교회에서 교육을 마친 이들은 2월과 3월 마지막 준비 작업을 마친 뒤, 3월 25일 파견미사 후 4월 초 현지에 파견된다.

교구에선 첫 아프리카 선교사 파견인 만큼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룸벡교구 지역은 현재 치안은 안정된 상태지만, 말라리아 등 질병 위험이 상존하고 식생활 환경 또한 열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식수 오염 또한 심각해 우물 공사도 시급한 실정이다. 우물 공사에는 약 900여 만원이 소요된다.

또한 상당수 주민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성당 건립이 시급한 상황으로 대부분 주민들이 허름한 임시 공소 건물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장 세 명 사제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기본 물품도 부족한 형편. 현재 교구에서 나서서 생활 물자와 필수품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신자들의 관심이 적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광호 기자 woo [at] catholictimes [dot] org

수단은 어떤 곳 ▶▶▶

전통 무슬림 지역… 내전으로 만신창이

지난 2월 10일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수단 정부군의 공습이 계속돼 다르푸르 지역 주민 1만2000명이 국경을 넘어 차드로 대피했다고 밝혔다. 수단 다르푸르에서는 2003년부터 친정부 이슬람 민병대가 가톨릭 등 그리스도교 주민을 상대로 인종 청소에 나서 지금까지 20만명이 숨지고 3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수단 내전의 뿌리는 영국 식민지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으로 무슬림 지역인 수단 북부와 비무슬림이 절대 다수인 남부를 철저히 분리해 통치하던 영국은 1946년 북부를 중심으로 나라를 통합했다. 북부와 남부를 분리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1956년 1월 수단이 독립했을 때 북부 엘리트(이슬람)가 독립국의 정권을 장악했고, 이에 남부 무장 세력이 중앙정부에 맞서 무장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 이후 17년간 이어진 제1차 수단 내전으로 약 50만 명이 사망했다.

일 단 1972년 남부의 자치를 인정하면서 평화회담이 성립됐지만, 1983년 정부는 또다시 수단 남부의 자치 정부를 전격 해산, 남부가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무장투쟁에 들어갔다. 이후 20년 넘게 이어진 제2차 내전으로 남부에서만 19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400만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이때 발생한 난민만 50만여 명에 이른다.

수단 정부와 남부 해방운동은 3년 전인 2005년 마침내 평화협정에 합의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부 지역에선 6년간 자치가 보장됐다. 원유 수입은 중앙과 지방이 절반씩 나누기로 했고, 이슬람 율법은 북부에만 강제하기로 했다.

평화협정이 발효된지 3년째. 하지만 다르푸르 지역과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인종 청소가 계속되고 있다.

수 단 남부는 사하라 사막에 인접한 북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내륙으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강우량도 많고, 호수 등 수자원도 풍부하다. 땅도 기름져 농사일에 적합하다. 게다가 수단 전체 수출액의 70%를 차지하는 원유 자원도 남부에 밀집해 있다. 북부를 중심으로 한 중앙정부가 가톨릭이 대부분인 남부의 독립을 무력으로 저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아프리카 선교 후원 문의
교구 복음화국 수단 선교 위원회 031-244-5002

■ 수단 선교 위원회 후원계좌
신협 03227-12-004926 천주교 수원교구

■ 기증받는 물품
▲발전기 ▲음향장비 ▲의약품 ▲문구류 ▲공구류 ▲통신장비 ▲컴퓨터 장비 ▲기타 생활 물품

기사제공 : 가톨릭신문
등록일 : 2008-02-28 오전 11:21:50

수단의사 이태석 신부(KBS)

KBS-World 자료
2008-11-20

아프리카 수단의 의사, 이태석 신부

의사, 이태석 신부

수단에서 신부 겸 의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태석 신부는 2년 마다 한 번씩 휴가차 한국을 찾는데, 이번에는 대한의사협회의 초청으로 대한의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인 ‘해외활동 의사 초청 심포지엄’에 참가하고자 고국을 방문했다.

이태석 신부는 의사 공부를 하고 군의관을 마친 후, 로마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사제 서품을 받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어릴 때부터 카톨릭 신자로 원래 꿈이 ‘의사 신부’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교에 진학 중이던 1999년, 이태석 신부는 여름 방학 기간에 아프리카를 가게 되었는데 하루 한 끼로 연명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고 그 곳에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2001년 아프리카 중에서도 가장 낙후한 곳이 수단이란 생각에 수단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아프리카 수단

이태석 신부가 의료봉사활동 중인 수단은 실제로 보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된 곳이다. 수단은 내전과 기아가 얼룩진 곳으로 아프리카 원주민이 살고 있는 남수단과 아랍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북수단으로 나뉜다. 두 곳은 인종과 종교 등 상황이 달라 거의 두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이 중 이태석 신부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곳은 남수단으로 가난은 물론 전기나 전화, 수도 등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이고 1년 내내 50도를 넘나드는 혹서의 땅이다.

봉사활동

- 의료봉사
처음에 이태석 신부가 수단에 왔을 때 반경 100km 이내에 병원은 물론 환자를 보는 의사들이 없었다. 병원의 필요성을 느낀 이태석 신부는 2000km 떨어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트럭으로 2~3개월에 걸쳐 필요한 자재들을 공수해 2004년에 병원을 건축했다. 이태석 신부는 하루에 150~200명 정도의 환자를 보는데, 병원을 찾는 환자들 중에는 말라리아, 장티푸스, 이질 등 감염성 질환자들이 많다. 복부, 임파선 등 각종 결핵환자들과 한센병 환자는 물론 아프리카 오지라서 뱀이나 악어에 물려서 오는 환자도 가끔 있다. 또한 원주민들이 살고 있어서 부족 간의 전쟁으로 창에 찔리거나 총에 허벅지 관통상을 입은 환자도 심심찮게 있다.

- 교육활동
이태석 신부는 의료봉사활동은 물론 교육활동도 하고 있다. 이태석 교사가 머무는 지역에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등 학교가 전혀 없어서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이에 이태석 신부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약 400명 정도의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현재는 학교 규모가 점점 커져서 18개의 교실에서 140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로 성장했다.

이태석 신부는 교육 외에도 음악도 가르치고 있다. 수단은 오랜 내전을 겪은 나라로 그로 인해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이 상처를 음악으로 치료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피리부터 시작해 기타, 오르간을 가르치다 4년 전에 10개의 악기와 35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밴드를 결성했다.

앞으로 계획

이태석 신부는 수단에서의 봉사활동 외에 한국에서 2년 마다 수단 어린이 돕기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1회와 2회는 작은 규모로 가족적인 분위기의 음악회였으나 이번 3회는 각계 전문가들과 수단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있는 장학회와 함께 하는 큰 규모로 열린 예정이다. 제 3회 아프리카 수단 어린이를 위한 사랑음악회는 오는 11월 29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동작문화복지센터에서 공연한다.

이태석 신부는 현재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운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고등학교는 건물이 없어서 중학교 건물을 빌려서 운영하고 있다. 이태석 신부가 있는 곳 반경 200km 내외로 고등학교가 없어서 최근에는 고등학교 건물을 건축하고 있다. 이태석 신부는 학교를 잘 건축해서 교육은 물론 의료와 봉사를 통해 수단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자 한다.

출처: http://world.kbs.co.kr/korean/koreannetwork/koreannetwork_global_detail....

척박한 땅, 아름다운 씨앗을 뿌리는 이... 살레시오회 이태석 요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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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목요일에는
의사이며 살레시오회의 이태석 요한 신부님을 모시고
현재 선교사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아프리카 수단 남부 톤즈지역 의료봉사 및 선교활동에 대한 말씀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특강이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의 참여를 바라며
수단에서의 사목 동영상및 신부님의 글을 함께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날짜: 2008년 8월 28일 목요일
시간: 저녁 7시 30분
장소: 새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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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병으로 발가락의 형태도 찾아 보기 어려운 수단 어린이들을 위해
신부님께서 직접 폐 타이어를 이용해 신발을 만들어 주셨다는 군요....

문둥병으로 육신이 오그라 들어도 아이들은 천사같은 미소를 늘 띄고 있다고 합니다.
온전한 신체를 갖고도 늘 부족함으로 행복을 잃어가는 우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한장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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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어린이들의 슈바이쳐이신 이 태석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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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어린이들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봉헌하기로 하셨다는 이요한 신부님과 수단 어린이와 학생들

기브 미 어 펜(Give me a Pen!!)

8년전 여름 방학을 이용해 열흘간 여기 수단에 온 적이 있다.
말로만 듣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다. 초를 다투는 응급 상황이었다.
먹질 못해 뼈만 앙상히 남은 사람들, 손가락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른채
너무 쉽게만 살아왔던 것에 대한 죄책감마저 들었다.

발가락 없이 지팡이를 짚고 돌아다니는 나환자들, 삐쩍 마른 엄마 젖을 빨다 결국 지쳐 울어대는 아기들..
이러한 현실이 무엇보다도 마음을 더 아프게 한 것은 다닐 학교가 없어 하루종일 나무밑에 앉아
그냥 시간을 때우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우리 어려운 시절 가난했지만 젊은이들의 미래가 있었기에
희망을 잃지 않았던 모습과는 달리 그들의 모습에선 전혀 미래나 희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재의 모습은 무서움마저 들게했다.

그때 막 이곳에서 선교를 시작했던 제임스 신부님도 ‘교육은 이곳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 같다’며
급한대로 70여명의 학생을 데리고 나무 그늘 밑에서 학교를 시작했다.
최고 학년이 초등학교 3학년에 불과했지만 학생들의 평균나이는 열여덟 살 정도였다.
일 년 뒤엔 대나무와 흙으로 작은 움막들을 만들어 교실로 쓰기 시작했는데 책상은 없었지만
Y자 형태의 두 개의 나무 사이에 얹힌 긴 통나무 의자가 제법 교실다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처음으로 수업이라는 것을 받아보는 아이들의 눈은 설렘과 호기심에 너무나도 반짝거렸다.
교과서는 물론이고 공책이 부족해 흙바닥에 나뭇가지나 손가락으로 영어 단어를 써가고
수학 문제를 푸는 아이들을 보며 다 쓰지도 않은 멀쩡한 문구류들을 마구 버리는
우리의 지나친 소비 문화가 분명히 ‘죄’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전 보름달이 너무나 아름다워 마을로 산책을 나간 적이 잇었다.
집밖에 나와있던 많은 아이들이 인사를 해왓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책이나 책을 무릎에 펴 놓고 그것들을 읽고 있었다.
전기가 없던 집 안에선 공부를 하지 못하고 달빛을 이용해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달빛으로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형설지공’이란 말을 방불케 하는 학구열이 대단한 아이들,
배도 고프지만 그보다도 공부를 더 고파하는 정말 기특한 아이들을 보며 다른 것은 몰라도
그들이 하고 싶어하는 공부만큼은 최선을 다해 여건을 마련해주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그 후로는 전등이 세 개가 달려있는 간이 성당을 밤에 자습실로 쓰도록 했고 병원의 환자대기실에도
전등을 달아 야간 학습실로 쓰기 시작햇는데 매일 밤 많은 아이들이 공부할 것을 들고 찾아왔다.
야간 자습을 무었보다도 싫어하는 한국의 아이들이 정상인지 공부할 시간을 늘려달라고
졸라대는 이곳 아이들이 정상인지 햇갈릴 때가 있다. 처음엔 태양열을 이용한 전기라
용량이 부족해 밤 9시까지만 공부를 하게했는데 30분만 더 늘려달라고 졸라대는 통에
전동기를 돌려가며 9시 반까지 공부시간을 늘렸다. 몇 달이 지나자
그것도 부족해 ‘30분만 더’하며 졸라대는 아이들의 등쌀에 못 이겨 ‘공부하라고 애원을 해도
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래! 하고 하고 싶은 공부 실컷 한번 해봐라!’는 심정으로
결국은 밤 11시까지 공부 시간을 늘려놓았다.

자습을 시작할 때 다같이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끝날 때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함께 일어나
성모송으로 마무리하는 이곳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기특하고 예쁜지 모른다.
올해 겨우 고등학교를 시작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고등학교가 없어 많은 아이들이 불편을 겪었다.
중학교를 마치고 공부를 게속하고 싶은 아이들은 근처에 고등학교가 없어 120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도시로 유학을 가야했다.

없는 살림에 새로운 곳에서 스스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 보통 큰일이 아니었기에
많은 아이들이 중학교를 마치면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공부를 할 수 없이 포기를 해야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다. 형편이 그래도 조금 괜찮아 유학을 갔던 아이들도 학교의 낮은 질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고 많이 되돌아왔다. 선생님도 충분치 않고 작은 월급대문에 선생님들이
학교에 제대로 나오질 않아 정해진 시간표도 없고 학생들은 교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
교사가 오면 하루 한두 시간의 수업을 하고 그나마 선생님이 오지 않는 날엔 하루 종일
한 시간의 수업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했다.

이런 가슴 아픈 사연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고등학교를 시작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기에
꼭 필요한 것인 줄은 알면서도 당장 시작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더 더욱 아팠다.
기도는 들어줄때까지 끈질기게 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 때문인지 아이들은
‘제발 고등학교를 열어달라’고 끈질기게 수년간을 졸라댔다. 고등학교를 시작해보려했지만
고등학교를 나무밑에서 할 수 없는 노릇이고 부지걱정, 건물걱정, 돈 걱정, 선생님 섭외 걱정 등
걸리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기에 선뜻 시작할 수가 없었다.

몇해를 미루고 미루다 ‘에라 모르겠다’벌려놓고 보자! 어떻게 되겠지! 라는 똥배짱으로
-아니 섭리에 대한 강한 믿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올해 고등학교를 시작해버렸다.
한국에서 가져온 한 고등학교의 재고품을 교복으로 하고 케냐에서 교과서를 사서 나이로비에서
급히 교사 세 명을 구해 데리고 들어와 시작을 했다. 시작을 하고보니 처음엔 보이지도 않던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윤곽이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잇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건물이 없어 초등학교 건물 창고를 교실로 꾸며 고등학교를 시작하던 날, 모르는 사람들에겐
아프리카의 조그만 마을의 작은 고등학교의 초라한 개교식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우리 선교사들과 이곳 아이들에겐 수년간 함께 꾸어왓던 소중한 꿈을 이룬 감격스러운 날이었고
마음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벅찬 날이었다.

교사를 구하기가 힘들어 나도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가르치는 것이 꽤나 재미있다.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과
순수한 아이들의 질문 때문에도 더 그렇고 무엇보다도 내 자신의 삶에 특별한 맛을 내게하는
교실에서 만들어지는 나와 아이들간의 특별한 형태의 끈끈한 우정 때문에도 더 그렇다.

가전제품’, ‘할부구입’, ‘복리이자 ’, ‘소시지’, ‘세금 ’등이 무엇인지를 묻는 때묻지 않은
이곳 아이들의 순수한 질문덕에 가끔씩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와 있는 착각을 하곤 한다.
야간에 진료실에 앉아 가끔식 오는 응급환자를 치료하거나 수학문제를 들고 들어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하나의 소박한 즐거움이 되어버렸다. 요즈음은 연합고사를 준비하고 있는 중학교 졸업반 아이들의 부탁으로
매일 밤 환자대기실의 희미한 전등불 밑에서 수학과외 수업을 하고 있다.

케냐나 탄자니아를 가면 길거리에서 ‘기브 미 비스켓’ 또는 ‘기브 미 머니’라고 외치며 먹을 것이나
돈을 구걸하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아이들과는 달리 이곳 수단에선 ‘기브 미어 펜’하며
연필이나 볼펜을 구걸하는 특이한 아이들을 많이볼 수 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특한 아이들이다.
이들이 구걸하고 잇는 것은 단순하게 볼펜을 사기위한 돈 ‘백원’이 아니라 생각한다.
이들의 작은 외침은 배움의 권리에 대한 정당한 요구요 ,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이유이건
교육의 충분한 여건을 마련해주지 않는 것은 어른들의 명백한 직무유기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작은 외침이 아닌가 생각한다.

요즈음은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한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성당과도 같은 거룩한 학교 , ‘내 집’처럼 느껴지게 하는 정이 넘치는 학교, 그런 학교를 말이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미주 아프리카 희망 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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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전화 : (310)817-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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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어주실래요? (생활성서사) 이태석신부님 책

[사람들] 수단에서 선교하는 이태석 신부

[연합] `신앙 열정이 뜨거워야 선교 가능`
2009년 5월 19일기사

"그냥 봉사한다는 것이라면 오래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하고 하느님의 뜻을 편다는 신앙적인 열정이 바탕이 돼야 꾸준히 일할 수 있습니다."

이태석(46) 신부는 의사로 일하며 선교하는 아프리카 수단을 '이곳'이라고 표현하며 선교의 진정한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인제대학교를 나와 의사가 된 그는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신학교에 들어가 2001년 사제품을 받았다.

"10년 전 여름방학 때 케냐에 갔던 길에 수단을 들렀다가 헐벗고 굶주리며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런 현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른 채 너무 쉽게만 살아왔던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수단에서 8년간 일해 이제는 환자의 걷는 모습이나 안색만 봐도 어떤 종류의 말라리아에 걸렸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신부는 이런 경험을 책으로 엮어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발간했다.

그는 선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신앙을 키우고 다시 체험하는 것"이라며 "그저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 자체가 하느님의 뜻을 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풀이했다.

이어 "전쟁 중이던 수단을 떠나지 않고 남아 그들과 함께 어려움을 겪어냈다는 게 그들에게 일체감을 줬고 나아가 믿음과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아프리카 국가에 선교 사제가 2명이 더 왔다고 전하면서 "인내심이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며 "인내심을 배워야 자신의 시각이 아닌 그들의 눈으로 볼 수 있고, 그래야만 그들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의 나환자들을 보면 그들을 위로하며 함께하는 예수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며 "그들은 우리에게 온 작은 예수님이자 천국의 열쇠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책은 여아를 중시하는 수단의 풍습을 비롯해 길 앞에 야생 동식물이 나타나는 모습이라든가 달걀부침을 생일에나 먹을 수 있는 어려운 경제 사정 등 수단의 생생한 모습을 풍부한 사진을 곁들여 보여준다.

생활성서사. 247쪽. 1만3천원.

한국 천주교회 소개 리플릿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제작한 천주교회 소개 리플릿입니다. 2 페이지로 되어 있으며, 인쇄용 PDF 포맷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글, 영문이 각각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소개 리플릿(한글 PDF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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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 소개 리플릿(영문 PDF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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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Flash)

아래의 그림을 클릭하시면, 십자가의 길 플래쉬 윈도우가 나옵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여 찬송하나이다.

“하느님의 사랑과 거룩한 사랑이 어떻게 그들의 뜻을 영원하신 아버지의 뜻과 하나되
게 했는지를 잘 생각해 보아라. 너희의 시련을 받아들임으로써 이처럼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것을 본받도록 하여라.”

◎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 예수님.
◎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위의 기도 내용 중에 묵상내용을 제외한 모든 기도내용은 매 처 마다 반복하십니다.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나의 성심의 신성한 자비와 나의 어머니의 거룩한 동정에 의해 나는 용감하게 십자가를 받아 안을 수 있었다.”

제3처. 예수님께서 첫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너희가 미끄러져 넘어져 죄에 빠질 때, 나의 어머니는 거룩한 동정으로 너희를 망또에 싸안아 나의 신성한 자비로 인도해 주시며 나는 너희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우리들의 눈이 서로 마주쳤을 때, 거룩한 사랑과 신성한 사랑이 하나가 되었다. 어머님의 기도가 나로 하여금 계속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얼마나 자주 영혼들이 너희의 기도에 의지하는가. 그들을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에 결합시키어라.”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짐을 묵상합시다.

“키레네 사람 시몬이 현 순간의 은총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것을 잘 생각해보아라. 얼마나 자주 너희는 현재의 순간을 망각하고 사느냐? 너무나 자주 너희는 십자가는 보지만 은총은 보지 못한다. 현재의 순간을 우리의 하나된 성심의 은총 안에 두어라. 우리가 너희로 하여금 각 십자가 뒤에 있는 “왜”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리라.”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베로니카는 거룩한 동정과 또한 거룩한 사랑과 하나되어 있었다. 앞으로 걸어 나와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신성한 사랑의 표지를 남기었다. 나는 모든 영혼들이 이 세상의 감실 안에 있는 나를 위로해 주길 바란다."

제7처.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나의 신성한 사랑을 통하여, 그리고 나의 어머님의 거룩한 연민에 의해 나에게 인도되어, 나는 너희가 넘어질 때마다 저희를 용서해주리라.”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나의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의 안식처에서 위로를 구하라. 어머님이 너희를 가장 위대한 위로인 나의 성심과 영적으로 하나되는 위로로 인도해주시리라.”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또 다시 네가 나에게서 멀어졌느냐?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나를 본받아라.”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너희가 우리의 하나된 성심과 영적으로 일치되어 있으면, 세상이 너희에게 아무 가치가 없을 것이다. 나의 몫을 얻기 위해 너희는 모든 것들을 사용할 것이다. 내가 아무 것도 없었을 때, 나의 어머님이 어머님의 베일을 내게 주셨다. 너희의 마음을 나에게 달라고 내가 청한다. 그러면 나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리라.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합시다.

“나의 어머님의 손과 발은 영적으로 나의 손과 발 위에 놓여 있었다. 내가 죄인들을 위한 사랑으로 고통 받을 때에 어머님도 고통 받으셨다. 내가 너희에게 청하니, 너희가 이제 너희의 죄에 대한 슬픔을 통해 십자가 밑에서 어머님과 함께 서서 어머님을 지원해 다오.”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나는 너희를 위한 사랑으로, 그 사랑 때문에 죽었다. 신성한 자비와 신성한 사랑은 하나이다. 거룩한 사랑과 거룩한 동정은 하나이다. 너희 자신에 대해 죽거라. 그리고 하나된 성심을 위해 살거라.

제13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지심을 묵상합시다.

“나의 어머니는 나의 으스러진 몸을 받아 안으시며 비통의 눈물을 흘리셨다. 그 분의 거룩한 사랑의 성심에 너를 안아달라고 어머님께 청하여라. 그러면, 어머님께서 너를 나에게 인도하실 것이다.”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나는 무덤에 묻히었다. 그러나 나의 사랑과 자비에는 끝이 없다. 나는 다시 일어났다. 나의 어머니의 거룩한 사랑을 통하여 죄를 떨치고 일어나거라. 영원을 받아 안으라.”

† “오, 하느님. 우리를 위하여, 우리로부터 원수의 힘을 멀리 쫓아내시려고, 당신 아드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하시었습니다. 당신의 종인 저희들이 주님의 부활의 은총에 이를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우리의 주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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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희망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들'

1. 희망의 학교인 기도

32. 희망을 배우는 첫 번째 중요한 자리는 기도입니다. 아무리 더 이상 내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나에게 귀 기울이십니다. 내가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의지할 수 없을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인간의 희망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는 요구나 기대와 연관하여 나를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을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나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25) 내가 완전한 외로움에 빠져 있을 때에도 기도하면 나는 결코 완전히 혼자가 아닙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베트남 구엔 반 투안 추기경은 13년이라는 긴 옥살이 가운데 9년을 독방에서 지냈습니다. 그는'희망의 기도'(Prayers of Hope)라는 주옥같은 작은 책을 남겼습니다. 13년 동안 한줄기 희망도 없어 보이는 감옥 생활 속에서, 하느님께 귀 기울이고 말씀드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희망의 힘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다음에 그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위하여 희망의 증인, 고독한 밤에도 결코 지지 않는 그 위대한 희망의 증인 될 수 있었습니다.

33.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요한의 첫째 서간에 관한 강해에서 기도와 희망의 긴밀한 관계를 매우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기도를 열망의 훈련이라고 정의합니다. 인간은 위대한 실재를 위하여, 곧 하느님 자신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으로 가득 채워지기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예정된 그 위대한 실재를 담기에는 너무 작으므로 넓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은총을 베푸시는 것을)늦추심으로써 우리의 열망을 더 크게하시고, 열망하게 하심으로써 우리 영혼을 더 넓히시고, 영혼을 넓히심으로써(당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능력을 주십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기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린다고 한(필리 2,13 참조) 바오로 사도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인간 마음을 넓히고 준비하는 과정을 매우 아름다운 말로 설명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꿀(하느님의 온유하심과 선하심의 상징)로 채우고자 하신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우리가 식초로 가득 차 있다면 어디에다 꿀을 담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인 이 그릇을 우선 넓혀야 하고 그다음 식초와 그 냄새도 남지 않도록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이는 힘들고 고통이 따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예정된 본분에 맞갖은 사람이 됩니다.26)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의 역량에 대해서만 직접 언급하였지만, 우리의 그릇에 식초를 담지 않고 식초 냄새가 배지 않도록 노력할 때 우리는 하느님을 맞이 할 수 있도록 자유로워질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열리게 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한 분이신 우리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역사 현장을 벗어나 자기 행복만 누리는 혼자만의 구석 자리로 숨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올바로 기도할 때 우리는 하느님과 또 우리 이웃 사람들에게 자신을 여는 내적 정화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께 간청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느님께 합당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기도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피상적이고 편리한 것을 청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하찮고 그릇된 희망입니다. 우리의 열망과 희망을 정화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속이는 숨겨진 거짓말들에서도 자유로워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고,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나아갔을 때 우리 역시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저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뜻 아니한 허물을 누가 알겠습니까? 숨겨진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해 주소서"(시편 19[18],13). 내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나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나를 정당화하지도 구원하지도 않습니다. 무뎌진 양심 그리고 내안에 있는 악한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불찰의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아마도 나는 이러한 거짓 속에 안주하고자 할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용서할 수 없고 참된 기준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만날 때 내 양심은 일깨워지고 더 이상 나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양심은 나의 사고에 영향을 주는 동시대인들이나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선 그 자체이신 분에게 귀 기울일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34. 기도가 이러한 정화의 힘을 발휘하려면, 한편으로 기도는 매우 개인적인 것, 곧 나의 자아와 살아계신 하느님의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기도는 교회와 성인들의 훌륭한 기도를 통하여,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올바로 기도하는 법을 계속 가르쳐 주고 계시는 전례 기도를 통하여 꾸준히 인도되고 빛을 받아야합니다. 구엔 반 투안 추기경은 그의 영성 수련서에서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법을 모르고 주님의 기도, 성모송, 전례 기도 등 교회 기도문만 드려 왔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27) 기도할 때에는 이렇게 언제나 공적 기도와 개인 기도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께 말씀드릴 수 있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길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정화되어 하느님께 열려 있고 우리 이웃에게 봉사할 채비를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봉사자가 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뜻하는 희망은 언제나 다른 이들을 위한 희망이기도 합니다. 이는 적극적인 희망입니다. 이 희망으로 우리는 만물이 '전도된 종말'로 나아가지 않도록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께 열린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에서도 적극적인 희망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만 언제나 참으로 인간다운 희망이 있습니다.

II. 희망을 배우는 자리인 활동과 고통

35. 인간의 모든 진지하고 올바른 행위는 희망의 활동입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크고 작은 희망을 실현하고자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합니다. 곧 우리는 우리의 계속되는 여행에 중요한 여러 과제를 완수하고자 노력합니다. 또한 더 밝고 더 인간적인 세상을 향하여 노력함으로써 미래의 문이 열리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작은 실패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의 좌절에도 스러지지 않는 위대한 희망의 빛으로 깨우침을 얻지 않으면, 내 삶과 세상의 미래를 위한 날마다의 노력에서 지치거나 광신주의에 빠지고 말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든 실제로 달성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어떤 것, 또는 정치적 경제적 권위자가 약속한 것 이상의 어떤 것을 희망할 수 없다면, 우리 삶은 곧 희망 없는 삶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삶 속에서 또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역사 속에서 희망할 것이라곤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내가 언제나 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내 삶과 역사 전체가 온갖 좌절에도 스러지지 않는 사랑의 힘으로 굳건히 지탱되고 이로써 그 고유한 의미와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는 굳은 희망, 오로지 이러한 희망만이 행동하고 인내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건설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 인간 본성에 따른 모든 한계가 포함된 인간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선물입니다. 바로 이러한 연유로, 하느님 나라는 위대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응답이 됩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표현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공로로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하지'않습니다. 하늘 나라는 언제나 우리가 얻기에 합당한 것보다 더 위대합니다. 마치 사랑받는 것이 '공로로 받는' 어떤 상급이 결코 될 수 없고 언제나 하나의 선물인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초월적 가치'에 대한 완전한 인식과 함께 언제나 변함없는 사실은 우리의 행위가 하느님 앞에서 무심할 수 없고 따라서 역사의 전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상을 열어 하느님께서 들어오시도록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진리와 사랑과 선에 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인들이 한 일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협력자"(1코린 3,9 ; 1테살 3,2 참조)로서 세상의 구원에 이바지 하였습니다. 우리도 현재와 미래를 파괴시킬 수 있는 독과 더러움에서 우리 삶과 세상을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피조물의 원천을 밝히고 이를 훼손되지 않게 지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선물로 받은 피조물을 그 본질적인 필요와 궁극적인 목적에 따라 올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거나 압도적인 악의 세력 앞에서 아무런 힘이 없어 보일지라도 이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우리의 활동은 우리와 다른 이들을 위한 희망을 낳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느님의 약속에 바탕을 둔 그 위대한 희망이야말로 좋은 때든 나쁜 때든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우리의 활동을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36. 활동처럼, 고통도 우리 인간 삶의 한 부분입니다. 고통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유한성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역사에 걸쳐 축적되고 지금도 계속 쌓여가고 있는 커다란 죄 때문에 생깁니다. 분명히 우리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해야 합니다. 가능한 한 무고한 이들이 고통 받는 일이 없게 하고, 고통을 달래 주며,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정의의 의무인 동시에 사랑의 의무이며, 그리스도인 삶과 모든 참된 인간 삶의 근본적 요구에 속합니다. 육체적 고통을 없애는 데에서는 큰 진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무고한 이들의 고통과 정신적 고통은 증가하였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하지만, 세상에서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일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유한성에서 벗어날 수 없고, 고통의 끊임없는 원인이 되는 죄와 악의 세력을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느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친히 역사 안에 들어오셔서 사람이 되시고 고통을 받으신 하느님께서만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요한 1,29)이 힘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힘의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세상의 치유에 대한 희망이 역사 안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이 희망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희망입니다. 그것은 역사의 외적 흐름에서는 죄의 세력이 어쩔 수 없이 존속할 것을 인식하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선의 편에 설 수 있도록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희망입니다.

37. 다시 우리 주제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는 고통을 줄이고 고통에 맞서 싸우고자 노력할 수 있지만, 세상에서 고통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에서 도망침으로써 고통을 피하려고 할 때, 또 진리와 사랑과 선을 추구하려는 노력과 수고를 들이지 않으려고 할 때, 우리는 공허한 삶으로 떠돌게 됩니다. 그런데 삶에는 아픔이 거의 없을지 모르지만 무의미함과 고독으로 훨씬 더 큰 어둠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치유되는 것은 고통을 비켜 피하거나 고통에서 도망침으로써가 아니라, 고통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통하여 성장하며 무한한 사랑으로 고통 받으신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써 고통의 의미를 찾는 능력을 통해서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베트남의 레 바오 티 바오로 순교자(+ 1857)의 편지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이 편지는 신앙에서 솟아나는 희망의 힘이 고통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묶여 있는 나 바오로가 날마다 겪고 있는 고난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알림은 여러분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나와 함께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십니다(시편 135[135]편 참조). 이 감옥은 영원한 지옥에 비길 만하니 족쇄, 쇠사슬, 포승 등 온갖 종류의 잔인한 형벌과 더불어 미움, 복수, 비방, 폭언, 악행, 거짓 맹세,저주와 괴로움과 근심등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옛적에 세 젊은이를 불가마에서 구원하신 하느님께서 언제나 함께 계시면서 나를 이 고난에서 구하시고 이 고난을 달게 받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십니다. 공포로 몰아넣는 이러한 형벌 가운데서도 나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 있으니,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커룹들과 사람들 위에 좌정하신(시편 80[79],2 참조)주님, 황제와 그 관리와 신하들이 날마다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모독하는 광경을 보면서 제가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보십시오. 주님의 십자가는 이방인들의 발에 짓밟히고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이 모든 것을 보면서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 차라리 사지가 찢겨 죽어서 그 사랑을 증언하기를 열망합니다. 주님, 주님의 권능을 보여 주시고 저를 구원하시며 붙들어 주시어 제 연약함 안에 주님의 능력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주님께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을 듣고서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기쁨 가운데 끊임없이 감사드리고 나와 함께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십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여러분과 나의 믿음을 일치시키려는 것입니다. 나는 이 폭풍우 가운데서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하느님의 옥좌에 희망의 닻을 던집니다."28) 이것은 '지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포로수용소의 온갖 공포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압제자들이 희생자에게 가하는 고문 외에도 희생자들 안에서도 악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들이 다시 잔인한 박해자의 또 다른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 편지는 참으로 지옥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시편의 진리도 드러나 있습니다. "제가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에 당신 계시고 저승에 잠자리를 펴도 거기에 또한 계십니다. .....'어둠이 나를 뒤덮고 내 주위의 빛이 밤이 되었으면!'하여도 암흑인 듯 광명인 듯 어둠도 당신께는 어둡지 않고 밤도 낮처럼 빛납니다"(시편 139[138], 8-12; 시편 23[22],4도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지옥'으로 내려가시어 지옥에 떨어진 이들 곁에 계시면서 그들의 어둠을 빛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고통과 고문은 여전히 끔찍하고 견디기 힘듭니다. 그러나 희망의 별이 떠올랐습니다. 마음의 닻이 바로 하느님의 옥좌에 가닿습니다. 인간 안에서 악이 활개를 치기보다는 빛이 승리로 빛나고, 고통이 고통인 그대로 찬미가가 됩니다.

38. 인간다움의 참된 척도는 고통과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한 관계에서 중요하게 판가름됩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마찬가지입니다. 고통 받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함께 고통을 겪음'(com-passio)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나누고 안으로 견디도록 돕지 못하는 사회는 무정하고 비인간적인 사회입니다. 그러나 개인들 스스로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면 그 사회는 고통 받는 구성원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어려움을 뒷받침할 수 없습니다. 또한 개인 자신도 고통에서 정화와 성장의 길, 희망의 여정이라는 의미를 스스로 찾지 못한다면 다른 이들의 고통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실제로 고통 받는 '다른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고통을 받아들여 내 것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고통은 나누어진 고통, 그 안에는 다른 이도 함께 있는 고통이 되었기 때문에 사랑의 빛으로 물듭니다. '위로'를 뜻하는 라틴어 'con-solatio'이런 뜻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고독한 다른 사람과 함께 함으로써 더 이상 고독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선과 진리와 정의를 위하여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인간다움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나 자신의 행복과 안위가 결국 진리와 정의보다 더 중요하다면 더 강한 사람의 힘이 우세해질 것이고 폭력과 거짓이 군림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와 정의가 내 안위와 육체적 행복보다 앞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삶 자체가 거짓말이 됩니다. 그러면 결국 사랑에 '예'하고 대답하는 것마저 고통의 시작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나 '자신'을 버림으로써 나를 잘라내고 상처 받게 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나를 버리는 고통 없이는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은 단순한 이기심이 되고 더 이상 사랑이 아닙니다.

39. 다른 이와 함께, 다른 이를 위하여 고통 받는 것, 진리와 정의를 위하여 고통받는 것, 참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사랑때문에 고통 받는 것, 이 모든 것이 인간다움의 근본적인 요소이며 이를 저버린다면 자신을 망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제기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고통 받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내가 그 사람이 될 만큼 그가 나에게 중요합니까? 고통의 대가를 치를 만큼 진리가 나에게 중요한 것입니까? 사랑의 약속이 나를 내놓는 것을 정당화할 만큼 위대한 것입니까? 인간다움에 결정적인 이러한 유형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깊이의 능력을 인간 안에 심어 준 것은 인류 역사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이룬 탁월한 공로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진리와 정의와 사랑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실재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진리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함께 고통 받기를 바라셨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는 "하느님은 고통 받으실 수 없지만 함께 고통을 겪으실 수는 있다(Impassibilis est Deus, sed non incompassibilis)."29)는 말로 이를 훌륭하게 표현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너무나 귀중히 여기셨으므로 몸소 사람이 디시어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에서 드러나 듯이 매우 실제적인 방식으로, 곧 살과 피로 사람의 고통을 함께 겪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 고통에서 우리는 그 고통을 우리와 함께 체험하고 짊어지는 분과 결합됩니다. 따라서 모든 고통을 우리와 함께 체험하고 짊어지는 분과 결합됩니다. 따라서 모든 고통에는 함께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위로(con-solatio)가 있으며, 그래서 희망의 별이 떠오릅니다. 여러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을때 우리는 언제 따뜻한 방문이라든지 내적 외적 상처를 위한 치유라든지 위기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나는 것과 같은 크고 작은 희망을 필요로 합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시련을 겪을 때에는 이러한 희망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힘든 시련이 닥쳐서 나 자신의 행복이나 성공이나 소유보다도 진리를 앞세워야 하는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바로 이러한 참되고 커다란 희망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확신을 위해서도 우리는 증인들, 곧 ㅈ신을 온전히 바쳐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는 순교자들이 날마다 필요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부딪치는 사소한 선택들에서도 안위보다는 선을 우선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이것이 삶을 온전하게 사는 법임을 안다면, 그러한 증인들이 필요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진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고통 받을 수 있는 역량은 인간다움의 척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량은 우리가 우리 안에 지니고 있으면서 키워 나가는 희망이 어떤 것이고 얼마나 큰가에 달려 있습니다. 성인들은 큰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앞서 보여 주신 대로 인간 삶의 위대한 여정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40. 여기서 일상생활에 관련된 말씀을 짧게 덧붙일까 합니다. 오늘날에는 덜 실천되고 있지만 최근까지 상당히 널리 퍼져 있던 신심형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심은 끊임없이 우리를 성가시게 공격해 오는 일상의 사소한 어려움들을 '봉헌'함으로써 의미를 지니게 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신심에는 과장됨이 있었고 건전하지 못하게 적용되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그 안에는 본질적이고 유익한 점이 있지 않았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봉헌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무언가를 봉헌한 사람들은 이 자잘한 어려움들을 그리스도의 위대한 연민(com-passio)에 결합시킬 수 있다는 것을 굳게 확신하고 있었고, 그럼으로써 인류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연민의 보고를 이루는 데에 일조할 수 잇었습니다. 이렇게 일상생활의 작은 불편함마저도 의미를 얻고 선과 인간 사랑의 경륜에 이바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우리는 이러한 신심을 되살리는 것이 적절한지 그렇지 않은지 고려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III. 희망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인 심판

41. 교회의 위대한 신경에서, 그리스도께서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시고 동정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며 십자가의 부활을 거쳐 다시 오심에 이르는 신비를 이야기하는 핵심 부분의 마지막에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오랜 옛날부터 심판의 전망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재 삶을 바로잡는 기준으로, 양심의 소리로, 또한 하느님의 정의로우심에 대한 희망으로 날마다 삶에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뒤를 돌아보거나 위를 올려다보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되풀이하여 선포하신 정의의 때를 향하여 앞을 내다보아 왔습니다. 이러한 전망 덕분에 그리스도교는 현재에도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역사적 우주적 외연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그리스도교의 거룩한 건물들의 내부 배치를 보면, 동쪽 벽에는 임금으로 다시 오시는 주님을 희망의 상징으로 그리고, 서쪽 벽에는 대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는 신자들을 바라보고 동반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 삶에 대한 책임을 상징하는 최후의 심판을 그리는 것이 통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에 대한 성화상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화가들이 희망의 광채 보다는 불길하고 침울한 측면에 더욱 이끌려 이러한 측면이 점점 더 부각됨에 따라 희망은 흔히 공포 아래 가려지게 되었습니다.

42. 현대에 들어, 최후의 심판에 대한 생각은 점차 희미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개인화되어 무엇보다도 신자 개인의 영혼 구원을 지향하게 된 반면, 세계 역사에 대한 성찰은 진보의 개념에 크게 좌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을 기다린다는 근본적인 내용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형태를 띠게 된 것뿐입니다. 19세기와 20세기의 무신론은 그 기원이나 목적에서 볼 때 세계와 세계 역사의 불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일종의 도덕주의였습니다. 엄청난 불의와 무고한 고통과 잔인한 권력으로 얼룩진 세상이 좋으신 하느님의 작품일 수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한 세상에 책임이 있는 하느님은 정의로운 하느님이 아니며, 좋으신 하느님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덕성 때문에 이 하느님은 반대를 받습니다. 정의를 이루시는 하느님이 없기 때문에, 이제는 인간 자신이 정의를 세우도록 부름받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이 세상의 고통 앞에서 하느님께 반항하는 것이 납득할 만 해도 , 어떤 하느님도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일을 인간이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주장은 주제넘고 본질적으로 거짓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엄청난 잔인함과 정의에 대한 침해로 이어진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그러한 주장이 본질적으로 거짓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정의를 이루어야 하는 세상은 희망이 없는 세상입니다. 어떤 이도, 어떤 것도, 수 세기 동안 지속된 고통에 대해 대답을 내놓지 못합니다. 어떤 이도, 어떤 것도, 오만한 권력이 더 이상 온갖 기만적인 이념의 가면 아래 세상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보장하지 못합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위대한 사상가인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로 아도르노가 무신론과 유신론에 모두 비판적이었던 것은 이때문입니다. 호르크 하이머는 하느님을 이 세상 것으로 대체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선하고 정의로운 하느님의 모습 또한 거부하였습니다. 구약의 우상 금지를 극단적으로 몰고 가서 그는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전혀 다른 존재에 대한 동경"을 이야기 합니다. 이러한 동경은 세계 역사를 향한 열망의 외침입니다. 아도르노 역시 이러한 전적인 우상 거부를 확고히 지지합니다. 이는 당연히 사랑의 하느님에 대한 어떤 '모습'도 배척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한편 그는 또한 이러한 '부정적' 변증법을 꾸준히 강조하고, 참된 정의는 "현재의 고통이 제가될 뿐만 아니라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간 것이 되돌려지는"30) 세상을 요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긍정적인 상징, 그래서 그에게는 적절하지 않는 상징으로 표현하자면, 죽은 이들의 부활 없이는 정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관념론이나 절대 정신의 영역에는 전혀 낯선 것, 곧 육신의 부활"31)을 포함해야 합니다.

43. 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의 첫 번째 계명에 담겨 있는 엄격한 우상 금지에서 언제나 교훈을 얻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탈출 20,4 참조).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부정신학의 진리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유사성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 둘 사이의 차이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하였습니다.32) 어쨌든, 믿는 이라면 우상 금지를 극단적으로 받아들여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처럼 유신론과 무신론을 모두 '부정'하는데 까지 이르러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에게 '모습'을 부여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안에서 그릇된 하느님 모습들이 극단적으로 부인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제 타락한 인간의 조건을 몸소 받아들여 함께 나눔으로써 고통받는 사람의 모습으로 당신의 참된 면모를 드러내십니다. 이 무고한 수난자가 희망에 대한 확신을 이루어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며,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지만 신앙을 통하여 어렴풋이 알수 있는 방식으로 정의를 이루실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의 부활이 있습니다.33) 과거의 고통을 '없애고' 모든 것을 바로잡는 보상이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최후의 심판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희망입니다. 이러한 희망이 필요하다는 것은 최근 여러 세기의 격동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저는 정의의 문제가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을 뒷받침하는 핵심 논거, 가장 강력한 논거가 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 삶에서 우리가 누릴 수 없는 완성이나 우리가 기다리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순전히 개인적인 요구는 분명히 인간이 영원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믿음의 중요한 동기가 되지만,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생명에 대한 필요성이 온전히 납득되려면 역사가 불의로 끝날 수 없다는 것과 연관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44. 정의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맞서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 없는 세상은 희망이 없는 세상입니다(에페 2,12 참조). 하느님만이 정의를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은 우리에게 그런 확신을 심어줍니다. 최후의 심판은 근본적으로 두려운 장면이 아니라 희망의 장면입니다. 우리에게는 결정적인 희망의 장면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두려운 장면이 아니냐고 물어 온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책임을 일깨우는 장면이며, 그래서 두려운 장면입니다. 힐라리오 성인이 우리의 모든 두려움은 사랑 안에 있다고 말한 그 두려움입니다. 35) 하느님께서는 정의이시며 정의를 이루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위안이고 희망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정의 안에는 은총도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의와 은총은 그 올바른 내적 관계 안에서 보아야 합니다. 은총은 정의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은총은 그른 것을 옳게 만들지 않습니다. 은총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슨 짓을 하였든지, 결국 모두 똑같아지도록 모든 것을 닦아 내버리는 지우개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이러한 하늘 나라와 이러한 은총을 반대한 것은 옳았습니다. 결국, 악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들이 희생시킨 이들과 나란히 영원한 잔칫상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저는 정의로운 심판을 예고하는 듯한 플라톤의 글귀를 인용할까 합니다. 이 글은 여러 면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진리이며 도움이 됩니다. 신화적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지만, 플라톤은 결국 영혼들이 맨몸으로 판관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애매함 없이 확실하게 진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판관 앞에서는 그들이 역사상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진실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만이 중요합니다. "판관은 가끔 임금이나 군주나 세력가를 심판해야 하는데, 그 영혼에서 도무지 건전함을 찾아 볼 수 없고 온갖 위증과 악행의 흔적만 남아 있음을 알게 된다. ...... 그 영혼은 거짓말과 허영으로 꼬이고 뒤틀려 있으며 영혼이 발전되는 과정에 진리가 설 자리가 전혀 없었으므로 똑바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권력과 사치와 오만과 방탕 때문에 이 영혼은 온갖 기형과 추함으로 가득하여, 판관은 그를 자세히 검사한 다음 곧바로 감옥으로 보낸다. 감옥에 도착하면 바로 적절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 그러나 때로는 깨끗하고 진실하게 살아온 다른 영혼이 판관의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러면 판관은 놀라 감탄하며 그를 축복받은 이들의 섬으로 보낸다."36)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루카 15,19-31 참조) 예수님께서는 오만과 호사로 파괴되어 자기 자신과 가난한 사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큰 구렁을 만든 영혼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이는 물질적 쾌락에 사로잡히고 다른 사람을 잊고 지내며 사랑할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구렁으로서, 결국 달랠 수 없는 강렬한 목마름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최후의 심판 이후의 최종 운명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특히 초기 유다교에서 발견되는 개념, 말하자면 죽음과 부활 사이에서 최종 판결이 아직 선언되지 않은 중간 상태의 개념을 다루고 계시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45. 초기 유다교에서 말하는 중간 상태의 개념은 이러한 영혼들이 단순히 일종의 임시 보호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자의 비유가 보여 주듯이 이미 벌을 받고 있거나 잠정적으로 복을 누리고 있다는 관점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룰 수 있도록 영혼을 성장시키는 정화와 치유가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초기 교회는 이러한 개념들을 받아들였으며 서방 교회에서 이 개념들은 점차 연옥 교리로 발전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역사적 전개의 복잡한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는 없으며,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 삶의 선택들은 최종적인 것이 되고 우리의 삶이 판관 앞에 놓이게 됩니다. 일생을 통하여 어떠한 형태를 띠게 된 우리의 선택은 다양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자기 안에서 진리를 바라고 기꺼이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모조리 파괴한 사람들, 그의 모든 것이 거짓인 사람들, 자기 안의 모든 사랑을 억누른 채 증오로 살아 온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끔찍한 생각이지만, 우리 역사의 몇몇 인물에게서도 이러한 유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치유책도 없으며 선의 파괴를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지옥이라는 말은 이러한 의미입니다. 37) 반면에 완전무결하고, 온전히 하느님으로 충만해 있으며, 이웃에게 활짝 열려 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가 심지어 그들 존재 전체의 지향점이 되고 하느님을 향한 여정만이 현재의 그들의 모습을 완성시킵니다.

46. 그러나 우리는 경험을 통해, 양쪽의 경우 모두 인간 삶에서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의 경우, 그들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는 궁극적으로 진리와 사랑과 하느님께 내적으로 열려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삶의 구체적인 선택에서는 끊임없이 대두되는 악과의 타협이 이를 가립니다. 많은 더러움이 순수함을 가리지만, 순수에 대한 갈망은 남아 있으면서 온갖 비열한 것 속에서도 계속해서 다시 고개를 들고 영혼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판관 앞에 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살면서 쌓인 모든 더러움이 갑자기 대수롭지 않게 되겠습니까? 또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각자의 고유한 환경에 따라 하느님의 심판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사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표현하려는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이러한 생각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 너머의 세계를 볼 수도 없고 경험해 보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이미지들을 개념화하지 못합니다. 바오로는 우선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공통의 기초 위에 지어진다고 말합니다. 이 기초는 영원합니다. 이 기초 위에 굳건히 서서 그 위에 우리 삶을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는 죽음에서도 이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말합니다. "그 기초 위에 어떤 이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는다면, 심판 날에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저마다 한 일도 명백해질 것입니다. 그날은 불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저마다 한 일이 어떤 것인지 그 불이 가려낼 것입니다. 어떤 이가 그 기초 위에 지은 건물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삯을 받게 되고, 어떤 이가 그 기초 위에 지은 건물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입게 됩니다.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겠지만 불 속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듯 할 것입니다"(1코린 3,12-15). 이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구원은 여러 형태를 띨 수 있고, 지어 놓은 것의 일부가 타버릴 수도 있으며, 온전히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영원한 혼인 잔칫상에 우리 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우리가 각자 "불"을 지나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47. 최근의 일부 신학자들은 태워 버리기도 하고 구원하기도 하는 그 불이 바로 판관이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만남은 최종적인 심판 행위입니다. 그분 눈길 앞에서 모든 거짓은 녹아 버립니다. 그분과 이러한 만남은 우리를 태우고 변화시키고 자유롭게 함으로써 참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게 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쌓아 올리는 모든 것은 속이 비어있는 지푸라기, 텅 빈 허세로 드러나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만남이 주는 아픔 가운데에서 더럽고 병든 우리 삶을 분명히 깨닫게 될 때 거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불을 통하여" 분명 고통스러운 변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그분의 눈길, 그분 마음이 어루만져 주시는 치유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축복받은 아픔입니다. 그분 사랑의 거룩한 힘이 불길처럼 우리를 뚫고 지나가 온전한 우리 자신, 그리하여 온전한 하느님 사람이 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정의와 은총의 상호 관계도 분명해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적어도 그리스도와 진리와 사랑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면 우리 죄가 우리를 영원히 더럽히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 죄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하여 이미 불타 없어졌습니다. 심판 때에 우리는 세상과 우리 안의 모든 악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커다란 힘을 체험하고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랑의 아픔은 우리 구원이며 우리 기쁨이 됩니다. 분명,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위한 불타는 '기간'(tempus)을 이 세상의 시간의 잣대로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만남에서 변화의 '순간'(momentum)은 지상의 시간 계산법을 벗어납니다. 그것은 마음의 시간이며,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건너가는' 시간입니다.39) 하느님의 심판은 정의이며 또한 은총이기 때문에 희망입니다. 심판이 은총이기만 하다면, 그래서 이 세상에서서의 모든 일을 무의미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역사와 하느님께 정의라는 중요한 문제를 묻고 하느님께는 이문제에 대하여 우리에게 설명 하셔야 할 것입니다. 심판이 정의이기만 하다면, 심판은 결국 우리에게 두려움만 가져다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강생은 심판과 은총을 매우 긴밀하게 연결시켜 정의가 확실히 세워지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필리 2, 12) 우리 구원을 위하여 힘씀니다. 그럼에도 은총은 우리가 모두 희망할 수 있게 하며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1 요한 2,1 참조)이신 판관을 만나러 확신을 갖고 나갈 수 있게 합니다.

48. 여기서 그리스도교 희망을 실천하는 데에 중요한 한 가지 사항을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초기 유다교 사상에는 중간 상태에 있는 죽은 이들을 기도로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예를 들어 마카 12,38-45 참조, 기원 전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상응하는 관습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이러한 관행은 동방과 서방 교회에 공통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동방 교회는 '사후'에 영혼들이 정화와 속죄를 위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지만 중간 상태에 다양한 수준의 복과 고통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죽은 이들의 영혼은 성찬례와 기도와 자선을 통하여 '위로와 기운'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 사후까지 미칠 수 있으며 서로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죽음의 경계 너머까지 계속되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수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확신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위안의 이유가 됩니다.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에게 애정의 표시나 감사의 몸짓, 또는 용서의 간청을 전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됩니다. '연옥'이 단지 판관이며 구세주이신 주님과 만남 안에서 불을 통해 정화되는 것일 뿐이라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어떻게 제삼자가 개입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물음을 던질 때 우리는 그 누구도 온전히 홀로 동떨어진 섬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서로 관련되어 있고, 수많은 관계를 통하여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이루는 것에서 다른 이들의 삶이 끊임없이 내 삶 안으로 들어옵니다. 반대로 내 삶도 다른 이들의 삶에 흘러 들어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한 나의 기도는 심지어 그가 죽은 다음에라도 그에게 무관한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존재의 상호 연결 안에서, 다른 이에게 감사하며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그의 정화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지상의 시간을 하느님의 시간으로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영혼들의 친교안에 단순한 지상의 시간은 극복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은 언제라도 늦지 않으며 결코 헛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햇 우리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희망의 중요한 요소를 밝힐 수 있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언제나 본질적으로 다른 이들을 위한 희망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만 그것은 나를 위한 희망도 됩니다.40) 우리 그리스도인은 내가 나를 어떻게 구원할 수 있는가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구원받고 그들에게도 희망의 별이 떠오르게 하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희망의 별이신 마리아

49. 8세기 또는 9세기에 작성되어 천년이 넘도록 전해 온 찬미가에서 교회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바다의 별'이라고 부르며 인사드립니다(Ave maris stella). 인간의 삶은 여정입니다. 그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또 길은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삶은 때로 암흑과 폭풍우가 들이닥치는 역사의 바다를 헤쳐 나아가는 항해와 같고, 그 항해를 하는 동안 우리는 방향을 가리켜 주는 별들을 살핍니다. 우리 삶의 참된 별들은 훌륭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희망의 등불입니다. 분명,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사의 모든 그림자 위로 떠오른 태양과 같은 참된 빛이십니다. 그러나 그분께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가까이 있는 등불도 필요합니다. 자신의 빛으로 우리의 길을 이끄는 사람들입니다. 마리아보다 더 훌륭한 희망의 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예"라고 대답하심으로써 우리 세상의 문을 하느님께로 열어주셨으며, 하느님께서 육신을 취하시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당신의 천막을 치도록 품어 주신 살아있는 계약의 궤가 되셨습니다(요한 1,14 참조).

50.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거룩한 성모님, 성모님께서는 시메온처럼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고"(루카 2,25) 한나처럼 "예루살렘의 속량을" 희망하는 겸손하고 위대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한 사람이셨습니다. 성모님의 삶은 희망을, 곧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하신 약속을(루카 1,55 참조) 말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성경에 온전히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의 천사가 성모님께 나타나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의 희망을 낳게 되리라고 말했을 때 성모님께서 느꼈을 거룩한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을 통해 , 성모님의 "예"라는 대답을 통해, 오랜 시간의 희망이 실현되어 이 세상과 역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막중한 임무 앞에 순종하시어 "예"하고 대답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거룩한 기쁨에 벅차 서둘러 유다의 산악지방을 지나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하셨을 때의 성모님 모습은, 역사의 산악 지역을 지나 장차 세상의 희망을 품게 될 교회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 앞으로 영원히 울려 퍼질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로 표현하셨던 그 기쁨과 더불어,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종이 이 세상에서 겪으신 고통에 관한 예언자 불길한 말도 들으셨습니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그분이 탄생하셨을 때에는, 그 위로 빛에 둘러싸여 목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 천사들도 있었지만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낮은 모습도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늙은 시메온은 성모님께 영혼이 칼레 꿰찔리는 듯(루카 2,35 참조) 아플 것이며, 아드님께서 이 세상에서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자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당신 사명에 따라 세우셔야 하는 가족, 당신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로(루카 11,27-28 참조) 이루어지는 그 가족이 더 커질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나셨습니다. 예수님 직무의 시작을 뜻하는 그 큰 기쁨 속에도, 성모님께서는 나자렛의 회당에서 "반대를 받는 표징"이라는 말의 참뜻을 이미 체험하셨습니다(루카 4,28 참조). 이렇게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둘러싼 적대와 반대의 힘이 점점 더 거세지는 것을 보셔야 하셨으며 마침내 십자가의 때에 이르러서는 세상의 구원자, 다윗의 후손,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실패자처럼 죄인들 사이에서 조롱받으며 돌아가시는 것을 보셔야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십자가에서 성모님께서는 새로운 사명을 받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성모님께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아드님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어머니가 디신 것입니다. 슬픔의 칼이 성모님의 가슴을 꿰찔렀습니다. 희망이 죽었습니까? 세상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삶의 목표가 완전히 사라졌습니까? 그때, 성모님께서는 예수님 탄생을 예고 받으셨을 때 느꼈던 두려움에 대답하는 천사의 소리를 저 깊은 곳에서 다시 들으셨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루카 1,30). 아드님이신 주님께서도 얼마나 여러 번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까! 해골 터 에서 밤을 보내시는 동안 성모님께서는 마음속으로 이 말씀을 다시 들으셨을 것입니다. 배신당하기 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그때 나자렛에서 천사는 성모님께 이런 말도 하였습니다.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33). 그 나라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께서 몸소 하신 말씀에 힘입어 성모님께서는 믿는 이들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성 토요일의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굳건히 간직하셨던 이러한 믿음으로 성모님께서는 부활절 아침을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부활의 기쁨이 성모님의 가슴을 깊이 울렸고 제자들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되어,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가족이 디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모님께서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 한가운데 계셨습니다. 그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다음 성령을 보내 주시기를 한마음으로 기도하였고(사도 1,14 참조) 오순절에 그 선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느 상상했던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때 시작된 이 "나라"에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여전히 제자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어머니로, 희망의 어머니로 계십니다. 거룩한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저희 어머니시여, 저희에게 당신과 함께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그분의 나라에 이르는 길을 저희에게 보여 주소서! 바다의 별이시여, 저희에게 빛을 비추어 저희의 길을 이끌어 주소서!


로마 성 베드로좌에서
교황 재위 제3년
207년 11월 30일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에
교황 베네딕토 16세

주> 1. '라틴 비문집' (Corpus Inscriptionum Latinanum) 6, 26003.
2.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교의 관한 시(Poema dogmatica), 33-64)
3. '가톨릭 교회 교리서', 1817-1821 항.
4. 성 토마스 아퀴노,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2-2ae, q.4, a.1 참조.
5. H. Köster,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emt 8(1969), 585.
6. 성 암브로시오, '아우 사티루스의 죽음'(De excessu fratris sui Satyri) 2, 47, '라틴 교회 저술가 전집'(Corpus Scriptorum Eccestiasticorum Latinorum: CSEL)73,274.
7. '아우 사티루스의 죽음' 2,46. CSEL 73, 273.
8. 성 아우구스티노,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 14,25-15,28, '편지' 130(Ep. 130 Ad Probam), CSEL 44,68-73 참조.
9.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25항 참조.
10. Jean Giono, Les vraies richesses, Paris, 1936, 서문 : Henri de Lubac, Catholicisme. Aspects sociaux du dogme, Paris, 1983, 7에서 재인용.
11. 성 아우구스티노,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 13,24, '편지' 130, Csel 44,67.
12.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묵상집'(Sentetiae) 3,118, '라틴 그리스도교 문학 전집'[Corpus Cbristianorum (Series Latina) : CCL] 6/2,215.
13.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묵상집', 3,71, CCL 6/2, 107-108 참조.
14. Francis Bacon, '신기관'(Novum Organum), 1, 117.
15. '신기관', 1,129 참조.
16. Francis Bacon, '새로운 아틀란티스' (New Atlantis)참조.
17. Immanuel Kant, '칸트 전집'(Werke), 4, W.Weischedel 편, 1956, 777.
18. Immanuel Kant, '만물의 끝'(Das Ende aller Dinge, in Werke), 칸트 전집' 6, W. Weischedel 편, 1964, 190.
19. 막시무스, '사랑의 단장'(Capita de caritate), Centuria 1, PG 90, 965.
20. '사랑의 단장', Centuria 1, cap, 1, PG 90,962-966 참조.
21. 성 아우구스티노, '고백록'(Confessiones), 10, 43, 70, CSEL 33,279.
22. 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Sermones), 340, 3, '라틴 교부 총서' (Patrologia Latina:PL), 38,1484 ; 참조: F. Van der Meer, Augustinus der Seelsorger, 1951,318.
23. '설교집', 39, 4, PL 38, 1481.
24. '고백록', 10,43,69, CSEL 33,279.
25.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7항 참조.
26. 성 아우구스티노, '요한 서간 강해'(Epistulam Ioannis), 4,6,PL 35, 2008s 참조.
27.Nguyen Va Thuan, Tetimony of Hope, Bosthon 2000, 156-157.
28. 성무일도, 독서 기도 11월 24일.
29. 성 클레보르의 성 베르나르도, '아가 강론'(Sermones in Canticum), Semo 26, 5, PL 183, 906.
30. Theodor W. Adorno, Negative Dialektik ,1966, 제3부, 3, 11, Gesammelte Schriften 6, Frankfurt am Main, 1973, 395.
31. Negative Dialektik , 제2부.
32. '신앙 규정 편람'(DS), 806.
33. '가톨릭 교회 교리서',988-1004 항 참조.
34. '가톨릭 교회 교리서',1040 항 참조.
35. 성 힐라리오, '시편 강해'(Tractatus super Psalmos), 127, 1-3, CSEL 22, 628-630 참조.
36. 플라톤, '고르기아스'(Gorgias), 525-526c.
37.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3-1037 항
38.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23-1029 항
39. '가톨릭 교회 교리서',1030-1032 항 참조.
40.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2 항 참조.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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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읽어 보세요] *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1부)

* 내용이 조금 길지만 시간내서 한 단락씩 읽어 보세요.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원하시는 분을 위해 영어 원문을 파일 첨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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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ENCYCLICAL LETTER
SPE SALVI
OF THE SUPREME PONTIFF
BENEDICT XVI
TO THE BISHOPS
PRIESTS AND DEACONS
MEN AND WOMEN RELIGIOUS
AND ALL THE LAY FAITHFUL
ON CHRISTIAN HOPE

그리스도교 희망에 관하여

주교와 신부, 부제, 남녀수도자,

모든 평신도에게 보내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차례

1. 신앙은 희망

2. 신약 성경과 초기 교회에서 신앙을 바탕으로 한 희망의 개념

3. 영원한 생명이란 무엇인가?

4. 그리스도교 희망은 개인주의적인가?

5. 현대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희망의 변화

6. 그리스도교 희망의 참 모습

7. 희망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들’
1) 희망의 학교인 기도
2) 희망을 배우는 자리인 활동과 고통
3) 희망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인 심판

8. 희망의 별이신 마리아

서론

1.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 받았습니다"(로마 8,24 : Spe salvi facti sumus). 이렇게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또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말하는 구원은 당연한 기정사실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실에 맞설 수 있는 든든한 희망을 얻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현재라면, 그리고 우리가 이 목표를 확신할 수 있다면, 또한 이 목표가 힘든 여정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위대한 것이라면, 비록 고달프더라도 우리가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는 현재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됩니다. 그 희망을 바탕으로 하여, 그리고 단지 그러한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구원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희망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이 확신은 어떤 것입니까?

1. 신앙은 희망이다.

2. 이 시의 적절한 질문을 다루기에 앞서 희망에 관한 성경의 증언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여러 구절에서 '신앙'과 '희망'이 호환되어 사용될 정도로 '희망'은 성경에서 신앙의 중심 단어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확고한 믿음"(10,22)과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10,23)하는 것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베드로의 첫째 서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희망의 의미이자 이유인 로고스에 관한 답을 할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어야 한다고 권고할 때(3,15 참조), 이 '희망'은 '신앙'과 똑같은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가진 이후의 삶을 그 이전의 삶이나 다른 종교인들의 삶과 비교해 보면, 든든한 희망의 선물을 받은 것이 이들의 의식에 얼마나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에 있는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에페 2,12) 그들에게 환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물론 바오로 사도는 그들에게 신들이 있었다는 것, 종교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들은 의심스러운 존재로 판명되었고 그들의 모순된 신화에서는 아무런 희망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 신들이 있었지만 "하느님 없이"살아서 계속 어두운 세계에 머물고 음울한 미래를 마주하였습니다. 이 시대의 어떤 비문에는 "우리는 얼마나 빨리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 가!"(In nihil ab nihilo quam cito recedimus) 1)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문장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하고자 한 것을 분명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말을 합니다. 그들이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1테살 4,13)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도 미래가 있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맞이하게 될지 자세히 알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공허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대강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가 확실한 실재라는 확신이 서야지만 현재도 살 수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단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전하는 '기쁜 소식'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어로 표현한다면 그리스도교의 소식은 '정보 전달적'(infomativus)인 것 만이 아니라 '실천적'(perfomativus)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복음이 알 수 있는 것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행동을 촉구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시간의 어두웠던 문, 미래의 암울한 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희망을 가진 이는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희망하는 이는 새 생명의 선물을 받습니다.

3.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됩니다. 이 '구원'인 희망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입니까? 이에 대한 답의 핵심은 앞에서 인용한 에페소서에 나오는 구절에 들어 있습니다. 에페소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 없이" 살았기 때문에 희망이 없었습니다. 참된 하느님을 알게된다는 것은 희망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느님과 늘 함께 살아가며 이에 길들여진 우리는 이 하느님과 실제로 만나 희망을 가지게 된 사실을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을 처음으로 또 참으로 만나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우리 시대 성인의 모범이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저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시성하신 아프리카 출신의 요세피나 바키타를 생각해 봅니다. 그녀는 자신도 정확히 모르지만 1869년 무렵 수단의 다르푸르에서 태어났습니다. 9살때 노예 상인에게 납치되어 피가 나도록 매를 맞고 수단의 노예시장에서 다섯 차례나 팔려갔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한 장군의 어머니와 부인의 몸종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매일 피가 나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평생 몸에 144개의 흉터를 지닌 채로 살게되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1882년 이탈리아 상인을 통하여 당시 이탈리아 공사였던 칼리스토 레냐니에게 넘겨졌습니다. 레냐니는 마흐디주의자들의 침입이 있자 이탈리아로 귀국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요세피나 바키타는 그때까지 자신을 소유해 왔던 무시무시한 '주인들' 말고 전혀 다른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배운지 얼마 안된 베네치아 사투리로 살아 계신 하느님, 곧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을 '파론'(paron)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때까지 그녀는 자신을 무시하고 학대하거나 기껏해야 말 잘듣는 노예로 여기는 주인들만을 모셔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주인들 위에 계신 최고의 주님이신 '파론'이 계시다는 것을, 그리고 이 주님께서는 선하신 분, 곧 선 자체이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님께서 그녀를 알고 계시고 창조하셨으며 참으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분 앞에서는 다른 모든 주인이 그저 비천한 종이 되고 마는 지극히 높으신 '파론'의 사랑을 그녀도 받은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그녀를 알고 사랑하시고 맞이하여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이 주님께서는 스스로 매를 맞으시는 운명을 받아들이셨고 이제는 '성부 오른쪽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그녀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덜 잔인한 주인을 만나기 바라는 소박한 희망이 아니라 위대한 희망입니다. "저는 분명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이 사랑이 저를 기다려 줄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삶은 행복합니다." 이러한 희망을 알게되어 그녀는 '구원' 되었습니다.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유로운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녀는 바오로사도가 에페소 신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고 말한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없기에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수단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파론'과 떨어지기 싫었던 것입니다. 1890년 1월 9일 그녀는 베니스의 총대주교에게 세례와 견진을 받고 첫영성체를 하였습니다. 1896년 12월 8일 베로나에서 그녀는 카노사 수녀회에 입회 서원을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그녀는 수도원의 제의실 일과 봉쇄 구역 문지기 일을 하면서도 이탈리아 곳곳을 돌아다니면 선교를 독려했습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을 만나서 얻게 된 해방을 널리 펼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녀 안에 자리 잡아 자신을 '구원'한 희망을 혼자만 간직할 수 없었습니다. 이 희망을 많은 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했습니다.

2. 신약 성경과 초기 교회에서

신앙을 바탕으로 한 희망의 개념

4.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당신 모습을 보여 주시고 마음을 열어 주신 하느님과 만나는 것이 우리에게도 '정보 전달적'인 것만이 아니라 '실천적'일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해서 그 만남이 의미하는 희망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되었다는 것을 알도록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초기 교회로 돌아가 봅시다. 아프리카의 노예 소녀였던 바키타의 경험이 초기 그리스도교시대의 매 맞고 팔려간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같은 것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피나는 투쟁에서 실패한 스파르타쿠스처럼 사회 개혁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파르타쿠스가 아니셨습니다. 또한 바라빠나 바르 코크바처럼 정치적 해방을 위한 투쟁에 몸담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것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곧 최고의 주님이신 살아 계신 하느님과 만남, 종살이의 고통보다도 더 강력한, 그래서 삶과 세상을 안에서부터 변화시킨 희망과 만나도록 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점은 바오로 사도가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에서 매우 명확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서간은 바오로 사도가 옥중에서 쓴 매우 사적인 것으로 도망친 노예인 오네시모스가 자신의 주인인 필레몬에게 전하도록 부탁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도망친 종을 주인에게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필레 10-16). 사회적 지위에서 주인과 종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하나인 교회의 신자가 되면 형제자매가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통하여 다시 태어나고 같은 성령을 마시고 주님의 몸을 함께 모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외적 구조는 불변해도 사회를 내부로부터 변화시켰습니다. 히브리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상에는 영원한 고향이 없고 미래의 고향을 찾는다고 말한 것은(히브 11,13-16;필레 3,20참조) 오직 미래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사회를 타향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공동 여정의 목적지이며 이 여정 중에 선취된 새로운 사회에 속합니다.

5. 한 가지 점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은(1,18-31)많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낮은 사회 계층에 속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바키타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운 희망을 체험하러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귀족과 교양있는 계층의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리스도교에 귀의하였습니다. 이들 역시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신화는 그 신뢰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로마의 국교는 빈틈없이 진행되는 단순한 예식으로 굳어져 그저 '정치 종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철학적 합리주의는 신들을 비현실 세계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우주의 힘들 안에서 신성한 존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인식되었지만 정작 우리가 기도드릴 수 있는 하느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과 "이 세상의 정령들을"(콜로 2,8) 따르는 삶을 대비시켜 그 시대 종교의 본질적인 문제를 매우 정확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이와 연관하여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성인의 글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레고리오 성인은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와서 새 임금이신 그리스도를 경배하였을 때 점성술이 종말을 고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별들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궤도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2) 사실 이 장면에서 그 당시의 세계관이 뒤집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세계관은 오늘날 또 다른 방식으로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정령들이나 물질의 법칙이 세상과 인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하느님께서 별들을, 곧 우주를 지배하십니다. 물질의 법칙이나 진화의 법칙이 아니라 이성과 의지와 사랑 곧 인격이 궁극적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분을 알고 이분께서 우리를 아시면 물질적 요소의 냉엄한 힘은 더 이상 긍극적 결정을 못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우주나 우주 법칙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고대에는 이러한 인식으로 순수한 정신으로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은 공허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단순한 법칙들과 물질적 우연성의 산물이 아닙니다. 모든 것 안에 또한 모든 것 위에는 인격적 의지가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나타나신 성령께서 계십니다.3)

6.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석관(石棺)은 삶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죽음과 연관하여 이러한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고대 석관에서 그리스도는 원칙적으로 철학자와 목자 두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 당시 철학은 일반적으로 오늘날처럼 어려운 학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철학자는 참다운 인간이 되는 중요한 기술, 곧 삶의 기술과 죽음의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확실히 오래 전부터 철학자인 척, 곧 인생의 교사인 척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진정한 삶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도 없으면서도 말론 돈을 버는 사기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사람들은 인생의 길을 참으로 알려줄 수 있는 진정한 철학자를 더욱 찾았습니다. 3세기 말엽 로마의 한 어린이의 석관 위에 다시 살아난 라자로와 연관하여 예수님께서 한 손에는 복음서를 다른 손에는 철학자들이 들고 다니는 여행용 지팡이를 지니신 참된 철학자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지팡이로 죽음을 이기십니다. 복음은 방랑하는 철학자들이 찾지 못했던 진리를 가져다 줍니다. 당시 석관 예술의 일반적인 형태로 오래 지속된 이러한 모습에서 지식인들과 일반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정말 누구인지, 그리고 참된 인간이 되고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시고, 이길은 진리입니다. 그분 자신이 길이요 진리이시며, 따라서 우리 모두 찾고 있는 생명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을 넘어서는 길도 보여주십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분이 인생의 참스승입니다. 목자의 모습에서도 마찬가지로 목자의 모습도 기존의 로마 예술에 등장하는 예들과 일치시킬 수 있었습니다. 당시 예술에서 목자는 일반적으로 대도시의 혼란 중에서 사람들이 갈망하는 평온하고 소박한 삶에 대한 꿈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러한 모습이 좀 더 깊은 내용을 담은 새로운 이야기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3[22], 1, 4). 참된 목자께서는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는 길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그 목자께서는 아무도 같이 갈 수 없는 완전한 고독의 길에서도 저를 이끌며 함께하십니다. 목자께서 몸소 이 길을 지나가셨습니다. 목자께서 죽음의 나라로 내려가시어 죽음을 이기셨으며, 이제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과 함께하면 나아갈 길을 찾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시려고 돌아오셨습니다. 죽음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 계시고 그분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주어….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시편 23[22], 4 참조)라는 자각은 신자들의 삶에 나타난 새로운 ‘희망’입니다.

7. 다시 한 번 신약 성경으로 돌아가 봅시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우리는 믿음의 덕을 희망과 밀접하게 연결시키는 일종의 믿음에 대한 정의를 발견하게 됩니다. 종교 개혁이후 이 구절의 핵심 단어에 관하여 성서 해석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공동 해석의 길이 다시 열린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핵심 단어를 번역하지 않으면 이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히포스타시스(ὑπόστᾰσις) 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확증입니다.” 교부들과 중세 신학자들에게 그리스 어 히포스타시스를 라틴어 슙스탄티아(substantia, 실체)로 번역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초기 교회 시대에 이루어진 이 구절의 라틴 어 번역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Est autem fides sperandarum substantia rerum, argumentum non apparentium”(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사정의 실체이며 드러나지 않는 것들의 증명입니다.). 토마스 데 아퀴노 성인은 자신이 속한 철학 학파의 용어를 사용하여 ‘믿음은 정신 자세(habius mentis)이며, 이로써 영원한 생명이 우리 안에서 시작되고 오성이 보이지 않는 것에 동의하게끔 이끄는 영혼의 자세’ 라고 설명하였습니다. 4) 그래서 ‘숩스탄티아’(substantia)의 개념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다듬어 졌습니다. 신앙을 통하여 우리가 바라는 온전하고 참도니 생명이 최초의 상태로, 말하자면 ‘싹으로,’ 따라서 ‘실체’(substantia)에 따라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앞으로 올 것의 현존도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이 ‘앞으로 올 것’이 아직은 외부 세계에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만(‘나타나지’ 않지만) 초기의 역동적 실재로서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지금 이미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특별히 공감하지 않았던 마르틴 루터는 자신의 신앙관에 비추어 ‘실체’의 개념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히포스타시스/숩스탄티아의 개념을(우리 안에 있는 실제로서의) 객관적 의미가 아니라 내적 태도의 표현으로서 주관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루터는 증명(argumentum)이라는 단어도 주관적인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 적어도 독일에서는 이러한 해석이 가톨릭의 성서 해석학에도 지배적이었습니다. 주교들이 인준한 독일어 공동 번역 신약에도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에 굳건히 서고, 보지 못하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Glaube aber ist: Feststehen in dem, was man erhofft, Überzeugtsein von dem, was man nicht sieht ). 이것이 틀린 번역은 아닙니다만 본문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그리스 어 엘렝코스(elenchos) 는 주관적 의미의 ‘확신’이 아니라 객관적 의미의 ‘증명’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 개신교의 성서 해석학에서도 제대로 된 다른 해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고전적 개신교의 해석을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5) 믿음은 단순히 아직 전혀 존재하지 않지만 앞으로 올 것에 대한 개인적인 지향이 아닙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줍니다. 신앙은 지금 당장에도 우리가 바라는 실제적인 어떤 것을 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재의 실재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의 ‘확증’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미래를 현재로 이끕니다. 미래가 더 이상 단순한 ‘아직 아니’가 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이러한 미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현재를 바꿉니다. 미래의 실재가 현재와 접촉하여 미래의 것들이 현재에 있는 것들에 쏟아져 들어오고 현재 있는 것들이 미래의 것들에 쏟아져 들어갑니다.

8. 희망에 찬 믿음을 이렇게 정의하는 것과 어휘나 내용 면에서 관련된 히브리서 10장 34절의 말씀을 보면 이러한 설명들이 더 힘을 얻고 일상생활과 연관을 맺게 됩니다. 여기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박해를 겪은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러분은 또한 감옥에 갇힌 이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재산의(hyparchonton—Vg. bonorum)침탈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보다 더 좋고 또 길이 남는 재산을(hyparxin—Vg. substantiam)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파르콘타(υπάρχοντα)는 지상생활을 유지시켜 주는 수단이 되는 재산을 의미합니다. 곧 우리의 삶을 유지시켜 주는 수단이 되는 재산을 의미합니다. 곧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바탕이요 ‘기초’(substantia)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받는 동안 통상적으로 삶을 보장하는 이 ‘기초’를 빼앗겼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굳건히 설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물질적 기초를 중요하지 않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존에 더 좋은, 길이 남고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토대’(fundamentum)를 발견하였기에 이를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기초’(substantia)의 두 가지 유형, 곧 생계 수단 또는 물질적 ‘토대’(fundamentum)와, ‘바탕’(fulcrum)이요 지속적인 ‘기초’(substantia)인 신앙의 표현 간의 연관성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은 우리가 디디고 설 수 있는 새로운 바탕을 마련해 줍니다. 이로써 물질적 소득에 의존하는 일상적 토대에 맞서 나타납니다. 이러한 일상적 토대는 단지 뒷받침이 되는 듯이 보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토대의 일반적인 의미를 부인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이 새로운 자유, 곧 우리가 받은 새로운 ‘기초’에 대한 인식은 이데올로기와 그 정치 기구의 횡포에 저항하여 죽음으로 세상을 새롭게 하는 순교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이는 신앙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육신과 영혼이 고통 받는 이들을 돕기 위하여 고대 수도승들부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수도회와 수도 운동에 가입하거나 참여한 이들도 보여 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저버린 포기의 위대한 행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경우 새로운 ‘기초’는 참다운 ‘기초’로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와 만난 이러한 사람들의 희망에서부터 어둠속에서 희망없이 사는 다른 이들을 위한 희망이 솟아났습니다. 이들의 경우 이 새로운 생명은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마련해 주는 참된 ‘기초’를 보유하고 있고 ‘기초’ 자체가 된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러한 분들을 생각해보면 이분들의 행적과 삶은 사실상 우리에게 앞으로 다가올 것, 곧 그리스도의 약속이 우리가 기다리는 실재일 뿐 아니라 실제적 현존의 ‘확증’이 됩니다. 그분께서는 참으로 생명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철학자’요 ‘목자’이십니다.

9. 히포스타시스와 히파르콘타라는 기초의 두 가지 유형, 그리고 삶에 대한 두 가지 표현 방식을 지닌 이 용어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관련이 있는 히브리서 10장에 나온 히포모네(hypomone, 인내;10,36)와 히포스톨레(hypostole, 물러섬; 10,39)라는 두 단어도 간단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히포모네는 일반적으로 ‘인내’, 곧 끈기와 지조로 번역됩니다. 신자들은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10,35) 고난을 끈기 있게 견디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고대 유다교의 종교적 맥락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 특유의 기다림과, 하느님을 거스르는 세상에서 계약의 확실성에 바탕을 둔 하느님에 대한 꾸준한 충실을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체험한 희망, 희망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기다림, 하느님과 함께한다는 것이 새로운 의미를 띄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앞으로 올 것의 ‘실체’(substantia)를 이미 우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에 대한 기대가 새로운 확신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는 이미 주어진 현재의 관점에서 앞으로 올 것에 대한 기대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며 그리스도의 몸의 완성과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히포스톨레라는 단어는 위험할 수도 있는 진리를 공개적이고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부족하여 뒤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숨으면 “멸망”(히브 10,39)에 이르게 됩니다. 이에 반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2티모 1,7)라는 말슴은 그리스도인들의 근본 자세를 멋지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3. 영원한 생명이란 무엇인가?

10. 지금까지 신약성경과 초기 교회의 신앙과 희망에 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과거만 언급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삶과 죽음 전체에 관한 전반적인 고찰이었습니다. 이는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와도 연관됩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상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삶을 변화시키고 삶을 지탱해 주는 희망입니까? 우리에게 희망이 ‘실천적’인 것, 말하자면 우리의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빚어내는 것입니까? 아니면 어느새 더욱 최신의 정보로 대체된 ‘정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면서, 갓난아이를 신자 공동체에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표현하는 세례 예식 문답의 고전적 형식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사제는 가장 먼저 부모에게 아기의 세례명을 무엇으로 지었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이어갑니다.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 부모는 "신앙을 청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신앙은 그대에게 무엇을 줍니까?“라는 질문에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화에 따르면 부모는 아기가 신앙에 다가가고, 신자들과 친교를 이루기를 바랍니다. 신앙 안에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열쇠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세례를 받는 것, 곧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뜻하는 바입니다. 세례는 공동체 안에 사회화하는 행위나 단순히 교회안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닙니다. 부모는 세례 받는 아기를 위해 더 많은 것을 바랍니다. 부모는 교회와 성사라는 지체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신앙이 아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을 기대합니다. 신앙은 희망의 토대입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됩니다.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영원히 사는 것을 바랍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단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전망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해서 신앙을 거부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현재의 삶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신앙은 현재의 삶에 일종의 장애물처럼 여겨집니다. 영원히 사는 것은 은총이라기 보다는 저주로 보입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죽음을 최대한 늦추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끝없이 영원히 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루하고 결국 참을 수 없는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성 암브로시오 교부는 죽은 아우 사티루스를 위한 추도사에서 바로 이 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죽음은 본성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성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태초부터 죽음을 마련하시지 않고 치유제로 주셨습니다. .... 죄 때문에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노고와 참기 힘든 탄식으로 비참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삶이 잃어버린 것을 죽음이 되찾게끔 하여 이러한 악을 끊어버려야 하였습니다. 은총의 도움이 없었다면 영생은 기쁨이라기보다는 짐이 되었을 것입니다.“6)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미 이에 앞서 ”그래서 죽음에 대하여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이에게 구원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7) 라고 말하였습니다.

11. 암브로시오 성인이 이러한 말을 정확히 무슨 뜻으로 한 것인지와 관계없이, 죽음을 없애거나 어느 정도 지연시킨다면 지구와 인류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개인에게도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태도에는 우리 존재 자체에 있는 내적 모순을 보여 주는 분명한 모순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사랑하는 이들은 우리가 죽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끝없이 살기를 바라지 않고, 지구 역시 이러한 전망으로 창조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모순적 태도는 더 심오한 물음을 던지게 합니다. ‘생명’은 무엇인가? ‘영원’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이것이 바로 참다운 ‘생명’이다, 참다운 생명은 이래야 한다는 것이 갑자기 분명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일상 언어로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참다운 ‘생명’이 전혀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로마의 부유한 과부이며 아들 셋이 집정관을 지낸 프로바에게 보낸 기도에 관한 장문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곧, 궁극적으로 우리는 오직 한 가지 “복된 삶”을 원합니다. 삶 자체, “행복” 자체를 원합니다. 궁극적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가 기도하여 바랄 것은 달리 없습니다. 우리의 여정에 다른 목표는 없습니다. 오직 이것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다음과 같은 말도 하였습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가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전혀 모릅니다. 우리가 손을 내밀어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것은 빠져나가 버립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로마서를 인용하여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릅니다.”(로마 8,26)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이것이 아니라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모르는 가운데에도 우리는 이것이 분명히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래서 우리 안에는 이른바 유식한 무지(docta ignorantia)가 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정말 무엇을 바라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참생명’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모르지만 이끌리는 무엇 인가가 틀림없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8)

12. 저는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모든 모순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의 본질적 상황을 이러한 매우 정확하고 언제나 타당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는 죽음도 건드릴 수 없는 참된 생명을 원합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우리가 이끌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를 향해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경험하거나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알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이끌리는 참다운 ‘희망’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긍정적인 것이든 파괴적인 것이든 참된 세상과 참된 인간을 지향하는 모든 노력과 좌절의 원인이 됩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은 이처럼 모르지만 인식할 수 있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이는 혼란을 일으키는 만족스럽지 못한 단어입니다. 사실 ‘영원’은 끝이 없는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하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생명’이라고 하면 우리가 사랑하는 생명, 잃고 싶지 않은 생명m, 곧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은 여가보다는 피로를 더 가져다주기에 한편으로는 바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를 가두고 있는 한시성을 벗어나는 것을 상상하고, 영원성이란 달력의 날짜가 무한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성이 우리를 감싸고 우리가 전체성을 얼싸 안는 충만한 절정의 순간으로 느끼도록 노력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이 순간은 마치 이전과 이후가 없는, 무한한 사랑의 바다에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러한 순간이 온전한 의미의 생명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는 우리가 단순한 기쁨에 넘쳐 드넓은 존재 안으로 새로이 잠기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요한 복음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요한 16,22). 우리가 그리스도교 희망의 목적을 이해하고, 우리의 신앙,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알고 싶으면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야 합니다.9)

4. 그리스도교 희망은 개인주의적인가?

13.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알지 못하는 앎을 대표적인 형상으로 표현해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정의 방식으로, 곧 무지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하늘’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희망을 표현하련느 이 모든 시도들은 수 세기 동안 사람들에게 신앙을 바탕으로 살아가게 하여 삶을 위한 물질적 기초인 히파르콘타(hyparchonta, 재산)를 포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11장에서 아벨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희망안에서 산 사람들의 일생과 여정에 관한 일종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였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희망은 현대에 들어와서 더욱 강한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비참한 세상을 그냥 내버려 둔 채 배타적이고 개인적인 영원한 구원에서 피난처를 마련하는 방법인 순전히 개인주의라고 무시당하게 된 것입니다. 앙리 드 뤼박은 그의 독창적인 저서 ‘가톨리시즘, 교의의 사회적 측면’(Catholicisme. Aspects sociaux du dogme)의 서론에서 이러한 관점에 관하여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몇 가지 특별한 표현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내가 기쁨을 발견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단지 내 기쁨입니다. 이는 무척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개인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가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지금 그리고 언제나.....그는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지금 그리고 언제나.....그는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그는 혼자입니다. 이러한 기쁨의 고독이 그에게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선택된 사람입니다! 축복 속에서 그는 손에 장미를 들로 전쟁터를 뚫고 지나갑니다.”10)

14. 이와는 달리, 드 뤼박은 해박한 교부학적 바탕위에서 구원을 사회적 실재로 보아야 하는 것임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히브리서는 “도성”(11,10,16; 12,22; 13,14 참조)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데, 이는 공동체적 구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관점ㅂ에 따라 교부들은 죄를 인류 일치의 파괴, 곧 붕괴와 분열이라고 보았습니다. 언어의 혼란과 분열이 일어난 곳인 바벨은 죄가 근본적으로 무엇인지를 드러냅니다. ‘구원’은 신자들의 세계 공동체 안에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는 일치 안에 우리가 다시 모이는 일치의 재건입니다. 희망의 사회적 특성을 보여 주는 모든 문헌을 여기에서 검토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실재를 조금이라도 깨우쳐 주고자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에 집중해 보기로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단순히 ‘복된 삶’이라는 표현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시편 144[143]편 15절의 “행복하여라, 이렇게 되는 백성!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백성!”이라는 구절을 인용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러한 사람들에 속하고.....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그러한 지시의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바른 양심과 진실한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1티모, 1,5)”11)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도달하려고 늘 애쓰는 이 참된 삶은 ‘백성들’과 실존적으로 일치하는 데 달려 있으며, 이 삶은 ‘우리’안에서 각자에게 실현됩니다. 이는 우리가 ‘나’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러한 보편적 자아에 열려야만 우리의 시선이 기쁨의 원천인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5. '복된 삶'에 대한 이러한 공동체 지향적인 관점은 분명히 현세를 초월하여 나아가는 것이지만, 역사적 상황과 그에 따라 주어지거나 배제된 가능성에 따라서 현세를 건설하는 것과도 연관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시대에 새로운 민족들의 침략은 법적 질서가 자리 잡힌 사회에서 권리와 생명을 어느정도 보장해 주던 세상의 단결을 위협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단결이란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공동체의 삶과 평화를 지탱해 주는 토대를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여러 측면에서 보여 주는 어느 정도 무작위로 선택한 중세의 한 시점으로 눈을 돌려 봅시다. 흔히 수도원은 개인 구원을 위한 세상으로부터 도피처(contemptus mundi, 세상을 업신여김)로 인식되었습니다. 자신의 개혁 수도회에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던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은 이에 관하여 전혀 다른 전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수도승들은 전체 교회와 세상을 위한 책무를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교회의 전체 지체, 아니 모든 인류를 위한 수도승들의 책임을 드러내고자 여러 가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그는 수도승들에게 가짜 루피누스(pseudo-Rufinus)라는 단어를 적용하였습니다. "인류는 소수의 사람들 덕분에 살아갑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세상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12) 그는 관상하는 사람들(contemplantes)은 농사꾼(laborantes)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유다교에서 물려받은 노동의 고귀함은 이미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 규칙에 나와 있습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이러한 생각을 다시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수도원에 몰려드는 젊은 귀족들은 육체노동을 해야 하였습니다. 사실 베르나르 성인은 수도원조차도 낙원을 재건할 수는 없지만 현실적이고 영적으로 '땅을 일구는' 장소로서 새로운 낙원을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숲 속 거친 땅이 기름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오만의 나무들이 쓰러졌습니다. 영혼 안에 자라는 모든 잡초들이 뽑혔고 육신과 영혼을 위한 빵이 넘쳐나는 땅이 마련되었습니다. 13) 우리는 현대사를 마주하여 영혼의 잡초가 무성한 곳에서는 세상의 참된 구조도 꽃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목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5. 현대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희망의 변화

16. 예수님의 메시지가 매우 개인주의적이며 오로지 각 개인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생각이 어떻게 발절될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영혼의 구원'을 전체에 대한 책임 회피로 해석하게 된 것입니까? 그리스도교에서 구원을 찾는 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를 거부하는 이기적인 추구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습니까? 이에 대답하려면 근대의 기틀이 된 요소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요소들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사상에서 특히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이러한 진보를 가능하게 한 신기술 발명을 통하여 새 시대가 열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새 시대의 밑바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이 자연법과 동등하다고 해석하게 하여 마침내 '자연에 대한 기술의 승리'(victoria cursus artis super naturam)14)를 이루게 된 실험과 방법의 새로운 상호 관계입니다. 베이컨의 전망에 따르면, 그 새로움은 과학과 실천의 새로운 상호 관계에 있습니다. 이는 신학적으로도 적용됩니다. 과학과 실천의 이 새로운 상호관계는, 하느님께서 주셨으나 원죄로 잃어버린 모든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을 재구축하게 되었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15)

17. 이러한 주장을 주의 깊게 성찰해 본 사람이라면 여기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낙원에서 쫓겨나며 인간이 잃어버린 것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되찾을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안에서 '구원'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제, 이 '구원', 곧 잃어버린 '낙원'의 회복에 대한 기대는 더 이상 신앙이 아니라 새롭게 발견된 과학과 실천의 결합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신앙이 단순히 부인되었다기보다는 오로지 개인과 다른 세상에 관련된 차원의 문제가 되고, 또 어느 모로 이 세상과 무관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의도적인 관점은 근대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고 오늘날에 와서도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교 희망의 위기인 신앙의 위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렇게 베이컨을 통하여, 희망은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됩니다. 이제 그것은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불립니다. 베이컨에게 그 당시 이루어진 여러 발견과 발명은 분명히 그저 시작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과학과 실천의 상호 작용으로 완전히 새로운 발명이 이루어지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 곧 인간의 나라가 나타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16) 베이컨은 비행기와 잠수함을 포함한 앞으로 나올 발명까지도 그려보았습니다. 진보의 이데올로기가 더욱 발전될수록, 눈에 보이는 인간 잠재력의 향상에 대한 기쁨으로 '진보에 대한 믿음'도 계속 확고해졌습니다.

18. 또한 이성과 자유라는 두 범주가 점차 진보 개념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진보는 무엇보다도 이성의 지배가 확대되는 것과 연관됩니다. 그리고 이 이성은 분명히 선의 힘, 선을 위한힘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진보는 모든 종속을 극복하고 완전한 자유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유는 인간의 온전한 자아실현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유와 이성이라는 두 개념에는 정치적 측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된 인류의 새로운 여건으로 이성이 지배하는 나라를 꿈꿉니다. 그러나 이성과 자유가 지배하는 그러한 나라의 정치적 여건들은 언뜻 보면 확연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성과 자유는 그 본질적인 선익에 힘입어 그 자체로 새롭고 완벽한 인간 공동체를 보장해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성'과 '자유'라는 두 핵심 개념은 암암리에 그 시대의 국가 질서의 속박뿐만 아니라, 신앙과 교회의 속박과도 상충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개념은 엄청난 폭발력이 있는 혁명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19. 이 희망의 정치적 구현을 위한 두 주요 단계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희망의 증진과 그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그리고 이를 꾸준히 지키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단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성과 자유의 지배를 하나의 정치적 실재로 확립하려고 시도한 프랑스 혁명이 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의 유럽은 처음에는 이 사건을 매력적인 것으로 바라보았지만, 프랑스 혁명이 진전됨에 따라 이성과 자유에 관하여 새롭게 성찰해야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받아들이는 이 두 단계는 당시 상황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담은 임마누엘 칸트의 두 글에 잘 표현 되어 있습니다. 1792년 그는 '악의 원리에 대한 선의 원리의 승리와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건설(Der Sieg des guten Prinzips über das böse und die Gründung eines Reiches Gottes auf Erden )을 썼습니다. 이글에서 그는 "교회적 신앙에서 순수한 종교적 신앙만의 지배로 점차 옮아갈 때 하느님 나라가 도래한다."17)라고 말합니다. 또한 혁명이 교회적 신앙에서 이성적 신앙으로의 이 이행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여기에서 새롭게 정의되고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이른바 '서두르는 기다림'(exspectatio subita)이 새롭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이성적 신앙인 '종교적 신앙'이 '교회적 신앙'을 극복하는 바로 그 곳에 '하느님 나라'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1794년 '만물의 끝'(Das Ende aller Dinge)의 본문에는 변형된 형태가 나타납니다. 이제 칸트는 만물의 자연스러운 끝뿐만 아니라 반자연적인 곧 전도된 끝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어느 날 사랑에 합당치 않게 될 때.....사람들 사이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거부와 반대의 마음이 팽배할 것이다. 그리고 짧은 기간일지라도(아마도 두려움과 이기심에 바탕을 둔) 적그리스도의 통치가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세계 종교가 되도록 예정되었으면서도 실제로 그러한 운명대로 되어가지 않는다면, 도덕적인 측면에서 만물의 (전도된) 끝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18)

20. 19세기에 진보에 대한 믿음은 인류의 새로운 형태의 희망으로 굳건히 지속되었고, 이성과 자유는 계속해서 희망의 길을 밝히는 길잡이 별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점점 신속해지는 기술 발전과 이와 연관된 산업화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사회 상황이 생겨나게 됩니다. 산업 노동자 계급과 이른바 '산업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생겨났습니다. 1845년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들의 열악한 생활 조건을 묘사하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독자들에게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어서는 안되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변화는 부르주아 사회의 구조 전체를 뒤흔들고 전복시킬 것입니다. 1789년의 부르주아 혁명 이후 이제 새로운 혁명,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진보는 단계별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혁명적인 도약이 필요하였습니다. 칼 마르크스는 이러한 시대의 요청을 받아들여, 자신의 탁월한 언어와 지식으로, 칸트가 '하느님 나라'라고 한 구원을 향한 역사상의 이 중대하고 새로운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결정적인 전진을 시작하고자 하였습니다. 내세의 진리를 부인하고 나자 현세의 진리를 세우는 문제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늘에 대한 비판은 땅에 대한 비판이 되고, 신학에 대한 비판은 정치에 대한 비판이 되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궁극적으로 선한 세상을 향한 진보는 더 이상 단순히 과학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이 정치는 과학적으로 사유된 것인데, 역사와 사회의 구조를 인정할 줄도 알고 모든 것을 바꾸는 혁명을 향한 길도 제시하였습니다. 마르크스는 비록 한편으로 치우치기는 했지만 자기 시대의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였고 혁명을 향한 길을 매우 분석적으로 명쾌하게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이론에 그치지 않고 1848년 공산당 선언으로 탄생한 공산당을 통하여 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의 약속은 예리한 분석 덕분에 또 급진적 변화를 위한 명확한 수단 제시 덕분에, 사람들을 매료시켜 왔고 지금도 계속해서 매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에서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21. 그러나 혁명의 승리와 더불어 마르크스의 근본적인 오류도 입증되었습니다. 그는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는 방법은 명확히 제시 하였으나, 이에 뒤따르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지배 계급의 타파, 정권의 몰락, 생산 수단의 사회화를 통하여 새로운 예루살렘이 실현된다고 가정하였습니다. 실제로 모든 모순이 척결되면 인간과 세상은 마침내 안정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모든 사람이 서로를 위하여 최선의 것을 바라기 때문에, 모든 것이 스스로 올바른 길을 따라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혁명을 달성한 다음, 레닌은 스승의 저서에는 그다음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관하여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과도기가 필요하다고 말하였지만, 이는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소멸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과도기'에 대하여 모두 잘 알고 있고 이것이 어떻게 전개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완전한 세상으로 이끌어가기는 커녕 비참한 파괴만 남겼습니다. 물론 실제로 불필요하게 되었지만 마르크스는 이 새로운 세상에 필요한 질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침묵은 그가 선택한 접근 방법에 따른 논리적 귀결입니다. 그의 오류는 더 깊은 데에 있습니다. 그는 인간은 언제까지나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을 망각하고 인간의 자유를 망각하였습니다. 그는 자유가 언제든 악을 위한 자유도 된다는 점을 망각하였습니다. 그는 경제만 바로잡으면 모든 것이 바로잡힐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의 결정적 오류는 유물론입니다. 인간은 실제로 단지 경제적 조건의 산물이 아니고 경제적으로 바람직한 조건을 마련하는 것을 통하여 외부적으로만 구원될 수는 없습니다.

22. 우리는 다시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정신 그리고 희망에 대한 그리스도교 개념과 나누는 대화에는 현 시대의 자기 비평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이 대화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인의 희망이 참으로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주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줄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현 시대의 이러한 자기 비평에 합류하여 현대 그리스도교도 스스로를 비평해 봄으로써 자신의 근원부터 시작하여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여기에서 몇 가지 간략한 언급을 하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진보'란 참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보가 약속하는 것은 무엇이고 약속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19세기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이미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20세기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진보에 대한 믿음이 지닌 문제점을 매우 과감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진보가 자세히 살펴보면 투석기에서 원자 폭탄으로의 진보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날 이것은 가려서는 안되는 진보의 한 측면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진보는 분명히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진보는 선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전례 없는 가능성인 악을 위한 무시무시한 가능성도 열어 놓습니다. 우리는 모두 진보가 잘못 인도되면 어떻게 끔찍한 악의 진보가 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었는지 목격하였습니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윤리 교육, 인간의 내적 성숙(에페 3,14; 2코린 4,16 참조)을 통한 진보와 상응하지 않는 다면, 이는 결코 진보가 아니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위협일 따름입니다.

23. '이성'과 '자유'라는 두 가지 중요한 주제에 대하여, 여기에서는 이와 관련된 몇가지 물음만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이성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이고, 비이성에 대한 이성의 승리가 그리스도인 삶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제 이성이 참다운 승리를 거둡니까? 이성이 하느님에게서 벗어날 때는 언제입니까? 언제 이성이 하느님에 대해 눈멀게 됩니까? 지배 이성과 행위 이성이 이성의 전부입니까? 진보가 참다운 진보가 되려면 인간의 도덕적 성숙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배 이성과 행위 이성에서도 이성이 신앙의 구원하는 힘과 선악의 분별을 받아들여 반드시 보완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만 참다운 인간 이성이 가능합니다. 이성은 의지에게 바른길을 알려 줄 수 있을 때에만 인간적인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는 이성이 자신을 넘어서서 바라볼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질적 역량과 정신의 분별력 부족 사이의 불균형으로 인간 조건은 인간 자신과 피조물에게 위협이 됩니다. 따라서 자유에 관하여 논의할 때에 인간의 자유는 언제나 여러 자유들의 조화를 요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유의 바탕과 목표인 이러한 조화는 공통되고 본질적인 기준에 따르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하느님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희망 없이 살게 됩니다. 현대의 발전들을 볼 때, 이 회칙의 시작 부분에 인용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페 2,12)은 매우 현실적이고 분명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없이 이루어진 '하느님의 나라', 그 인간만의 나라는 결국 칸트가 설명한대로 분명히 모든 것이 '전도된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목격하였고 늘 새롭게 목격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생각할 때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를 만나러 오시고 말씀하실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인간사에 들어오신다는 사실에는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성이 완전해지려면 신앙이 필요합니다. 이성과 신앙은 그 참된 본질과 사명을 성취하고자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6. 그리스도교의 희망의 참모습

24. 이제 다시 한 번 질문해 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희망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점증적 진보는 물질 영역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영역에서는 물질 구조에 대한 지식 증대와 더 앞서가는 발명에 따라 자연에 대한 더 큰 지배를 향한 진보가 분명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는 늘 새로운 것이기에 인간은 언제나 새롭게 판단해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윤리 의식과 윤리적 판단의 영역에서는 그러한 점증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러한 판단은 단순히 다른이들이 우리 대신 미리 해 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더이상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자유는 모든 사람, 모든 세대가 근본적인 판단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물론, 새로운 세대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전 인류의 도덕적 보화를 활용할 수 있지만, 이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결코 물질적 발명과 같은 방식으로 입증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도덕적 보화는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처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 대한 호소와 자유를 위한 가능성으로 존재합니다. 또한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가) 인간사의 올바른 상태, 세상의 도덕적 안녕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단순히 체계만으로는 결코 보장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체계들은 중요하고 또 필요하지만 인간의 자유를 몰아낼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공동체가 최상의 체계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공동체 질서를 자유롭게 따르도록 할 수 있는 신념이 그 공동체안에 살아 있을 때, 비로소 그 체계가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자유는 신념을 요구합니다. 신념은 저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공동체를 통하여 새롭게 획득하는 것입니다.

나) 인간은 언제나 자유롭고 또한 인간의 자유는 언제나 약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선의의 나라가 온전히 세워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영원히 지속될 더 나은 세상을 약속하는 사람은 누구든 거짓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자유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자유는 선을 위해서 끊임없이 성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에 대한 자유로운 동의는 결코 저절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결정적인 선의 조건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체계가 존재한다면 인간의 자유는 부인될 것이고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이는 결코 좋은 체계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25.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인간사의 바른 질서를 추구하는 이 힘든 일에 언제나 새롭게 뛰어드는 것은 모든 세대에 맡겨진 임무라는 것입니다. 이 임무는 간단히 끝날 일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모든 세대는 설득력 있는 자유와 선의 체계를 세우는 데 직접 기여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유와 선의 체계는 인간 자유의 올바른 행사를 위한 지침으로서 다음 세대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따라서 언제나 인간의 한계 속이기는 하지만, 미래를 위한 어떤 약속도 됩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체재는 도움을 주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외적인 체계만으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그의 영향을 받은 현대 사조를 따르는 이들의 오류는 인간이 과학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사람들은 과학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희망은 기만입니다. 과학은 더욱 인간다운 세상과 인류를 위하여 큰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 영역 밖에 있는 힘들을 통해 단련되지 않으면 과학은 인류와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우리는 근대 그리스도교가 세상을 점진적으로 체계화해 버린 과학의 성공 앞에서 개인과 개인의 구원에만 주로 관심을 쏟아 왔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는 인간 양성과 약하고 고통 받는 이에 대한 배려에서 훌륭한 일들을 계속 수행해 았음에도 그리스도교적 희망의 범위를 제한하고 자신의 임무의 위대함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26.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과학이 아닙니다. 인간은 사랑으로 구원받습니다. 이는 현세에도 해당됩니다. 살아가면서 커다란 사랑의 체험을 하는 바로 그때가 자기 인생에 새로운 의미를 주는 '구원'의 순간이 됩니다. 그러나 곧이어 그는 자신에게 베풀어진 그 사랑 자체로는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깨지기 쉬운 사랑입니다. 그러한 사랑은 죽음으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조건없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이러한 절대적인 사랑이 이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과 함께 존재할 때 비로소 인간은 개별적으로 어떠한 상황에 있든 '구원'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라고 하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멀리 있는 세상의 '제일 원인'(prima causa)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외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모든 사람이 그분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사항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27. 이러한 의미에서, 사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수많은 희망을 품을 수 있더라도 결국 삶 전체를 지탱하는 위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에페 2,12 참조). 어떤 절망에도 흔들리지 않는 위대하고 참된 희망은 오로지 하느님, 우리를 사항하시고 "끝까지" "다 이루어질"때까지 계속 사랑하시는 하느님뿐이십니다(요한 13,1; 19,30 참조). 사랑과 접촉한 사람은 누구나 '생명'이 참으로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세례 예식 때에 알게 된 , 신앙이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준다는 희망의 말씀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온전하고 어떠한 위협도 받지 않는 그 자체로 충만한 참된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오셨다고(요한 10,10 참조)말씀하시고 '생명'의 의이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진정한 의미에서 생명은 우리가 오로지 우리 안에만 간직하고 있거나 스스로의 힘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관계입니다. 온전한 생명은 그 원천이신 분과 맺는 관계입니다. 죽지 않으시고 생명 그 자체이시며 사랑 자체이신 분과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우리는 생명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28. 그렇다면 이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다시 구원의 개인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그리하여 다른 이들을 망각하고 간과하여 참된 희망이 아닌 나 자신만을 위한 희망속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예수님과 이루는 친교를 통하여 형성됩니다. 우리는 홀로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예수님과 친교에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이루는 관계는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 주신 분(1티모 2,6 참조)과 맺는 관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룬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모든 이를 위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의 존재방식이 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이를 위하여 살아가라고 당부합니다. 바로 예수님과 이루는 친교를 통해서만 우리는 참으로 다른 이를 위한, 모든 이를 위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위대한 교부인 막시무스 증거자(+662)의 말씀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막시무스는 먼저 그 무엇도 하느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보다 우선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곧바로 이를 매우 실질적으로 적용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돈을 모아 두지 않고, '하느님의 '방식대로 .....바로 그 방식대로 정의의 척도에 따라 이를 나누어 줍니다."19)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다른 이를 향한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에 동참하게 해줍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모든 소유와 물질에서 벗어나는 내적 자유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다른 이들에 대한 책임에서 드러납니다.20)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다른 이들에 대한 책임 사이의 이와 같은 연관성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삶 속에서 뚜렷하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리스도교로 회심한 다음, 몇몇 뜻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하느님 말씀과 영원한 것을 위하여 생애를 전부 바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교 가치들을 가지고 위대한 그리스 철학에 표현된 관상 생활의 이상을 실천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좋은 몫"(루카 10,42참조)을 선택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이 다른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항구 도시 히포에서 주일 미사에 참석한 그는 회중 가운데에서 주교의 부름으로 그 도시에서 사제품을 받으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그 당시를 되돌아보며 '고백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두었습니다. "허구한 내 죄, 내 비참에 몸이 떨려 마음속으로 헤아리기를 , 외딴 곳으로 도망이나 쳐볼까 하였으나, 당신께서는 내 힘을 돋우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신 그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2코린, 5,15 참조)"21)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그분의 '다른 이를 위한 활동'에 함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9. 이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에게 완전히 새로운 삶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흔들리는 이들은 바로잡아야 하고, 소심한 이들은 위로해야 하며, 약한 이들에게는 힘을 주어야 합니다.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잘못을 지적해주고, 간계한 이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무지한 이들은 가르쳐야 하고, 게으른 이들은 독려해야 하며, 따지기 좋아하는 이들은 다독여야 합니다. 교만한 자들이 자기 분수를 지키게 하고, 절망에 빠진 이들은 도와주어야 하고, 억눌린 이들은 해방시켜야 하며, 선한 이들은 격려해야 하고, 악한 이들은 참아 주어야 합니다.[휴!] 모두 사랑해야 합니다."22) "복음이 저를 두렵게 합니다."23) 복음은 건전한 두려움을 생기게 하여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지 않게 하고, 우리 공동의 희망을 전하도록 우리를 재촉합니다. 로마 제국이 당면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아우구스티노 생애의 마지막에 결국 실제로 파괴되어 버린 로마령 아프리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것이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뜻이 었습니다. 그는 희망을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신앙으로 얻은 그 희망으로 그는 자신의 내성적인 성향과 정반대로 그 도시를 건설하는 일에 단호히 온 힘을 다하여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임무의 결정적인 이유에 대하여 우리가 방금 살펴본 바로 그 '고백록' 제43장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절망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나약함은 많고 큽니다. 참으로 많고 크지만 당신의 약은 훨씬 많고 큽니다. 말씀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살지 않으셨다면 인간과는 동떨어지신 줄로 알아 우리의 희망이 끊어질 뻔하였습니다."24)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신의 희망에 힘입어 민중들과 자신의 도시 히포를 위하여 온전히 헌신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인 고상함을 포기한 채 민중을 위하여 단순한 방식으로 설교하고 활동하였습니다.

30. 지금까지의 성찰을 통해 드러난 것들에 대하여 요약해 봅시다. 인간은 날마다 자기 삶의 여러 시기에 크고 작은 다양한 희망을 지닙니다. 때로는 이 가운데 한 가지 희망으로 충족되어 더 이상의 다른 희망은 필요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젊을 때에는 크고 완전한 충족을 주는 사랑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경력에서 특정 위치에 올라가리라는 희망이나 앞으로 남은 삶에 매우 중요한 이러저러한 성공에 대한 희망이나 앞으로 남은 삶에 매우 중요한 이러저러한 성공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들이 실현되고 나면 이것이 실제로 전부가 아니었음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분명히 인간에게는 더 멀리 내다 볼수 있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오로지 무한한 어떤 것,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것보다 더한 어떤 것만이 인간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와 관련하여, 현대는 과학 지식과 과학에 기초한 정치 덕분에 실현가능한 것처럼 보인 완전한 세상의 거설에 대한 희망을 키워왔습니다. 그리하여 성경에 나타난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은 인간의 나라에 대한 희망, 현실적인 '하느님 나라'가 될 것 같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대치되었습니다. 이는 결국 인간에게 필요한 위대하고 현실적인 희망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사람들은 이 희망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 원대한 목적은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일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히 이 희망은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는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인지는 몰라도 나를 위한 희망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 없이 또한 다른 이들과 반목하면서 내가 행복할 수 없기에 '모든 사람을 위한'희망이 아무리 위대할 지라도, 개인적으로 나와 무관한 희망은 참다운 희망이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해졌습니다. 각 세대마다 인간의 일은 관련된 사람들의 자유로운 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 조건이나 체계 때문에 이 자유를 빼앗기게 되면, 궁극적으로 세상은 좋아질 수 없습니다. 자유 없는 세상은 결코 좋은 세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계속 노력할 필요는 있지만, 내일의 더 나은 세상이 우리 희망의 고유하고 충분한 본질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언제나 다음과 같은 물음이 생깁니다. 언제 '더 나은' 세상이 되는가? 무엇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가? 어떤 기준으로 세상의 좋음을 판단할 수 있는가? 이 '좋음'으로 이끄는 길은 무엇인가?

31.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는 우리를 날마다 전진하게 하는 크고 작은 희망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을 분명히 초월하는 위대한 희망 없이 이러한 희망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위대한 희망은 오로지 하느님뿐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온 우주를 감싸 안으시고, 우리가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선사하시고 베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선물이 주어진다는 것도 바로 희망에 속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신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을 지니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인류 전체를 "끝까지 사랑하시는"(요한 13,1) 하느님이 바로 희망의 토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미래에 자리하는 상상의 피안이 아닙니다. 그분의 나라는 그분께서 사랑받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에게 다다르는 모든 곳에 현존합니다. 그분의 사랑만이 본성상 불완전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날마다 꾸준히 깨어 있을 수 있게 합니다. 또한 그분의 사랑은 우리가 단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지만 마음 속 깊이 기다리는 것, 곧 '참으로' 삶다운 삶이 존재한다는 보증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희망을 실제로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자리들'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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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천주교에서의 기도 방법

* 새신자 입교시 이용하세요.

<천주교 기도>

1. 미사 말씀의 전래 성찬의 전래

2. 기도는 소리를 내어하는 염경기도와 묵상으로 하는 묵상기도가 있다.

* 염경기도 (성호경 기도 / 묵주 기도 - 환희, 빛, 고통, 영광의 신비)

* 묵상기도

가톨릭 통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가톨릭 통계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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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성인숫자로 세계4위입니다. 124위가 성인으로 등록된다면 우리는 3위가 되고, 1,2,3위가 비슷한 성인숫자를 갖게됩니다.

*우리나라의 가톨릭 신자는 500만명정도로 전체인구의 10%정도됩니다. 우리 가톨릭에서는 정확한 숫자파악을 위해 숫자를 인위적으로 불리지않고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증가중이고 매년 2.7%정도 증가합니다.(2007-2008년기준)
통계청에서 2008년 종교별 인구수를 조사하기 위해 각 종교마다 신자수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불교 = 3958만
개신교=1192만
천주교=488만
유교=1018만
해서 총 6656만이라는 인구수에 1.5배되는 숫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당국이 조사한 천주교숫자는 500만인데 왜 가톨릭은 숫자를 더 줄였냐고 물었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개신교까지 합한다면 우리나라 인구의 30%가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미국은 가톨릭신자만 22%가 넘습니다.(2008년통계) 우리나라 가톨릭 숫자가 많은편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1700년대에 가톨릭이 소개된 이후 매년 급격한 신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처음에 1만명에서 1800년대 초에는 3만까지 증가했습니다. 그동안 급격히 늘어 500만까지 증가했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교인의 씨앗입니다.

우리나라는 16개 교구로 나위어 있습니다. 교구마다 주교님이 계신겁니다.
서울,춘천,대전,인천,수원,원주,의정부,대구,부산,청주,마산,안동,광주,전주,제주,군종

신자의 남녀 성비비율도 적절합니다.

신부님의 총수는 3477명으로 30, 40대가 젤 많습니다.

추기경 = Cardinal
대주교 = ArchBishops
주교 = Bishops
몬시뇰 = Prelates of Honor
신부 = Priests
수도자 = Religious members

수도회는 크게 교황청설립 수도회와 교구설립 수도회로 나뉘고, 또 남녀수도회로도 나뉩니다.
교황청설립 여자수도회중 가장 큰 수도회는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로 서울과 대전에 1000명정도 수도자가있습니다. 영원한도움의 성모수녀회(545명),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485명), 까리따스수녀회(475명)등이 있습니다.
교구설립 여자수도회는 에수성심시녀회580명),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525명), 한국순교복자수녀회(505명), 성가소비녀회(462명) 등 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수도자가 줄고있는 추세입니다만, 한국은 아직까지 크게 줄고 있지는 않습니다.
남자 수도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입니다.

해외교포 가톨릭신자는 미국이 절대적 많아 절대다수를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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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http://www.cbck.or.kr/bbs/bbs_list.asp?board_id=K7200
2008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

개신교 신자가 질문하고 가톨릭 신자가 답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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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loadimage질문1:.

저는 개신교 신자입니다. 개신교 신자인 제가 집착하는 것중에 십자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라는
사도신경의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의 부활로 인해 우리의 끝없는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며
영생을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셨습니다. 이 부분은 어느 부분보다 가장 중요한 진리이지요.

이런 예수님을 상징하기에 개신교에서는 십자가만 남겨두었지만,
카톨릭에서는 아직도 예수님의 고난이라는 부가적인(너무 단순화했다면 죄송합니다)
끔찍한 모습을 넣어두고 있을까요? 이 부분은 왜 바꾸지 않는건가요?

Uploadimage답변:

우선 이렇게 개신교 신자와 성경에 대해, 또 서로간의 교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 기쁜 마음을 전합니다.
타종교를 이해하는데 우선해야 할 것은 서로 다른 종교에 대한 고유성을 인정하는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가톨릭 교회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 대해 어느 정도 배우신 후에 토론하는 것이
가톨릭 교회을 이해하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개신교의 성경과 교리로는 가톨릭 교회는이해할 수 없는 의문 투성이의 종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차후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 대해 공부해 보시길 권하며... 부족하나마 제가 아는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가톨릭'은 '카톨릭'이 아니고 '가톨릭'(catholic)이 정식 명칭입니다.
'일반적, 보편적’이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정통한 신앙을 전하는 교회이며, 또 사도로부터 이어온다는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와 구별되는 '로마 교황청 중심의 교회와
이에 속하는 신자를 뜻하는 공식 명칭'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 신자이며, 가톨릭(천주교)신자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가톨릭에서 중요시 하는 것이 칠성사 입니다.(7가지라고 해서)
일곱 가지 성사에는 세례성사, 견진성사,성체성사,고해성사, 병자성사,신품성사, 혼인성사등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톨릭의 가장 핵심은 미사인데 이는 예수님의 최후 만찬석상에서 하신 유언을 그대로
현재에도 그대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 하면 예수님은 구약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할려고 오셨숩니다.

구약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집트에서의 탈출입니다.
여기서 모세가 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다면 신약에서의 탈출은 죄에서의 탈출입니다.
이 역할을 예수님께서 담당하셨지요.. 이를 '빠스카'라고 부름니다. 그래서 미사를 '빠스카 제사'라고 합니다.
해방절이라고하지요, 신약에서는 죄에서의 해방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에 쓰디쓴 나물을 먹고 양을 잡아 먹으면서
이집트에서의 탈출 사건을 상기하며 그 이야기를 후손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양을 잡을 때에는 양에게 자신의 죄를 뒤집어 씌우고 피를 이마에 바리고
내죄를 이 양이 뒤집어 썻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내장을 전부 빼내어 불살라 버리는 번제물로 바치고
양은 양가죽을 분리해서 장대에 달아서 매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그래야 오랫동안 보관하고 먹을 수 있으니까요..
이때 양은 뼈가 하나도 손상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와같이 예수님도 십자가에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은채 매달려 계셨습니다.

탈출기12장 46절: "어느 집이든 한 집에서 먹어야 한다. 고기를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안 된다.
뼈를 부러뜨려서도 안 된다."

민수기 9장 12절: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되고, 뼈를 부러뜨려서도 안 된다.
파스카 축제의 모든 규정에 따라 그것을 지내야 한다."

이런 규정에 따라 예수님은 자신이 희생양이 되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
예수님은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았다 라는 것은 이와같이 구약에서 희생양이 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집어 쓰시고 죽으셨습니다.
구약의 희생양처럼 말입니다. 말로서가 아니라 진짜 희생양처럼 아무 말없이 끌려 가신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대로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았다 라는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요한복음 19장 36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 복음서에서 1장 29절:"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이것을 유언이라도 하듯이 최후의 만찬에서 유언을 남기십니다.
그리고 이는 예수님의 명령이십니다.

루카복음22장 14절~23장 20절
시간이 되자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그리고 잔을 받아 감사를 드리시고 나서 이르셨다. “ 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이것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구약에서 희생양으로 죽은 양들처럼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희생으로 죄를 뒤집어 쓰고 죽은 예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매일 기념하는 것이 가톨릭미사입니다.

Uploadimage질문2:

개종하기 싫은 이유중에 성모마리아에 대한 질문입니다.
왜 가톨릭은 성모마리아에 대해 많은 집착을 갖는지 의문입니다.

Uploadimage답변:

1.하느님은 인간의 허락없이 맘대로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만일 하느님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구원하신다면 우리는 그냥 맘대로 죄짓고 해도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구원 받은 사람은 재수가 좋아서 예수님이 점 찍듯이 구원해 준 걸까요?
누구는 구원 받고 누구는 아니고?? 그럼 너무 불공평한 게 아닌가요?

2.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지었을 때 바로 구원해 주었으면 인류가 죄도 안짓고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죄악도 별로 없었을텐데 왜 4000년을 기다렸다가 예수님이 오셨을까요?
성모님은 운이 좋아 예수님께 점 찍혀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역할은 구약에서 부터 예언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3.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잘 아시는 대로 성모님을 통해 그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일들을 성모님 뜻과는 상관없이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은 성모님의 "예" 라는 순명에 의해서 탄생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하와의 불순으로 하지 말라는 짓을 한 죄, 이와 대변되는 하느님께서 명하시는 일에
그저 순명하신 성모님은 대비됩니다. 이 성모님의 "예" 라는 순명이 그렇게 중요하냐면 그렇습니다.
하와가 불순명으로 죄가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예" 라는 순명으로 이 세상에 구원이 들어왔습니다.

성모님의 "예"는 단 한마디에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전 생애가 걸린 아주 중대한 사건입니다.
개신교인들은 예수님이 성모님의 "태" 만 빌려서 태어 났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모님은 허수아비였을까요? 그러다면 왜? 굳이 성모님이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성모님은 아무 느낌도 고통도 모르는 사람이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4.지금도 하느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로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그 길에 잘 순명하는 사람은 성모님처럼 승천할 것입니다.
성모님은 최초로 예수님을 영접하신 분이시니까요.

5. 성모님께서 하신 그 "예" 라고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즉 크리스찬이)되는 길입니다.
그 길은 험난합니다. 성경은 계속 증언합니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 "주여, 주여, 한다고 다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처럼 성모님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6. 그리고 우리는 자기 멋대로 살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 가장 예수님의 말씀이 충실하게 산 사람이 누구일까요?
인간이 과연 예수님의 말씀에 "예"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7. 하느님의 구원은 우리 인간의 뜻과 상관없이 하느님 맘대로 구원하신 걸까요? 아니면
죄인인 우리 인간의 의지와 뜻대로 하신 걸까요? 이게 답인 것 같습니다.

Uploadimage질문3

개종을 해야 하나요?
개신교가 정경내용만 제외시켰다는 것만 이상하게 생각되어지지 돌아가는 시스템은
다른 나라에서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신교가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을 키워나가기 좋다고 생각되어집니다

Uploadimage답변:

가톨릭 신자분들 중에 저와 의견이 다른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개신교 신자들을 통해 배우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십일조에 대한 신자들의 열성과 선교에 있어서의 적극성 정도입니다.

그러나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삶에서의 실천이라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은 예수님믿고 구원받았다고 "아멘"소리 내고 하는 것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기초적인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어린 신앙에 묶여 있어야 하나요? 예수님의 11 제자는 모두 순교했습니다.
스테파노까지 12명이군요.. 그리고 그 외에도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몸으로 신앙을 증거했습니다.
믿음은 증거를 기본으로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온 말씀 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에 대해 엄청난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는 아예 누가 나의 이웃인지 까지 설정해 주며 마태복음 25장 최후의 심판에서는
가장 미소한 자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라며 영원히 불타는 곳으로 가라고까지 나옵니다.

가톨릭 교회에는 이렇게 성인처럼 사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단지 드러내지 않고 희생과 봉사로 사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겉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입니다.
세상의 칭찬보다는 하늘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적인 것들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살아가시는 신부님, 수녀님들이 좋은 보기입니다.
물론 평신도 중에서도 수도자들 못지않게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며 사시는 분은 많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사셨던 성인들 중에 '마더 데레사. 콜베신부님,
우리나라의 김대건 신부님,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친 무명 순교자들..등등
또 현재에도 많은 신부님 수녀님들, 신자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삶을 살고 계십니다.

Uploadimage질문4.

다른나라의 개신교는 외경(제2의정경)을 부록처럼 넣어놨다는데 한국은 왜 그렇게 수정하지 않나요?

Uploadimage 답변;

다른 나라라도 모든 나라는 아니고요..
일부 개신교에서 자신들이 믿는 성경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문제입니다.
개신교는 그 교파가 많아서요,, 교파통일을 이루려는 교파에서는 외경을 부록으로 뿐 만아니라
아예 성경에 넣어서 읽는 곳도 있구요.. 어떤 곳은 더 심하게 자기 성경 아니면 모두 가짜라고 하는 데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 다른 종교의 고유성을 존중해주는 그런 참 신앙의 모습이 아쉽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성경을 계시된 교의의 원천이며 신앙의 원리를 가르치는 근본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과 성전을 통하여 신앙을 이어받은 교회는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정의하며
성경들의 정경(Canon)을 결정하였습니다.

결국 성경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과 인류에 대한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고,
이를 당신의 감도(感導)를 받은 자로 하여금 기록하게 한 책입니다.
이 책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행적을 인간의 안목으로 해석하고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기본적인 규범과 표준을 내포하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가톨릭에서는 73권(구약 46권,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66권으로 하고, 나머지 7권은 외경(外經)이라 하여,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설명 또는 해석은 아무나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어떤 일정한 규칙을 따라 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성경 해석 방법론입니다. 이 방법론은 성경 해석의 필요성 때문에 생긴 것이며,
이에 대한 고찰은 방법론의 역사 서술과 방법론 자체에 대한 분석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후,종교간 일치 운동에 힘입어 1968년 개신교와 가톨릭의 양측간 공동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8년 후 1977년 부활절에 공동 번역 신구약 성경을 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측 일부에서는 교리적, 해석학적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며 통렬히 비난했고,
가톨릭측에서도 외경이라는 명칭을 제 2경전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지요.
비록 첫 의도대로의 결과를 보지는 못했지만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상 교회 일치 운동이 거둔 큰 성과이며,
이해하기 쉬운 현대문의 성서를 보급했다는 데에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충분했는지요..하느님 사랑안에 항상 기쁨이 넘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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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통계연감 (세계,한국)

파일첨부 [보도자료]교황청 「교회 통계 연감」(2005) 발행.hwp (1.0M), Down : 21, 2007-05-28 14:43:42

배포일
2007년 5월 28일(월)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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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팀 이영식 팀장
☎ 02-460-7681 / media [at] cbck [dot] or [dot]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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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교회 통계 연감」(2005) 발행

□ 교황청 국무원 통계처는 최신 「교회 통계 연감」(Statistical Yearbook of the Church)(2005)을 발행하였다(2005년 12월 31일 기준).

□ 신자 수
▲세례 받은 가톨릭 신자 총수는 1,114,966,000명으로 세계 총인구 6,463,234,000명(2005년 6월 30일 기준, UN 「인구 연감」)의 17.3%를 차지한다.
▲대륙별로 인구에 대한 신자 비율을 보면, 아메리카가 62.5%(555,584,000명)로 가장 높고, 유럽 39.9%(280,642,000명), 오세아니아 26.3%(8,698,000명), 아프리카 17.1%(153,470,000명), 아시아 3.0%(116,572,000명) 순이다.
▲세계에서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브라질(155,628,000명)이며, 그 뒤로 멕시코(95,525,000명), 필리핀(69,308,000명), 미국(66,893,000명), 이탈리아(56,383,000명), 프랑스(46,520,000명) 순이다.

□ 교구와 본당
교구(성직 자치구, 자치 수도원구, 자치 선교구 포함) 수는 총 2,915개(라틴 예법 2,701개, 동방 예법 214개)이며, 사목구 수는 433,247개이다. 사목구는 본당 사목구 217,616개(50.2%), 공소 123,187개(28.4%), 기타 92,444개(21.3%)로 이루어져 있으며, 교구당 평균 본당 사목구 수는 149개이다. 본당 사목구 가운데 사제가 사목하는 곳은 213,060개이다.

□ 사도직 인력 현황
교회의 사도직 인력 현황을 보면, 주교 4,841명, 신부 406,411명(교구 신부 269,762명, 수도회 신부 136,649명), 종신 부제 33,391명, 수사 54,708명, 수녀 760,529명, 재속회원 28,780명, 평신도 선교사 200,022명, 교리교사 2,974,703명이다.

□ 사제 양성 기관
사제 양성 기관은 총 6,523개로, 그 가운데 교구 사제 양성 기관은 3,118개, 수도 사제 양성 기관은 3,405개이다. 철학·신학 과정에 있는 사제 지망자 수는 114,439명으로, 이를 대륙별로 보면 아메리카 36,891명, 아시아 30,066명, 아프리카 23,580명, 오세아니아 944명, 유럽 22,958명이다.

□ 교육 기관과 학생 수
교육 기관과 소속 학(원)생 수를 살펴보면, 유치원이 64,279개에 6,166,698명, 초등학교가 91,480개에 28,084,076명, 중고등학교가 39,096개에 16,232,070명이다.

□ 사회 복지 기관
사회 복지 기관은 114,738개로, 여기에는 병원, 장애인 시설, 고아원, 탁아소, 혼인 상담소, 사회교육 또는 재교육 시설 등이 포함된다.

□ 성사 생활
▲2005년의 영세자 수는 17,002,140명으로, 이 가운데 만 7세 미만의 유아 영세자가 14,447,727명(85.0%), 그 이상의 어른 영세자가 2,554,413명(15.0%)이다.
▲교회 예식으로 혼인한 사람은 3,078,211명인데, 이 가운데서 261,948명(8.5%)은 혼종혼(混宗婚)이다.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은 8,877,862명, 첫영성체자는 11,610,69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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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 통계」(2006) 발행

□ 한국 천주교회는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천주교 신자들의 현황을 파악하여 사목 정책 수립에 반영하기 위하여, 1907년부터 매년 연말에 보고서 형식으로 「한국 천주교회 통계」(이하 통계)를 발행한다. 금년에도 2007년 5월 25일자로 「한국 천주교회 통계」(2006)를 발행하였다.

□ 이 통계는 교구를 통하여 사목 문서를 기초로 한 본당 자료를 수집하고(신자와 성사 관련 부분), 그 외 자료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처에서 해당 기관으로부터 직접 수집하여 집계하고 정리하였다. 통계에서 모든 자료는 별도의 명시가 없으면 2006년 12월 31일 현재를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 「한국 천주교회 통계」(2006)는 주교회의 홈페이지(www.cbck.or.kr) [문헌자료실/가톨릭자료/가톨릭교회 통계]에서 볼 수 있다(PDF 파일).

※첨 부: 「한국 천주교회 통계」(2006)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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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 통계」(2006) 분석

1. 복음화 동향

「통계」에 따르면, 2006년 12월 31일 현재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는 4,768,242명으로 총인구 49,624,269명(행정자치부 집계 주민등록상 인구수)의 9.6%를 차지하고, 전년도에 비해 2.2% 성장하였다.
신자수는 최근 10년 동안 꾸준히 증가해 오고 있다.(그림 1) 그러나 10년 동안 전년도 대비 신자 증감율은, 1996년 3.2%에서 2001년까지 3%대를 유지하였으나, 2002년 2.8%, 2003년 1.9%로 하락하였다. 2004년 2.4%를 회복한 뒤 2006년까지 2%대를 유지하고 있다.(그림 1, 표 1)

<그림 1>

교구별로 살펴보면 수원교구와(3.5%) 원주교구(3.0%)가 비교적 증가률이 높게 나타났으며 안동교구, 춘천교구, 광주대교구, 마산교구 등이 1.5% 이하로 증가률이 낮았고 군종교구는 11.1% 감소하였다.

<표 1>

2006년 우리나라 신자 성별 비율은 남성이 41.5%이고 여성은 58.5%로 나타났다.(그림 2). 2006년 전국 인구의 남녀 성비가 남성 50.2%, 여성 49.8%인 점을 감안하면, 신자의 남녀 성비 불균형의 폭이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다.

<그림 2>

전년 대비 남자 신자 증가율은 1.4%, 여자 신자 증가율은 2.2% 증가하였다. 남녀 신자 증가율이 차이가 생기는 것은 군종교구의 사목 대상 신자의 데이터 정리로 인해 남자 신자수가 감소하고 여자 신자수가 증가한 것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군종교구를 제외한 다른 교구들의 신자 증가율은 남자가 2.3%, 여자가 2.1%로 나타나 전체 신자 증가율과 거의 같게 나타난다.
연령별 신자 구성은 40대 연령의 신자가 전체 신자 대비 20.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그림 3).

<그림 3>

신자 전출율은 전체 신자수의 7.4%였다. 전출 신자는 예년과 같이 군종교구가 교구 신자 총수의 46.5%로 가장 높고, 수원교구가 10.9%, 의정부교구와 대전교구 그리고 대구대교구가 8~9%로 그 뒤를 이었다. 전출율이 가장 낮은 교구는 안동교구로 2.2% 수준이었다. 반면 전체 전입률은 신자 총수의 6.6%였다. 전입률은 수원교구와 의정부교구가 각각 11.7%,와 11.2%로 비교적 높았고 안동교구가 1.4%로 가장 낮았다. 타교구 전출율은 전체 신자수 대비 2.4%이다. 타교구 전출율은 군종교구가 43.9%로 가장 높았다. 군종교구를 제외하면 의정부교구가 3.1%로 타교구에 비해 비교적 높은 편이다. 타교구 전출율이 낮은 교구는 대구대교구와 광주대교구 그리고 제주교구로 0.9% 수준이다. 타교구 전입률은 의정부교구가 5.1%로 비교적 높은 편이며, 대구대교구와 광주대교구, 전주교구 등이 1% 미만으로 비교적 낮았다(표 2).

<표 2>

대체로 신자들의 전출입률은 군종교구를 제외하면 수원교구과 의정부교구가 비교적 높은 편이며 안동교구와 마산교구가 비교적 낮은 편이다.

2. 사목 인력 동향

2006년 말 현재 성직자 총수는 4,006명으로 전년도(3,867명)에 비해 139명이 증가하여 4,000명을 넘어섰다. 한국인 성직자는 3,820명이며, 외국인 성직자는 186명이다. 외국인 성직자는 대부분 선교회와 수도회에 속해 있다.
교구 소속 신부가 3,276명, 선교 수도 단체 소속 신부가 697명이다. 사제수는 1960년 이후 2006년까지 연 평균 4.8%의 증가율을 보였다. 1960년 이후 그 증가율을 10년 단위로 보면, 1960년대 평균 6.7%, 1970년대에 3.1%, 1980년대에 3.5%, 1990년대에 6.2% 그리고 2000년 이후에는 연 평균 4.5%의 증가율을 보였다(표 3).

<표 3>

교구 소속 성직자의 사목 유형별 분포를 보면, 2006년도의 전체 교구 소속 성직자 3,276명 가운데 본당사목 종사자는 1,844명(56.3%), 특수사목 종사자는 697명(21.3%), 각 교구에서 파견된 군종신부는 82명(2.5%)이었으며, 해외 교포 사목과 해외 선교 종사자는 185명(5.6%) 이었다. 교구 소속 전체 사제들은 10명 중 약 6명이 본당 사목에, 약 2명 정도가 특수사목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4).

<그림 4>

봉헌 생활회 소속 성직자는 2005년에 비해 4.8% 증가하였으며 최근 10년 동안 연 평균 5.4%의 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대신학교는 7개로 변동이 없으나 대신학생은 1,380명으로 전년도 1,387명과 비교해하여 7명이 감소하였고, 최근 5년 동안에는 연 평균 3.0%가 감소하였다. 1960년 이후 신학생 동향을 보면, 연 평균 증가율은 1980년대가 12.4%로 가장 높았고 1990년대에 와서는 0.4%, 2000년 이후에는 -1.6%로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표 4).

<표 4>

남자 수도자는 2006년 말 현재 1,444명으로, 2005년 말의 1,407명과 비교하면 37명이 증가하였다. 또한 10년 전인 1996년의 1,095명과 비교하면 10년 동안 349명이 증가하여, 연 평균 4.1%의 증가율을 기록하였다. 여자 수도자는 2006년 말 현재 9,770명으로 2005년 말의 9,676명과 비교하면 94명이 증가하였다. 1996년 이후 10년 동안 여자 수도자는 연 평균 2.8% 증가하였다.

3. 성사 사목 동향

2006년 영세자는 147,747명으로 전년도(2005년)의 148,175명과 비교할 때 428명이 감소하였다. 남자가 76,734명, 여자가 71,013명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5,721명이 많았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로 보는 군종교구를 제외한 나머지 교구들의 영세자 성비는 남자 41.8% 여자 58.2%로 여자가 더 높은 편이다(표 5).

<표 5>

2006년 한 해의 혼인(성사혼과 관면혼) 건수 합계는 27,848건(성사혼 11,306건, 관면혼 16,542건)으로 집계되었고 이 가운데 관면혼이 59.4%로 나타났다. 혼인건수는 2005년도의 25,672건에 비하여 2,176건이 증가하였다.

견진자는 1998년(79,405명) 이후 2004년까지 계속 감소해 오다 2005년에는 67,365명, 2006년에는 73,243명으로 전년도 비해서 8.7%가 증가하였다(표 6).

<표 6>

한편 2006년 병자성사를 받은 사람은 15,824명으로 나타났다.
2006년의 영성체자는 연인원 87,034,880명이었다. 반면 고해성사자는 4,494,020명이었다.
따라서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은 지난 한 해 동안 고해성사를 한번 보고 영성체는 평균 19회 정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1986년에는 영성체자 총수가 37,352,496명, 고해성사자 수는 3,336,732명으로 고해성사를 한 번 보고 영성체에는 약 11번 참여하였다. 1996년에는 영성체에 64,488,774명이 참여하였고 여기에 고해성사는 4,607,250명이 참여하여 고해성사 한 번에 영성체에 약 14회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과거에 비해 고해성사를 보는 횟수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표 7).

<표 7>

2006년도에 부활과 성탄 판공성사를 받은 신자는 각각 1,084,552명과 1,117,222명으로 판공성사 대상자의 23.3%(성탄 판공 24.0%)였다.

2006년 주일 미사 평균 참석자 수는 1,240,974명으로 2005년의 1,254,572명에 비하여 13,598명이 감소하였다. 이는 신자 총수의 26.0%에 해당하는 것으로 신자 4명 가운데 1명 정도가 매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셈이다. 신자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 주일 미사 참석률은 지난 10년 동안(1996년 30.4%) 계속 낮아지고 있다 (그림 5).

<그림 5>

4. 사목구 현황

2006년 본당 수는 1,476개이고 공소는 1,089개로 나타났다. 2005년보다 본당은 29개가 증가하였고, 공소는 26개가 감소하였다. 본당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공소는 1969년 1,906개를 정점으로 계속 감소 추세에 있다. 본당 사목구와 본당 사목자 그리고 신자의 관계를 보면, 2006년 말 현재 한 본당에 전국 평균 3,231명의 신자가 속해 있는 것으로, 2005년에 비해 약간(6명) 증가하였으며 신부 1인당 대비 평균 신자수는 1,200명인 것으로 나타나 2005년 1,216명에 비하여 약간 감소하였다.

5. 수도회 현황

교황청 설립 수도회는 남자 수도회 28개에 973명의 회원이, 여자 수도회는 68개 수도회에 5,877명의 회원이 있다. 교구 설립 수도회는 남자 수도회가 9개 수도회에 293명, 여자 수도회는 31개 수도회에 3,821명이다. 사도생활단은 남자 9개 수도단체에 178명, 여자 4개 단체에 42명이 있으며, 재속회는 여자 3개 재속회에 30명의 회원이 있다.

6. 해외 교포 사목 현황

한편 해외 교포 사목에 193명(한국인 172명, 외국인 21명)이 본당 163개와 공소 162개에서 교포 사목을 하고 있으며 해외교포신자수는 150,421명으로 조사되었다.

방문 신부님/수녀님/수도자 소개

샌디에고를 방문하셨던 신부님/수녀님/수도자 소개입니다.

강희성 펠릭스 신부님

강희성 펠릭스 신부님
청주교구청 사무처장
영명축일 : 5. 19
서품일 : 84. 5. 5

2009년 6/21 안식년에 우리 샌디에고 방문해 주셨고 주일미사 강론을해 주셨습니다. '펠릭스'는 영어로 Happy란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행복한 신부님.

P.S 제가 사진기를 안가져가서 웹에서 사진을 찾았습니다. 잘 나온 사진있으신 분은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링크 : 2009년 6월 21일 연중 제12주일 강론 - 강희성 신부님

김 도미니꼬 작은형제회 신부님

러시아에서 사목하시는 김 도미니꼬 작은형제회 신부님

2009년 6월 28일 주일에 샌디에고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주일강론까지 해주셨습니다.

신부님소식은 다음 카페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CatholicInRussia



김기수 프란치스코 신부님

작은 형제회 소속의 김기수 프란치스코 신부님

2009년 6월 12일에 성모회 피정을 지도해 주셨고 작년에도 방문하셨었습니다. 우리 새성전 십자가도 달아주셨다고 합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해주신 환경관련된 사이트 이름은 http://www.emcenter.or.kr/ 입니다.

김대석 바오로, 김선영 마태오, 이범수 요셉 신부님

2009년 5월말에 방문해 주셨습니다.

김대석 바오로 신부님

김선영 마태오 신부님

이범수 요셉 신부님

김유철 필립보 신부님

김유철 필립보 신부님

7/12/2009년 주일미사 강론을 해주셨습니다. 우리 반신부님 신학생때 교수님이셨다는 특별한 인연도 있으십니다.

[오디오강론] - 2009년 7월 12일 연중 제15주일 강론

마리오 엘리야 신부님

방문 신부님은 아니고 우리 골롬바 성당 본당신부님이신 마리오 엘리야 신부님.

배광하 치리아꼬 신부님

춘천교구 겟세마니 피정의 집 원장신부로 사목중.
평화방송 강의
카톨릭신문 복음생각 연재 - [링크]
링크 : 이 세상이 천국입니다. -배광하 치리아꼬 신부님-
2009년 9월 6일 가톨릭신문 - [가톨릭 인터뷰] ‘겟세마니 피정의 집’ 신축 완공한 배광하 신부

겟세마니 피정의 집
252-813 강원도 인재군 남면 부평리 3반 565
후원계좌 : (농협) 325026-51-100761
전화번호 : 033)461-4243
Email : gsmnph [at] hanmail [dot] net
카페 : http://cafe.daum.net/gsmnph

아직까지 샌디에고에는 방문하지 않으셨지만 2009년 6/4 -6/7까지 LA에서 열리는 생활속의 성령 세미나 지도해 주셨습니다.



브롬 주교님(Bishop Robert H. Brom)

샌디에고 교구 주교님 이신 로버트 브롬(Robert H. Brom)

Ordained: December 18, 1963
Appointed Bishop of Duluth, Minnesota: March 25, 1983
Consecrated and installed at Duluth: May 23, 1983
Appointed Coadjutor Bishop of San Diego: April 22, 1989
Succeeded as Fourth Bishop of San Diego: July 10, 1990

샌디에고 한인성당에 2009년 10월 4일에 방문하셨고, 반신부님께 감사패 증정과 반신부님과 안신부님 이취임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http://www.diocese-sdiego.org/BISHOP.HTM



안성철 마조리노 신부님

성바오로 수도회소속.
1988년 수원 가톨릭대를 입학
1991년 성바오로 수도회에 입회
2001년 서품

2008년 8월, 2009년 에도 한번 샌디에고를 방문하셔서 감동적인 강론을 해주셨던 안성철 마조리노 신부님.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실때 눈물이 쏟아지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우리 본당에서 찍은 시진을 찾고 있습니다.)



2009년 6월 28일 카톨릭신문 특별좌담 - 바오로해가 남긴것

2008년 11월 30일 가톨릭신문 - 기획/ 대림, 그 기다림의 미학 - '기다림'에 대하여

안성철 마조리노 신부님 - 2008년 8월 17일 연중 제20주일 강론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와 '하느님께 감사하는 생활'에 대한 글

2009년 8월 16일 가톨릭신문 - 신임 성바오로 수도회 한국 준관구장 안성철 신부

왕영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

왕영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께서 샌디애고에 방문하시어 오늘 미사에 참여하십니다. 신부님은 부산교구 신부님으로 미주 성령운동을 18년간 주관하시다 귀국하시어 사목하시다가 4년전에 은퇴하시고 새 예루살렘 공동체 원장님으로 계십니다. 저희 본당을 찾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문주 프란치스코 신부님

서울교구 요셉의원 원장 이문주 프란치스코 신부님

2009년 6월 28일 주일에 방문해 주셨습니다.

아래 첨부파일을 보시면, 2008년 6월 요셉의원 사보가 있습니다. 이문주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요셉의원의 일을 맡으며'란 글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고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의 삶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PDF 파일이 좀 크지만, 화질이 좋게 깔끔하게 만든 파일입니다.



이상재 가스톨 신부님

천의 얼굴을 가지신,
재밌는 강론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계신
미주 카톨릭신문 사장 이상재 가스톨 신부님


링크:"하느님 사랑의 정신 글로 전해요"…'미주 가톨릭 문우회' 이상재 새지도신부 맞아
링크:6/5 샌디에고 한인성당 전체피정앨범
링크: 6/5 피정 다시듣기

전달수 안토니오 신부님

전달수 안토니오 신부님
성 마리아 엘리사벳 한인성당 주임신부
남가주사제협의회 회장

저서
[로마에서 온 편지] "성인 신부가 따로 없다"


최용훈 요셉 신부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최용훈 신부님께서 10/3/2010에 샌디에고 한인성당을 방문해주셔서 주일미사를 집전해주셨습니다. 골롬반 외방 선교회의 막내로 소개하셨고, 우리 명신부님이 제일 어르신이라 감외가 새롭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10/3/2010 앨범링크
링크 : 용훈이와 선교여행을 떠나~~봅시다

태진우 안드레아 신부님(투산)

2009년 6/4 - 6/7 LA에서 생확속의 성령세미나에 참석하셔서 미사도 같이 드려주시고, 안수도 주셨습니다.

투산(Tucsan) 한인 성당
홈페이지 : http://www.catholictucson.co.cc/
주소 :
Immaculate Heart Noritiate
3820 N. Sabino Canyon
Tucson, AZ, 85750

2008/5/15 기사
투산 한인본당 주임에 태진우 신부.
아리조나주 투산 한인본당에 인천교구 태진우(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했다. 태진우 신부는 2005년 12월 8일 사제품을 받고 부평1동, 주안8동 보좌를 역임했다. 전임 노형호 신부는 소속교구인 인천교구에서 휴양을 하게 됐다.



차동엽 신부님 미니홈피

차동엽 신부

출생 - 1958년 5월 31일
데뷔작 - 소공동체 기초 교실
홈페이지 - http://www.cyworld.com/samok09
이메일 - norbert_cha [at] naver [dot] 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rbert_cha

동영상 강좌: 바이블행복코드

차동엽 신부님의 바이블 행복코드 강의자료입니다. 이 강의자료는 고화질(700K)의 동영상 강좌입니다. 인터넷 연결속도에 따라 끊기는 현상(Buffering)이 생길 수도 있음을 양해해주십시요.

아래의 목록에서 시청하시고자하는 동영상 강의목록을 선택하여 주십시요.

[대강연회]바이블행복코드 1강 약속의 실현

[대강연회]바이블행복코드 2강 만사형통의 비밀

[대강연회]바이블행복코드 3강 우리를 위한 굿뉴스

[대강연회]바이블행복코드 4강 내안에 살아있는 성령

동영상 - 밭에 묻힌 보물 18강

동영상 자료실 링크 확인
http://kccosd.org/node/3034

동영상 - 통하는 기도

동영상 링크 자료실 참조
http://kccosd.org/node/3036

동영상 -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

동영상 자료실 참조
http://kccosd.org/node/3035

주일복음묵상

주일복음묵상

1. 소개

차동엽신부님께서 매주 복음말씀을 읽고 여러가지 다각도로 분석 정리해 주는 강의스타일의 출판물입니다. 쉬는 교우에게 드려도 좋고, 힘들어 하는 사람이 들으면 저절로 힘이납니다. 성경이 얼마나 good news인가를 몇개만 들어봐도 알 수 있는 훌륭한 역작입니다.

2. 신청
한국전화번호로 신청을 할 수 있는데 email을 보내도 됩니다.
frcha [at] naver [dot] com

받는 사람주소와 연락처

1년 선납금이
해외발송의 경우
Tape는 180,000원 CD는 240,000원입니다.

국내발송의 경우
Tape는 100,000원 CD는 150,000원입니다.

농협 241083-51-150325
사단법인가톨릭문화연구소

미국에서 송금할 경우 참조
National Agricultural Cooperative Federation
농협영문주소 : 75,1-Ka, Chungjeong-Ro, Jung-Ku, Seoul, Korea
swift code : NACFKRSEXXX

차동엽 신부님 책(저서)

저서

뿌리 깊은 희망
출판사 : 위즈앤비즈
발행일 : 2009-02-28

통하는 기도
출판사 : 위즈앤비즈(동이)
발행일 : 2008-10-16

Blessing of the Rainbow
출판사 : 위즈앤비즈(동이)
발행일 : 2008-04-30

맥으로 읽는 성경 세트
출판사 : 위즈앤비즈
발행일 : 2008-04-21

검증 안된 신학의 가설 퍼뜨리는 건 `양심의 룰` 위반

도올교수의 기독교에 대한 견해를 반박하는 인터뷰입니다. 이론 논쟁을 통해서 배울 것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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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안된 신학의 가설 퍼뜨리는 건 `양심의 룰` 위반


사진 양영석 인턴기자
"신약이 나왔다고 구약이 효력을 잃는 것은 아니죠."

차동엽(49.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겸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사진) 신부가 도올 김용옥(59) 세명대 석좌교수의 기독교 비판에 대해 전면적인 반박에 나섰다.

논란이 됐던 '구약폐기론'에 대해 그는 "구약은 돌판에 새겨진 법과 관계가 있고, 신약은 사람의 마음에 새겨지는 법과 관계가 있다"고 했다. 율법이 사람들의 눈 앞에 있으면 거부감이 들지만, 마음속에 있으면 달라진다는 것이다.

차 신부는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형식상 분명한 단절성이 있으면서, 동시에 내용상 끊을 수 없는 연속성이 있다. 그래서 구약이 효력을 잃는 것이 아니라, 신약이 나옴에 따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용옥 교수의 기독교 비판에 반박하는 차 신부와의 일문일답.

(김 교수는 저서에서 '하나님'으로 표기했으나, 가톨릭에선 '하느님'으로 부르기에 기사에선 혼용합니다.)

-김용옥 교수의 '하나님 말씀=로고스(이성, Logos)'의 주장을 어떻게 보나?

"이런 주장은 예수를 추상화시키고 있다. 이성으로서의 로고스는 그리스 철학의 개념이다. 요한복음에 사용된 로고스의 의미는 '이성'이 아니라 구약에서도 썼던 '지혜'다. 히브리어로 '호크마(Hokmah)'이고, 그리스어로 '소피아(Sophia)'다. 요한복음에선 이를 '로고스'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지혜'는 '이성'과 어떻게 다른가?

"성서에도 언급돼 있다. '하느님의 지혜는 인간에게 지혜의 마음을 주고 자연을 다스리며 온 세상을 창조하였다(예레 10,12)''하느님의 지혜는 사람이 알지 못하고 오직 하느님만이 아신다.(욥 28,12-13.24)' 다시 말해 순수 이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할 때 하느님의 '지혜'가 창조에 참여한 것이다.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그 '지혜'를 뜻한다."

-'회개'의 의미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김 교수는 "'회개'의 원어는 '메타노이아(Metanoia)'다. '마음의 방향을 튼다'는 뜻이다. 그래서 '회개'가 아닌 '회심'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고 했다.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성서적으로 봐도 '회심'과 '회개'는 크게 충돌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님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히브리어를 썼다. 그러나 당시 유행하던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성서는 그리스어로 씌어졌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은 히브리어, 성서는 그리스어다. 그 사이에 언어의 전환 과정이 있다. 그리스어인 '메타노이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슈브(Shub)'다. 여기에는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마음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돌린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보면 '회개'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

-김 교수는 "'요한복음 강해'와 '기독교성서의 이해', 두 권의 책에서 나는 가톨릭을 매우 긍정적으로 봤다. 가톨릭은 결코 내 과녘이 아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물지 않는 교회가 많은 개신교"라고 했다. 어떻게 보나.

"개신교계의 문제는 교의가 잘못돼서 자행되는 게 아니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는 개신교를 비판하면서 성경 해석의 방법론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 뿌리를 따라가면 가톨릭의 신학을 함께 건드린 셈이다. 이 때문에 가톨릭은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많은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이 있다. 김 교수도 "로마 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인류 역사에서 기독교가 너무나 많은 증오를 가르쳤다. 수많은 전쟁이 종교로 인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사실이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많은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기독교 전체가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 안의 일부 지도자들이 죄와 실수를 범했다는 말이다. 이에 교회는 수없이 회개하면서 쇄신해 왔다. 역사의 종말까지 이 과정은 지속될 것이다. 김 교수가 범한 실수는 한 면만 보고 침소봉대한다는 사실이다. 어둠과 빛을 동시에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양심가다."

-김 교수는 성령의 자리에 들기 위해선 이성의 극한까지 가야 한다고 한다. 이성의 벼랑 끝까지 가본 자만이 안다고 한다. 어떻게 보는가.

"이성의 극한까지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제한돼 있다. 철저하게 철학적 사유를 하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그건 소수의 아주 진지한 철학자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대중에게 이걸 요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예수님이 천국을 선포할 때 논쟁을 일삼는 사람들과 대화하길 싫어했다. 예수님은 논리적이 아니라, 선험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을 썼다. 가령 '하느님이 계시다'라고 했지, 그에 대한 논리적인 접근법을 보이진 않았다. 예수님은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21)"라고 했다. 이성적 접근이 가상하긴 하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래서 철학적인 소수의 논리에 그칠 뿐이다. 예수님은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김 교수는 "요한복음 강해를 했다고 내가 대단한 신학자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건강한 논의를 위한 자극제를 던질 뿐이다"고 한다. 실제 그렇게 받아들일 부분이 있는가?

"먼저 전문가 집단 내에서 논의가 됐어야 했다. 검증되지 않은 의견을 방송사의 인터넷 강의란 대중 창구를 통해 일방통행으로 쏟아내는 것은 룰을 위반한 것이다. 학자의 룰, 전문가의 룰 말이다. 가설을 가지고 대중 앞에 나서서는 안 된다. 그건 위험한 일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할 때 이런 논의는 이미 있었다. 한국 신학계가 너무 상식적인 것들을 신도들에게 안 가르쳐 준다"고 김 교수는 비판한다. 수긍할 수 있나?

"이런 주장이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단에선 충분히 논의될 수 있다. 커리큘럼의 일환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 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아직 토론 과정에 있는 커리큘럼을 대중에게 유포한다는 점이다. 대중의 이해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논의의 수위를 조절할 줄 알았던 예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종교간 소통은 경전 해석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우주관과 세계관이 전혀 다른 여러 종교의 경전들을 비교 해석한다는 것은 아카데믹한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제한된 시도다. 거기에는 많은 한계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서구 사회에선 역사적 인간으로 예수를 보기도 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예수를 보기도 한다. 김 교수는 "한국 기독교계는 예수의 권위와 신성을 건드릴 수 있는 어떠한 접근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한국 기독교계는 절름발이인 셈"이라고 했다.

"인정한다. 역사비판학적인 관점으로 성서에 접근한다고 해서 성서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의 예수를 통해 예수님의 존재를 더욱 구체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다만 역사비판학적인 접근법에는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한국 기독교계에 이런 식의 접근법이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가령 '한 글자도 비판하지 말라'는 식의 문자주의적 입장은 한국적 기독교 현실의 한계이자 아쉬움이라고 할 수 있다."

글: 백성호 기자 vangogh [at] joongang [dot] co [dot] kr , 사진: 양영석 인턴기자

◆ 차동엽 신부
세례명은 로베르토. 1981년 서울대 공대를 졸업했다. 해군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서울 가톨릭대학교와 미국 보스턴 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박사 학위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취득했다.

91년에 사제로 서품 되었으며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또 교리 연구 및 성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미래사목연구소'소장직을 맡고 있으며, 교회 월간잡지 '참 소중한 당신'의 주간도 겸하고 있다. 평화신문에 성서를 분석한 글을 연재하고, 평화방송 강의와 전국 순회 강의 등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무지개 원리'(동이)라는 자기 계발서를 썼다. 발간 100일 만에 10만 부가 넘게 팔리며 화제가 됐다. 주요 저서로는 '여기에 보물이 있다,''밭에 묻힌 보물', 'Hi, 미스터 갓' 등이 있다.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150돌…물리학자·신부의 ‘열린 대화’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150돌…물리학자·신부의 ‘열린 대화’ <상> [중앙일보] “성경의 천지창조, 진화론의 빅뱅은 공존할 수 있다”

장회익 교수 “흙으로 인간 빚었다는 창세기 내용 문자만 붙들지 말고 본질 헤아려야”
차동엽 신부 “하느님은 빅뱅 이전부터 계신 분…진화론 속에도 창조의 손길 있다”

“이 우주에는 신의 섭리가 있어. 나는 창조론자야”

“그건 비논리적이야. 나는 과학을 믿지. 그래서 진화론자야.”

많은 이에게 ‘진화론’과 ‘창조론’은 양자택일의 대상이다. 마주보며 달리는 끝없는 철로다. 그래서 ‘접점’이 보이질 않는다.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 진화론의 고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다. 이를 계기로 본지는 기획대담 ‘창조론 대 진화론’을 마련했다.


명동성당 마당을 거닐던 장회익 교수(右)가 “과학자들은 이 우주에 놀라운 질서가 있음을 느낀다”고 말하자 차동엽 신부는 “ 신학적 용어로는 그걸 ‘초월성’이라고 부른다”고 답했다. [김성룡 기자]

물리학계의 거두 장회익(71) 서울대 명예교수와 가톨릭의 스타 논객인 차동엽(51) 신부를 초청했다. 장 교수는 한때 크리스천이었고, 차 신부는 한때 공학도였다. 이들에게 물었다. 2009년의 종교(창조론)와 과학(진화론)은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나. 지난달 22일 서울 명동의 가톨릭회관에서 진행한 대담에선 파격과 관통, 그리고 고개 끄덕임의 숨결이 수시로 오갔다. 우리가 알던 ‘상식’은 곳곳에서 깨졌다.  

◆신이 인간을 빚었나

성경은 창세기 1장 27절에서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God created man in his image)’고 했다. 반면 진화론자들은 빅뱅 이후 지구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나왔다고 본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출발역부터 갈린다. 과연 성경 속 창세기 편을 양쪽은 어떻게 볼까. 

▶장 교수=우주 안에서 인간이 존재하게 된 것은 놀라운 신비다. 그런데 우리는 과학을 통해서 이 ‘신비’를 파악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 중요한 단서가 진화론에서 나온다. 그럼 성경을 기술할 당시는 어땠을까.

▶차 신부=그들은 어떻게 봤나.

▶장 교수=피카소의 그림을 보라. 사람 얼굴을 실제와 달리 찌그러뜨렸다. 왜 그런가. 피카소는 사실을 그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적 직관을 그린 거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나는 누구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종교적 직관을 기록한 거다. 그게 창세기의 내용이다. 그런데 피카소의 그림을 실제 얼굴의 사진이라 해석하고, 거기서 얼굴 모습만 찾으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작품성을 놓치게 된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성경의 표면적인 문자만 붙들면 성경에 담긴 진수를 놓치게 된다. 결국 본질은 놓치고 껍질만 붙드는 셈이다.

▶차 신부=그건 정확한 이해다. 성경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기록됐는지를 알면 쉬워진다. 성경은 창세기가 아니라 출애굽기(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이집트를 탈출하는 편)부터 씌어졌다. 해방 사건이 먼저 있었고, 이 엄청난 기적을 통해서 하느님을 깨닫게 된 거다. ‘그 누군가가 누구냐?’ ‘그가 하늘과 땅을 지어낸 분이다’란 인식과 함께 성경을 기술한 것이다.  

◆신의 창조-어떤 방식인가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성서신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장 교수의 ‘피카소 이야기’에 공감하는가를 물었다.  

▶차 신부=공감한다. 우리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3차원에 살고 있다. 그런데 하느님은 3차원 너머에 계신 초월적인 존재다. 그러니 하느님의 창조는 3차원에서 이뤄진 게 아니다. 4차원이나 5차원, 아니면 6차원 너머에서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하느님이 실제 진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이해 방식은 3차원적 사고에 갇힌 거다. 그런 생각은 신앙적으로 더 큰 잘못이다. 초월적 존재의 하느님을 인간의 3차원적 사고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걸 떠나 계신 분이다.

▶장 교수=차 신부의 얘기를 들으니 가톨릭을 다시 보게 된다. 

◆과학과 종교-친구인가, 적인가

▶차 신부=가톨릭은 중세 때 과학을 박해했다. 과학자들은 당시의 절대믿음이었던 천동설(天動說)에 반하는 지동설(地動說)을 들고 나왔다. 가톨릭은 이들을 이단으로 몰았다. 나중에 지동설이 맞다고 밝혀지자 가톨릭은 엄청난 쇼크를 먹었다. 과학의 결론을 섣불리 예단하면 큰 망신을 당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게 2000년 역사를 가진 가톨릭의 몸속에 ‘소중한 체험’으로 박혀 있다. 그걸 통해 과학을 존중하는 눈이 열린 거다.

▶장 교수=상대적으로 개신교는 개교회 중심적이고, 덩치가 작다. 그러다 보니 그런 경험을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들이진 못하더라. 가톨릭이 지동설을 받아들인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차 신부=지동설을 수용하면서 우리(가톨릭)의 우주는 더 넓어졌다. 하느님의 초월성을 설명하기도 더 쉬워졌다. 천동설을 고집할 때는 안 풀리고, 답답한 게 많았다.

▶장 교수=진화론에 대한 입장은 어떤가.

▶차 신부=지금 가진 생물학적·물리학적 데이터로는 진화론이 우세한 게 사실이다. 이걸 아니라고 하면 객관적인 접근법이 아니다. 진리를 향하는 태도가 아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진화론을 인정했다.

▶장 교수=생명 이해의 기본적인 틀은 진화론이다. 진화론을 외면하면 생명에 대한 이해를 차단하게 된다. 그건 매우 불행한 일이다. 생명을 잘못 알면 모든 게 틀어진다. 눈에 보이는 것만 ‘생명’이라고 생각하면 깊이 있는 생명 이해가 어려워진다. 시간적인 차원, 역사적인 차원의 생명 이해가 중요하다. 

◆빅뱅과 천지창조-공존이 가능한가

성경에는 천지창조에 7일이 걸렸다고 기록돼 있다. 마지막 날은 하느님(하나님)도 일을 마치고 쉬셨다고 했다. 반면 과학자들은 빅뱅으로 인해 이 우주가 생겼다고 한다.

▶차 신부=빅뱅으로 인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이 우주가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신이 없다고 한다. 그게 아니다. 하느님은 빅뱅 이전부터 계신 분이다. 또 천지창조에 24시간씩, 실제 7일이 걸렸다고 믿는 기독교인도 있다. 성경 해석 방법이 미숙한 거다. 그건 은유적 표현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립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화론 속에도 창조의 손길이 있다고 본다.

▶장 교수=과학자들은 정말 이 우주에 엄청나고 놀라운 질서가 있음을 느낀다. 그건 알아나갈수록 더 높아지고, 더 심오해진다. 그래서 궁극적 결과에 대해 미리 단정짓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계속 찾아갈 뿐이다. 성경에 ‘내 형상을 함부로 만들지 말라’는 게 이 뜻이 아닌가 싶다. 우주는 계속 변화하고, 무언가를 향해 나가고 있다.

▶차 신부=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다. 그걸 철학적·신학적 용어로 ‘초월성’이라고 한다. 점점 더 새로운 것이 열린다는 거다. 그래서 과거의 것을 자기 스스로 파괴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느님(하나님)의 형상-사람처럼 생겼나.

▶장 교수=많은 기독교인이 하느님은 사람처럼 생겼다고 본다. 창세기의 성경 구절 때문이다. 어찌 보나.

▶차 신부=성경에서 그 구절을 히브리어로 찾아본 적이 있다. ‘형상’이란 말의 히브리어 원어는 ‘셀렘(Selem, 영어로는 Image)’이다. ‘셀렘’은 ‘본질·속성’이 닮았을 때 사용된다. 반면 겉모양만 붕어빵처럼 똑같이 생긴 ‘형상’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데무트(Demut, 영어로는 likeness 또는 resemblance)’다. 결국 ‘하느님의 본질(속성)을 본 따 아담을 빚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하느님을 의인화하고 인격화하며 ‘하느님은 이런 존재’라고 못 박는 건 곤란하다. 그건 초월적 존재인 하느님을 인간의 3차원적이고, 편협한 생각 속에 가두는 일이다.  

정리=백성호·배노필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하>편은 9일(월)자에 실립니다.

 ◆장회익(71) 교수=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국내 최초의 대안대학인 녹색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학문의 통합과 소통에 깊은 관심을 두고, 과학자의 시선으로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들을 연구했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한성학원 이사장이다. 저서에 『과학과 메타과학』 『삶과 온생명』 『공부도둑: 한 공부꾼의 자기 이야기』등이 있다.

◆차동엽(51) 신부=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가톨릭대에 들어가 1991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세레명은 로베르토.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수학하고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성서신학으로 석사, 사목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천 가톨릭대 교수이며, 성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 저서 『무지개 원리』가 80만부 이상 팔린 ‘스타 신부’다.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150돌- 물리학자·신부의 ‘열린 대화’ <하>

[중앙일보] "나는 어디서 왔나 …” 과학·종교 서로 문 열어 놓고 있죠

‘진화론’ 하면 ‘다윈’이다. 그럼 찰스 다윈은 무신론자였을까, 아니면 유신론자였을까. 현대 과학자들은 “다윈은 평생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갈등했던 학자”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딸의 죽음 앞에선 신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무신론을 옹호한 적도 없다. 다윈은 무엇을 위해 싸웠을까. 상대방은 종교였을까, 아니면 그 시대의 통념이었을까. 과학과 종교, 둘은 당시에도 영원한 화두였다.

12일은 다윈의 200번째 생일이다. 또 올해는 진화론의 고전 『종의 기원』 150돌이다. 지난주에 이어 기획대담 ‘창조론 대 진화론’을 싣는다. 지난달 22일 물리학계의 거두 장회익(71) 서울대 명예교수와 가톨릭의 스타 논객인 차동엽(51) 신부가 나눈 인간과 신, 과학과 종교, 진화와 창조에 대한 내용이다.

◆신의 존재? - 성경인가, 자연인가

▶장 교수=초기 과학자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성직자도 꽤 있었다. 그 시대에는 하느님이 쓰신 두 권의 책이 있었다. 하나는 ‘성경(Book of Scripture)’이고 또 하나는 ‘자연의 책(Book of Nature)’이다. ‘스크립처’와 ‘네이처’ 서로 운율도 맞다. 성경과 자연, 그 속에서 과학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 했다. 자연 속에 하느님이 새겨 놓은 말씀을 읽으려 했다.

▶차 신부=과학은 자연법, 종교는 영원법을 다룬다. 그런데 둘은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톨릭)는 영원법 안에 자연법이 있다고 본다. 창조론 안에 진화론이 있다고 본다.

▶장 교수=다윈의 신앙이 구체적으로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과학자로서 느끼는 공감대가 있다. 다윈도 처음에는 생명이 그렇게 거대한 자연의 질서로 연결됐다는 걸 몰랐을 거다. 그걸 알았을 때 대단히 놀랐을 거다. 성경에 쓰인 문자대로의 신앙과는 다를 수도 있다. 다윈은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간 내면적인 신앙을 가졌으리라 생각한다.

▶차 신부=1916년과 96년, 두 차례에 걸쳐 ‘과학자들의 신앙’을 조사한 자료가 있다. 결과가 흥미롭더라. 첫 조사에서 과학자의 40%가 유신론적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여덟 번 바뀌었다. 과학도 놀랄 만큼 발전했다. 과연 96년에 실시한 조사에선 과학자의 몇 %가 유신론적 입장을 보였을까. 답은 40%로 똑같다. 결국 궁극의 초월적 영역에 대한 선택은 주관적인 것이다.

▶장 교수=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도 ‘신(神)’이란 단어를 많이 썼다. 많은 경우 이것은 자연의 질서를 말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자연의 신비를 보라고 했다. 그걸 보면서 깊은 종교적 감흥을 느끼지 못하면 이상한 거라고 했다. 그건 특정 종교를 말한 것이 아니다. 본질적인 신앙적 체험을 이야기한 거다. 사람들은 흔히 기적이나 이적(異蹟)을 통해 신을 찾으려 한다. 아인슈타인은 달리 말했다. 자연의 질서를 함부로 벗어나는 게 신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자연의 오묘한 질서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이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생명과 신, 나와 우주의 관계

▶차 신부=이스라엘은 중동(中東)이다.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다. 그래서 성경은 동양적 사고에 더 가깝다. 그리스와 로마의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동양 특유의 통합적 사고다. 그래서 종교도 ‘부분’과 ‘전체’를 함께 보는 시야가 필요하다.

▶장 교수=공감한다. 개인적으로 내겐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큰 숙제였고 화두였다.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모든 게 놀랍고 신비하다. 그 중에서도 ‘생명’이 특히 그렇다. 생명을 볼 때도 ‘부분’과 ‘전체’를 함께 봐야 한다. 생명은 낱낱으로 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내가 지금 혀를 움직여 말하고 있다. 무슨 에너지로 움직이나. 태양 에너지로 움직이는 거다. 이렇게 촘촘한 인과(因果)의 실타래로 엮인 것, 그게 생명이다.

▶차 신부=그건 물리학자로서 이해하는 생명의 내재적인 메커니즘이다. 좀 더 듣고 싶다.

▶장 교수=‘낱생명’인 내가 진정한 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태양과 지구로 구성된 생명의 전체 틀, 곧 ‘온생명’ 안에서 그 한 부분으로 엮어져 있어야 한다. 마치 나뭇잎이 나무 전체를 떠나 나무 노릇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온생명이면서, 동시에 낱생명이라는 이중의 주체성을 갖고 있다.

◆인간과 자연 - 정복인가, 돌봄인가

▶장 교수=『종의 기원』이 나온 지 150년 지났지만 생명에 대한 이해는 훨씬 더 깊이 가야 한다. 진화론이 다소 협소하게 해석된 점이 있다. 적자생존까지는 좋은데 ‘약육강식이 자연의 질서’라는 식으로 나가기도 했다. 이는 아주 일면적인 해석이다. 진화의 밑바닥에는 경쟁과 지배가 아닌 거대한 협동의 체계가 있다. 생태계에선 수천 만의 생물 종들이 서로 협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차 신부=성경 창세기 1장28절에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라는 구절이 있다. 그게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하라는 뜻일까. ‘다스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찾아봤더니 ‘라다(radah)’였다. ‘라다’는 목동이 양을 돌볼 때 먹이고 다스리는 의미다. 그처럼 자연을 돌보라는 뜻이다.

◆진화와 창조, 그 궁극의 지향점

성경에는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란 구절이 있다. 알파는 시작, 오메가는 끝으로 풀이된다. 종교와 과학, 창조와 진화는 어떨까. 그 끝에 과연 궁극적인 종점이 있을까.

▶차 신부=일종의 메타포(은유)다. 이 현실계에서 이해하자면 ‘나는 창조자다, 나는 섭리자다’라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차원을 넘어선 세계에선 알파도, 오메가도 필요가 없을 거다.

▶장 교수=그 문제를 다룬 이가 고생물학자이자 가톨릭 사제인 테이야르 드 샤르뎅이다. 그는 과학을 바탕으로 신학의 그림을 그렸다. 물질의 단계, 생명의 단계, 인간의 단계를 거쳐 신의 궁극적 섭리에 이르는 ‘오메가 포인트’를 제시했다. 그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주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정지된 게 아니다. 생명이 처음 시작된 35억~40억 년 전에는 나를 구성하는 모든 분자가 지구상을 떠돌아다니는 먼지 덩어리에 불과했다. 지금은 어떤가. 그 먼지 덩어리가 변하고, 변해서 내가 됐다. 생각하고 말하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묻는 존재, 우주에 대해 묻는 존재가 출현한 거다. 앞으로는 더 놀라운 일이 생길 거다. 과학자는 다만 여기에 대해 열려 있을 뿐이다.

▶차 신부=‘오메가 포인트’에 대해 철학자들은 진·선·미가 하나가 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신앙적 측면에서 보면 요한묵시록 21장4절(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에 나오는 ‘눈물도 없으리라’는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본다.

▶장 교수=모든 것의 근원이고, 모든 걸 포괄하는 어떤 것. 과학은 그 최종 원리를 증명할 수는 없다. 최종 원리는 항상 가정으로 남는다. 우리는 과정 중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겸손함’과 ‘열려 있음’이 중요하다. 그래서 과학은 초월과 종교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놓고 있다. 차 신부의 말대로 종교가 과학을 바라보며 문을 열어두고 있듯이 말이다. 

정리=백성호·배노필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장회익(71) 교수

  •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전 녹색대학 총장
  •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박사
  • 저서:『과학과 메타과학』 『삶과 온생명』 『공부도둑』 『이분법을 넘어서』(공저) 외 다수

◆차동엽(51) 신부

  • 인천 가톨릭대 교수,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오스트리아 빈 대학 박사
  • 저서: 『무지개 원리』 『맥으로 읽는 성경』 『통하는 기도』 『밭에 묻힌 보물』 외 다수

※궁금해요
종의 기원

찰스 다윈(1809~82)이 1859년에 출판한 책으로 진화론에 대한 기념비적 저작이 됐다. 2009년이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란 것은 이 책이 다윈 50세에 나온 숙고의 산물이란 것을 말해준다. 이 책 이전에도 그는 10여권의 책을 냈다. 20대에 비글호 탐사로 진화론의 영감을 얻은 뒤 20여 년을 더 진화시킨 사상이 이 책에 담겼으며 1872년까지 여섯 번째 수정판을 냈다. 다윈은 ‘진화(evolution)’를 ‘진보(progress)’와 동일시하지 않았다. 또 ‘고등 동물’ ‘하등 동물’이란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테이야르 드 샤르뎅

기독교적 진화론을 주창한 프랑스 사상가 테이야르 드 샤르뎅(1881~1955)은 지질학자·고생물학자이자 예수회 신부였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문자 그대로의 창조론을 거부해 가톨릭 교단과 마찰을 빚었다. 중국·미국 등지로 ‘종교적 유배’를 떠나고 생전에 그의 저서가 교회에서 금서가 되기도 했다. 베이징 원인(猿人)의 발굴과 연구자로도 유명하다.

온생명

장회익 교수가 주창한 생명 개념이다. 생명의 자족적 단위를 이루는 한 묶음 전체가 ‘온생명(global life)’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예로 들자면 ▶에너지원인 항성(태양) ▶태양으로부터 적당한 거리에 있는 행성(지구) ▶물과 공기 등이 인간과 박테리아 등까지 포함한 지구 생명체와 함께 온생명을 구성한다. 이 온생명 안에 형성된 개체 단위들이 ‘낱생명’이다. 전체적으로 생명을 구성하는 인과의 실타래가 ‘온생명’에 해당한다.

한국 순교성인

【 한국 천주교회의 103명의 성인 】

한국의 초기 천주교회사는 곧 순교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혹한 박해를 받았고, 이에 따른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이 가운데 1839년 기해년부터 1846년 병오년 사이의 순교자 79위의 시복식(諡福式)이 1925년 7월 5일 거행되었고,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흥선대원군의 박해로 순교한 24위의 시복식이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이로써 한국의 천주교회는 모두 103위의 순교복자(殉敎福者)를 지니게 되었다.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한 교황 파울루스(바오로) 2세가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 순교복자 103위 시성식(諡聖式)을 거행함으로써 이들은 복자에서 성인의 품위로 오르게 되었다. 103위의 구성을 보면, 김대건 신부(성인이 된 유일한 한국인 성직자)와 평신도 92명, 파리 외방전교회소속 선교사 10명(주교 3명, 신부 7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성식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면, 1983년 3월 한국주교단은 교황청에 기적심사관면청원서를 제출했고 교황청은 시성을 허락했다. 성인의 반열(班列) 절차가 매우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이 승인한 이유는 한국 천주교회가 '신앙의 기적'이라고 일컫는 평신도 중심의 자생적 교회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로마 이외의 지역에서 시성식을 행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로써 한국의 천주교회는 천주교 성인의 10%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탈리아·프랑스·베트남에 뒤이은 4대 성인교회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시성식이 행해지면 성인들은 교회의 성인명부에 기록되며, 성인을 기념하는 성무일도(聖務日禱:성직자 기도서)와 미사경문이 작성되고, 그의 이름이 세례명으로 사용된다. 또한 가톨릭 교회의 모든 신자들로부터 경의의 대상이 된다.

1984년 7월 2일 103위 성인이 탄생함에 따라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공문을 통해 한국성인의 공경에 대한 지침을 발표했다. 지침내용은 첫째, 9월 6일 한국순교복자 대축일을 없애고 9월 20일을 한국성인 대축일로 기념하며, 각 교구에서는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며, 둘째, 복자성월(福者聖月) 9월은 순교자성월로 지낼 것 등이다. 1984년 10월 14일 로마 교황청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103위 시성 로마 경축대회가 열렸다. 이듬해 3월 12일 교황은 한국순교성인축일을 세계공용 로마 축일표에 수록하고 기념하도록 선포했다.


【 한국 천주교회의 124위 순교자 】

1984년의 103위 시성식은 한국 천주교회의 큰 기쁨이요 영광이었다. 그러나 시성식이 끝난 직후 여러 신자들은 한 가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신해박해(1791)와 신유박해(1801)의 순교자들이 아직도 시복 시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교회의 2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와 각 교구에 의해 진행되었던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 노력은 1997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 총회에서 “통합 추진”이 결정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관련 교구의 순교자 시복 시성 담당 신부들의 모임이 주교회의 사무처장 김종수 신부의 주재로 여러 차례 열린 끝에(1998-2000), 2001년 3월 주교회의 춘계 정기 총회는 시복 시성 통합 추진의 청구인(추진 주체)을 ‘주교회의’로 명시하고 담당 주교에 마산교구장 박정일 미카엘 주교를 선출하였다.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해인 2001년 10월 18일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 안건을 통합적으로 추진해 온 결과, 2004년 7월 5일 시복 조사 법정을 개정하게 되었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정일 미카엘 주교는 현재 하느님의 종 124위에 대한 문헌 증거 수집과 증인 소환 조사, 현장 조사를 마치고 시복 조사 회기 문서를 정리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하느님의 종 124위는 1791년 신해박해 3위, 1795년 을묘박해 3위, 1797년 정사박해 8위, 1801년 신유박해 53위, 1814년의 1위, 1815년 을해박해 12위, 1819년의 2위, 1827년의 정해박해 4위, 1839년의 기해박해 18위, 1866년과 1868년의 병인-무진박해 19위, 1888년의 1위로 신유박해 전후의 순교자들이 시복 추진의 중심에 있다. 기해박해와 병인박해의 순교자들은 103위 성인의 추진 과정에 빠졌으나 순교 사실이 새롭게 연구되고 관련 지역에서 현양된 분들이 포함되었다.

【124위 순교자 시복시성 심사중 - 우리가 해야할 일】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법정이 지난 2009년5월 20일 폐정돼 모든 서류가 교황청 시성성에 전해짐에 따라 이제 복자 124위 탄생의 숙제는 ‘기다림’으로 남았으며, 우리 신자들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의 지침에 따라 “시복 시성을 위한 기도문”을 바치며, 우리의 일상의 삶안에 우리 선조 순교자들의 피끊는 신앙심을 본 받도록 노력해야 할것이다.

【주요 한국성인 성지 가톨릭 링크】
-가톨릭 주교회의
-순교성월 9월
-103위 성인설명
-가톨릭정보 한국의 성지
-마리아사랑넷 성인
-대구가톨릭대학교 한국의 천주교
-바오로의 딸 - 한국의 성지

103위 순교자 설명 - 대구 가톨릭대학교

다른 사진과 그림도 있고, 요약이 잘되어 있는것 같아 가져왔습니다.
원본링크: http://www.cataegu.ac.kr/catholic/m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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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세 례 명 성별 나이 신분 순교사적
고순이 바르바라 42 부인 서소문 밖 참수
권득인 베 드 로 35 회장 상동
권진이 아 가 타 21 부인 당현에서 참수
권 희 바르바라 46 부인 서소문 밖 참수
김노사 로 사 56 동정 서소문 밖 참수
김누시아 루 시 아 22 동정 상동
김대건 안드레아 26 사제 1846. 9. 16. 새남터, 군문효수
김 데레사 데레사 44 과부 1840. 1. 9. 서울에서 교수
김 루치아 루치아 71 동정 1839. 9. 서울에서 옥사
김 바르바라 바르바라 35 과부 1839. 5. 27. 서울에서 옥사
김성우 안또니오 47 회장 1841. 4. 29. 당고개에서 교수
김성임 마 르 타 53 과부 서소문 밖 참수
김신부 도리 헨리꼬 27 사제 새남터에서 군문효수
김아기 아 가 타 66 과부 서소문 밖에서 참수
김업이 막달레나 53 과부 상동
김유리대 율리에따 56 궁녀 서소문 밖 참수
김임이 데 레 사 36 동정 서울에서 교수
김장금 안 나 51 과부 서소문 밖 참수
김제준 이냐시오 44 회장 상동
김효임 골 롬 바 26 동정 서소문 밖 참수
김효주 아 녜 스 24 동정 서소문 밖 참수
나신부 모방 베드로 35 사제 상동
남경문 베 드 로 40 회장 1846. 9. 20. 서울에서 장살
남명혁 다미아노 38 회장 서소문 밖 참수
남이관 세바스띠아노 60 회장 1839. 9. 26. 서소문 밖 참수
남종삼 요 한 50 승지 1866. 3. 7. 서소문 밖 참수
민극가 스테파노 53 회장 교수
민신부 위앵 마르띠노 30 사제 갈대못에서 군문효수
박봉손 막달레나 44 과부 서소문 밖 참수
박아기 안 나 57 부인 서소문 밖에서 참수
박종원 아우구스띠노 48? 회장 1840. 1. 31 당고개에서 참수
박큰아기 마 리 아 54 부인 서소문 밖 참수
박후재 요 한 41 상인 1839. 9. 3. 서소문 밖 참수
박희순 루 치 아 39 동정궁녀 상동
백신부 브레트니에르 28 사제 새남터에서 군문효수
범주교 앵베르 라우렌시오 43 주교 1839. 9. 21. 새남터에서 군문효수
서신부 볼레루이 26 사제 상동
손선지 베 드 로 47 회장 숲정이에서 참수
손소벽 막달레나 39 부인 당현에서 참수
손자선 토 마 28 농업 1866. 5. 18. 공주(?)에서 교수
안주교 다블뤼 안또니오 48 주교 1866. 3. 30. 보령갈대못에서 군문효수
오신부 오메트르 베드로 29 사제 상동
우세영 알렉시오 22 번역가 세남터에서 군문효수
우술임 수 산 나 44 과부 서울에서 교수
원귀임 마 리 아 22 동정 서소문 밖 참수
유대철 베 드 로 13 동정 1839. 10. 21. 서울에서 교수
유소사 세실리아 79 과부 1839. 11. 23. 서울에서 옥사
유정률 타리나 57 과부 옥사
이호영 베 드 로 36 회장 1838. 11. 25. 서울에서 옥사
임치백 요 셉 43 사공 1846. 9. 20. 서울에서 교수
장성집 요 셉 54 환부 1839. 5. 26. 서울에서 옥사
장주교 베르뇌 시메온 52 주교 1866. 3. 7. 새남터에서 군문효수
장주기 요 셉 64 회장 1866. 3. 30. 보령갈매못에서 군문효수
전경협 아 가 타 53 궁녀 서소문 밖 참수
전장운 요 한 56 상업 1866. 3. 9. 서소문 밖 참수
정국보 쁘로따시오 41 상인 1839. 5. 20 서울에서 옥사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66 원님 1866. 12. 14. 전주숲정이에서 참수
정신부 샤스땅 야고보 35 사제 상동
정원지 베 드 로 21 농업 승장이에서 참수
정의배 마 르 꼬 72 회장 1866. 3. 11. 새남터 군문효수
정정혜 엘리사벳 43 동정 서소문 밖 참수
정철염 카타리나 30 부인 서울에서 교수
정하상 바 오 로 45 신학생 1839. 9. 22. 서소문 밖 참수
정화경 안드레아 33 회장 교수
조 막달레나 막달레나 33 과부 옥사
조신철 까 롤 로 45 복사 서소문 밖 참수
조윤호 요 셉 19 농업 1866. 12. 23. 전주에서 장살
조증이 바르바라 58 부인 서소문 밖 참수
조화서 베 드 로 52 농업 숲정이에서 참수
최경환 프란치스꼬 35 회장 1839. 9. 12. 서울에서 옥사
최영이 바르바라 22 부인 당고개에서 참수
최창흡 베 드 로 53 회장 1839. 12. 29. 서소문 밖 참수
최 형 베 드 로 53 회장 상동
한아기 바르바라 48 과부 서소문 밖 참수
한영이 바르바라 56 과부 상동
한원서 베 드 로 31 회장 상동
한이형 라우렌시오 48 회장 1846. 9. 20. 서울에서 장살
허계임 막달레나 67 부인 서소문 밖 참수
허 협 바 오 로 45 군인 1840. 1. 30. 포총옥에서 교수
현경련 베네딕따 46 여회장 서소문 밖 참수
현석문 까 롤 로 50 회장 1846. 9. 19. 새남터 군문효수
홍금주 뻬르뻬뚜아 36 과부 서소문 밖 참수
홍병주 베 드 로 42 회장 상동
홍영주 바 울 로 39 회장 1840. 2. 1. 당고개에서 참수
황석두 루 까 54 회장 보령 갈대못에서 군문효수

103위 순교자 성인 - 마리아사랑넷

한국 103위 순교성인 (이름순으로 정렬)

자료 출처: 마리아 사랑넷

순서성인 이름과 본명 (링크를 클릭하면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1고순이 바르바라
2권득인 베드로
3권진이 아가다
4권희 바르바라
5김 데레사
6김 루치아
7김 루치아
8김 바르바라
9김노사 로사
10김대건 안드레아
11김성우 안토니오
12김성임 마르타
13김아기 아가다
14김업이 막달레나
15김유리대 율리에다
16김임이 데레사
17김장금 안나
18김제준 이냐시오
19김효임 콜룸바
20김효주 아녜스
21남경문 베드로
22남명혁 다미아노
23남이관 세바스티아노
24남종삼 요한
25다블뤼 안토니오
26모방 베드로
27민극가 스테파노
28박봉손 막달레나
29박아기 안나
30박종원 아우구스티노
31박큰아기 마리아
32박후재 요한
33박희순 루치아
34베르뇌 시므온
35볼리외 루도비코
36브르트니애르 유스도
37샤스땅 야고보
38손선지 베드로
39손소벽 막달레나
40손자선 토마
41앙리 도리 베드로
42앵베르 라우렌시오
43오매트로 베드로
44우세영 알렉시오
45우술임 수산나
46원귀임 마리아
47위앵 루가
48유대철 베드로
49유소사 체칠리아
50유정률 베드로
51유진길 아우구스티노
52이 가타리나
53이 바르바라
54이 아가다
55이간난 아가다
56이경이 아가다
57이광렬 요한
58이광헌 아우구스티노
59이매임 데레사
60이명서 베드로
61이문우 요한
62이소사 아가다
63이연희 마리아
64이영덕 막달레나
65이영희 막달레나
66이윤일 요한
67이인덕 마리아
68이정희 바르바라
69이호영 베드로
70임치백 요셉
71장성진 요셉 or 장성집
72장주기 요셉
73전경협 아가다
74전장운 요한
75정군보 프로타시오 or 정국보
76정문호 바르톨로메오
77정원지 베드로
78정의배 마르코
79정정혜 엘리사벳
80정철염 카타리나
81정하상 바오로
82정화경 안드레아
83조 막달레나
84조신철 카롤로
85조윤호 요셉
86조증이 바르바라
87조화서 베드로
88최경환 프란치스코
89최영이 바르바라
90최창흡 베드로
91최형 베드로
92한아기 바르바라
93한영이 막달레나
94한이형 라우렌시오
95한재권 요셉(베드로)
96허계임 막달레나
97허협 바오로
98현경련 베네딕타
99현석문 카롤로
100홍금주 페르페투아
101홍병주 베드로
102홍영주 바오로
103황석두 루가

103위 한국 성인 호칭 기도

103위 한국 성인 호칭 기도
†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당신 성전으로 삼으시는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며
우리 나라의 성인들이
천상의 모든 성인과 함께
우리와 소리를 맞추어 전구해 주시도록 간구합시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다음은 같은 후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 정하상 바오로
성 이호영 베드로
성 정국보 프로타시오
성녀 김 아가타
성녀 박 안나
성녀 이 아가타
성녀 김업이 막달레나
○성 이광헌 아우구스티노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다음은 같은 후렴)
○성녀 한 바르바라
성녀 박희순 루치아
성 남명혁 다미아노
성 권득인 베드로
성 장성집 요셉
성녀 김 바르바라
성녀 이 바르바라
성녀 김 로사
성녀 김성임 마르타
성녀 이매임 데레사
성녀 감장금 안나
성 이광렬 요한
성녀 이영희 막달레나
성녀 김 루치아
성녀 원귀임 마리아
성녀 박 마리아
성녀 권희 바르바라
성 박후재 요한
성녀 이정희 바르바라
성녀 이연희 마리아
성녀 김효주 아녜스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 범 라우렌시오
성 나 베드로
성 정 야고보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성녀 허계임 막달레나
성 남이관 세바스티아노
성녀 김 율리에타
성녀 전경협 아가타
성 조신철 가롤로
성 김제준 이냐시오
성녀 박봉손 막달레나
성녀 홍금주 페르페투아
성녀 김효임 골룸바
성녀 김 루치아
성녀 이 가타리나
성녀 조 막달레나
성 유대철 베드로
성녀 유 체칠리아
성 최창흡 베드로
성녀 조증이 바르바라
성녀 한영이 막달레나
성녀 현경련 베네딕타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
성녀 고순이 바르바라
성녀 이영덕 막달레나

○성녀 김 데레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다음은 같은 후렴)
○성녀 이 아가타
성 민극가 스테파노
성 정화경 안드레아
성 허협 바오로
성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성 홍병주 베드로
성녀 손소벽 막달레나
성녀 이경이 아가타
성녀 이인덕 마리아
성녀 권진이 아가타
성 홍영주 바오로
성 이문우 요한
성녀 최영이 바르바라
성 김성우 안토니오
성 현석문 가롤로
성 남경문 베드로
성 한이형 라우렌시오
성녀 우술임 수산나
성 임치백 요셉
성녀 김임이 데레사
성녀 이 아가타
성녀 정철염 가타리나

○성 유정률 베드로
성 장 시므온
성 백 유스토
성 김 헨리코
성 서 루도비코
성 남종삼 요한
성 전장운 요한
성 최형 베드로
성 정의배 마르코
성 우세영 알렉시오
성 안 안토니오
성 민 루가
성 오 베드로
성 장주기 요셉
성 황석두 루가
성 손자선 토마스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 조화서 베드로
성 손선지 베드로
성 이명서 베드로
성 한재권 요셉
성 정원지 베드로
성 조윤호 요셉
성 이윤일 요한
하느님의 모든 성인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희를 구원하소서.

(다음은 같은 후렴)
○온갖 악에서
모든 죄에서
영원한 죽음에서
사람이 되신 주님의 신비로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성령을 보내심으로

○죄인들이 청하오니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다음은 같은 후렴)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다스리며 보존하시기를 청하오니
사도좌와 모든 성직자를 진리 안에 보존하시기를 청하오니
우리 민족이 화목하고 평화로이 살게 해주시기를 청하오니
주님을 섬기는 저희를 지켜주시고 굳세게 해주시기를 청하오니
저희 모든 은인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시기를 청하오니
땅을 지키고 일구는 이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주시기를 청하오니
저희 바람을 들어주시기를 청하오니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를 용서하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기도합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산 이와 죽음 이들 모두 다스리시며
주님을 믿고 따르는 백성을 사랑으로 보살피시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모든 성인의 전구를 들으시고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아래 첨부 PDF는 인쇄용 파일입니다.

124위 순교자리스트 (시복시성 심사중)

맨마지막 '기존'열은 '기존청원자'를 나타내는 란으로 길이상 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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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성___ 명 세_ 례_ 명 성별 출생 출 생 지 신분지위 순교일 연령 순교형식 __순 교 지__ 기존
1 윤지충 바오로 1759 전라도 진산 평신도지도자,진사, 양반 12/8/1791 32 참수 전라도 전주 *
2 주문모 야고보 1752 중국 소주 신부 5/31/1801 49 군문효수 한양 새남터 *
3 권상연 야고보 1751 전라도 진산 학자, 양반 12/8/1791 40 참수 전라도 전주 *
4 원시장 베드로 1732 츙청도 홍주 양인 1/28/1793 61 장사 충청도 홍주
5 윤유일 바오로 1760 경기도 여주 평신도지도자,밀사, 양반 6/28/1795 35 장사 한양 포도청 *
6 최인길 마티아 1765 한양 평신도지도자,약관, 중인 6/28/1795 30 장사 한양 포도청 *
7 지 황 사바 1767 한양 평신도지도자,밀사, 양반 6/28/1795 28 장사 한양 포도청 *
8 이도기 바오로 1743 충청도 청양 도공 7/24/1798 55 장사 충청도 정산
9 프란치스코 충청도 면천 비장 1/21/1799 장사혹은 교수 충청도 홍주
10 박취득 라우렌시오 충청도 면천 평신도지도자 4/3/1799 약 30 교수 충청도 홍주
11 원시보 야고보 1730 충청도 홍주 양인 4/17/1799 69 장사 충청도 홍주
12 정산필 베드로 충청도 덕산 회장 1799 50혹은 60 참수혹은 장사 충청도 덕산
13 배관겸 프란치스코 충청도 당진 평신도지도자 1/7/1800 약 60 장사 충청도 청주
14 인언민 마르티노 1737 충청도 덕산 학자, 양반 1/9/1800 63 장사 충청도 해미
15 이보현 프란치스코 1773 충청도 덕산 양인 1/9/1800 27 장사 충청도 해미
16 조용삼 베드로 경기도 양근 독신 3/27/1801 옥사 경기도 감영
17 최창현 요한 1759 한양 회장, 중인 4/8/1801 42 참수 한양 서소문 밖
18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1760 경기도 광주 회장, 양반 4/8/1801 41 참수 한양 서소문 밖
19 홍교만 F. 하비에르 1738 한양 학자, 양반 4/8/1801 63 참수 한양 서소문 밖
20 최필공 토마스 1744 한양 평신도지도자,약업, 중인 4/8/1801 57 참수 한양 서소문 밖
21 홍낙민 루가 1751 충청도 예산 지평, 양반 4/8/1801 50 참수 한양 서소문 밖
22 최창주 마르첼리노 1749 경기도 여주 양반 4/25/1801 52 참수 경기도 여주
23 이중배 마르티노 경기도 여주 양반 4/25/1801 약 50 참수 경기도 여주
24 원경도 요한 1774 경기도 여주 양반 4/25/1801 27 참수 경기도 여주
25 윤유오 야고보 경기도 여주 평신도지도자,양반 4/27/1801 참수 경기도 양근 *
26 최필제 베드로 1770 한양 평신도지도자,약업, 중인 5/14/1801 31 참수 한양 서소문 밖
27 윤운혜 루치아 경기도 연락원, 부인,양반 5/14/1801 참수 한양 서소문 밖 *
28 정복혜 칸디다 한양 인근 연락원, 과부,양인 5/14/1801 참수 한양 서소문 밖
29 정인혁 타데오 한양 평신도지도자,약업, 중인 5/14/1801 참수 한양 서소문 밖
30 정철상 가롤로 경기도 광주 평신도지도자,양반 5/14/1801 참수 한양 서소문 밖
31 심아기 바르바라 1783 경기도 광주 동정 1801. 4.초(음) 18 장사 한양 포도청
32 강완숙 골롬바 1761 충청도 내포 회장, 부인 7/2/1801 40 참수 한양 서소문 밖
33 강경복 수산나 1762 연락원, 동정,궁녀 7/2/1801 39 참수 한양 서소문 밖
34 김현우 마태오 1775 한양 명례방 평신도지도자,중인 7/2/1801 26 참수 한양 서소문 밖
35 문영인 비비안나 1776 한양 연락원, 동정,궁녀 7/2/1801 25 참수 한양 서소문 밖
36 김연이 율리안나 연락원, 부인,양인 7/2/1801 참수 한양 서소문 밖
37 이현 안토니오 경기도 여주 양반 7/2/1801 참수 한양 서소문 밖
38 최인철 이냐시오 한양 평신도지도자,중인 7/2/1801 참수 한양 서소문 밖
39 한신애 아가타 충청도 보령 연락원, 부인 7/2/1801 참수 한양 서소문 밖
40 윤점혜 아가타 경기도 회장, 동정,양반 1801. 7. 4 참수 경기도 양근 *
41 정순매 바르바라 1777 경기도 여주 동정, 양반 1801. 7.3(4) 24 참수 경기도 여주
42 김이우 바르나바 한양 명례방 평신도지도자,중인 1801. 5. (음) 장사 한양 포도청
43 이국승 바오로 1772 충청도 음성 선생, 양반 1801.5.말(음) 29 참수 충청도 공주
44 김광옥 안드레아 충청도 예산 면장, 중인 8/25/1801 약 60 참수 충청도 예산
45 김정득 베드로 충청도 대흥 중인 8/25/1801 참수 충청도 대흥
46 한정흠 스타니슬라오 1756 전라도 김제 선생, 양반 8/26/1801 45 참수 전라도 김제
47 김천애 안드레아 1760 종, 천민 1801. 8. 27(28) 41 참수 전라도 전주
48 최여겸 마티아 1763 전라도 무장 양반 8/27/1801 38 참수 전라도 무장
49 김종교 프란치스코 1754 한양 의원, 중인 1801.10. 4 47 참수 한양 서소문 밖
50 홍필주 필립보 1774 충청도 덕산 평신도지도자,양반 10/4/1801 27 참수 한양 서소문 밖
51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1756 전라도 전주 회장, 양반 10/24/1801 45 능지처참 전라도 전주 *
52 윤지헌 프란치스코 1764 전라도 진산 평신도지도자,양반 10/24/1801 37 능지처참 전라도 전주
53 유중철 요한 1779 전라도 전주 동정부부, 양반 11/14/1801 22 교수 전라도 전주 *
54 유문석 요한 1784 전라도 전주 동정, 양반 11/14/1801 17 교수 전라도 전주
55 현계흠 바오로 1763 한양 평신도지도자,약업, 중인 12/10/1801 38 참수 한양 서소문 밖
56 김사집 프란치스코 1744 충청도 덕산 양인 1/25/1802 58 장사 충청도 청주
57 손경윤 제르바시오 1760 한양 회장, 약업, 양인 1/29/1802 42 참수 한양 서소문 밖
58 이경도 가롤로 1780 한양 곱사등이, 양반 1/29/1802 22 참수 한양 서소문 밖
59 김계완 시몬 한양 복사, 약업, 양인 1/29/1802 참수 한양 서소문 밖
60 정광수 바르나바 경기도 여주 평신도지도자,양반 1/29/1802 참수 경기도 여주 *
61 홍익만 안토니오 경기도 양근 지도자 1/29/1802 참수 한양 서소문 밖
62 한덕운 토마스 1752 충청도 홍주 1/30/1802 50 참수 광주 남한산성
63 황일광 시몬 1757 충청도 홍주 천민 1/30/1802 45 참수 충청도 홍주
64 홍인 레오 1758 한양 양반 1/30/1802 44 참수 경기도 포천
65 권상문 세바스티아노 1769 경기도 양근 평신도지도자,양반 1/30/1802 33 참수 경기도 양근
66 이순이 누갈다 1782 한양 동정부부, 양반 1/31/1802 20 참수 전라도 전주 *
67 유중성 마태오 전라도 전주 동정, 양반 1/31/1802 약 18 참수 전라도 전주
68 김진후 비오 1739 충청도 면천 하급관리, 양반 12/1/1814 75 옥사 충청도 해미
69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 경상도 상주 부인 1815. 4월말(음), 5월초 약 50 장사 경상도 대구
70 김시우 알렉시오 1782 충청도 청양 독신, 양반 1815. 5.(음), 6월 33 옥사 경상도 대구
71 최봉한 프란치스코 충청도 홍주 1815. 5월경(음) 옥사 경상도 대구
72 서석봉 안드레아 1815. 말 옥사 경상도 대구
73 김강이 시몬 충청도 서산 평신도지도자,중인 12/5/1815 50이상 옥사 강원도 원주
74 김희성 프란치스코 1765 충청도 예산 중인 12/19/1816 51 참수 경상도 대구
75 구성열 바르바라 충청도 홍주 부인 12/19/1816 약40 참수 경상도 대구
76 이시임 안나 1782 충청도 덕산 과부, 양반 12/19/1816 34 참수 경상도 대구
77 고성대 베드로 충청도 덕산 독신 12/19/1816 참수 경상도 대구
78 고성운 요셉 충청도 덕산 독신 12/19/1816 참수 경상도 대구
79 김종한 안드레아 충청도 면천 평신도지도자,양반 12/19/1816 참수 경상도 대구
80 김화춘 야고보 충청도 청양 12/19/1816 참수 경상도 대구
81 조숙 베드로 1787 경기도 양근 평신도지도자,동정부부, 양반 8/3/1819 32 참수 한양
82 데레사 1784 경기도 양근 동정부부, 양반 8/3/1819 35 참수 한양
83 이경언 바오로 1792 한양 양반 6/27/1827 35 옥사 전라도 전주
84 박경화 바오로 1757 충청도 홍주 양반 11/15/1827 70 옥사 경상도 대구
85 김세박 암브로시오 1761 한양 중인 12/3/1828 67 옥사 경상도 대구
86 안군심 리카르도 1774 충청도 보령 1835 61 옥사 경상도 대구
87 이재행 안드레아 1776 충청도 홍주 5/26/1839 63 참수 경상도 대구
88 박사의 안드레아 1792 충청도 홍주 양반 5/26/1839 47 참수 경상도 대구
89 김사건 안드레아 1794 충청도 서산 중인 5/26/1839 45 참수 경상도 대구
90 이일언 1767 충청도 홍주 5/29/1839 72 참수 전라도 전주
91 신태보 베드로 경기도 평신도지도자 5/29/1839 약 70 참수 전라도 전주
92 이태권 베드로 1782 충청도 홍주 양인 5/29/1839 57 참수 전라도 전주
93 정태봉 바오로 1796 충청도 덕산 5/29/1839 43 참수 전라도 전주
94 김대권 베드로 충청도 청양 5/29/1839 참수 전라도 전주
95 최해성 요한 1811 충청도 홍주 회장 9/6/1839 28 참수 강원도 원주
96 김조이 아나스타시아 1789 충청도 덕산 부인, 양인 1839. 10월경 50 옥사 전라도 전주
97 심조이 바르바라 1813 경기도 인천 부인, 양반 11/11/1839 26 옥사 전라도 전주
98 이봉금 아나스타시아 1827경 동정, 양인 1839. 12. 5(6) 12이하 교수 전라도 전주
99 비르짓다 1783 충청도 과부 1839. 12. 8(9) 56 교수 강원도 원주
100 홍재영 프로타시오 1780 충청도 예산 평신도지도자,양반 1/4/1840 60 참수 전라도 전주
101 최조이 바르바라 1790 경기도 여주 과부, 양반 1/4/1840 50 참수 전라도 전주
102 이조이 막달레나 1808 과부 1/4/1840 32 참수 전라도 전주
103 오종례 야고보 1821 충청도 은진 양반 1/4/1840 19 참수 전라도 전주
104 이성례 마리아 1801 충청도 홍주 부인, 양반 1/31/1840 39 참수 한양 당고개
105 오반지 바오로 1813 충청도 진천 1866. 3. 27(26) 53 교수 충청도 청주
106 신석복 마르코 1828 경상도 밀양 상업 1866. 3. 31(18) 38 교수 경상도 대구
107 김원중 스테파노 충청도 진천 12/16/1866 교수 충청도 공주
108 토마스 1815 경기도 수원 1866 51 참수 충청도 청주
109 구한선 타데오 1844 경상도 함안 복사, 중인 1866 22 장사 경상도 함안
110 정찬문 안토니오 1822 경상도 진주 양반 1/25/1867 45 장사 경상도 진주
111 김기량 펠릭스베드로 1816 제주도 함덕 무역업, 중인 1867. 1. 51 교수 경상도 통영
112 박상근 마티아 1837 경상도 문경 아전, 중인 1867. 1. 30 교수 경상도 상주
113 베네딕도 1798 충청도 충주 양반 1867 69 한양
114 베드로 1821 충청도 충주 양반 1867 46 한양
115 안나 1841 경기도 인천 부인 1867 26 한양
116 이정식 요한 1794 경상도 동래 회장, 장교 1868. 여름 74 참수 경상도 동래
117 양재현 마르티노 1827 경상도 좌수 1868. 여름 41 참수 경상도 동래
118 이양등 베드로 경상도 회장, 상업 9/14/1868 참수 경상도 울산
119 김종륜 루가 1819 충청도 공주 양반 9/14/1868 49 참수 경상도 울산
120 허인백 야고보 1822 경상도 김해 농부 9/14/1868 46 참수 경상도 울산
121 프란치스코 1835 충청도 18668. 9. 28(29) 33 경기도 죽산
122 마르가리타 부인 1868. 9. 28(29) 경기도 죽산
123 박대식 빅토리노 1812 경상도 김해 10/12/1868 56 참수 경상도 대구
124 윤봉문 요셉 1852 경상도 경주 회장 4/1/1888 36 교수 경상도 진주

124위 시복시성 기원 특별기획 - 이슬은 빛이 되어 - 가톨릭 신문 링크

124위 시복시성을 기원하는 가톨릭신문 특별기획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4번째로 성인이 많은 나라입니다. 이 작은 나라에서 이렇게도 많은 성인을 배출했다는 것은 큰 영광일 것입니다. 124위 순교자도 성인으로 인정된다면 한국 천주교사에 또다른 큰 획이 그어질것 입니다. 우리가 우리 순교자 조상님의 업적을 모른다면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아래 시리즈 원본 링크있습니다.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는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시복시성을 위해 관련 현장을 방문, 조사 작업을 펼쳐왔다.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법정이 지난 5월 20일 폐정, 모든 서류를 교황청 시성성으로 전했다.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정일 주교가 관련 서류가 봉인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103위 성인에 이어 124위의 복자가 탄생할 것인가.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법정이 지난 5월 20일 폐정돼 모든 서류가 교황청 시성성에 전해짐에 따라 이제 복자 124위 탄생의 숙제는 ‘기다림’으로 남았다.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정일 주교는 “우리 위원회의 일은 끝났지만 한 가지 더 큰 일이 남아있다”며 “하느님께서 우리가 한 일을 자애로이 보시고 시복이 빨리 이뤄지도록 은혜 내려 주시길 기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가톨릭신문은 ‘103위 시성 25주년 기획- 이 땅에 빛을’에 이어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의 시복시성을 염원하는 ‘124위 시복시성 기원- 이슬은 빛이 되어’를 연재한다. 한국 교회의 초대 신자들이자 103위 성인들의 신앙선조인 124위의 행적과 삶, 순교신앙을 좇아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가톨릭신문의 이번 기획이 124위의 시복시성을 온 마음으로 기도하고, 그들의 순교신앙을 스스로 내면화하는 좋은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

▧ 기획의도

▲ 왜 124위인가?

이미 여러 차례 밝혀진 것처럼 124위는 103위 순교자 이전 순교자들 즉, 신해(1791)와 신유박해(1801) 순교자들이다. 1984년 시성된 103위는 모두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박해 때 숨진 순교자들로, 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격이다.

124위가 103위보다 먼저 순교한 신앙선조들이라는 이유 외에도 124위가 갖는 시복시성의 당위성은 무엇이 있을까. 교회사 관계자들은 한국 교회 창립의 주춧돌을 놓은 신앙 선조들을 되살려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맞갖게 응전하는 교회를 만들고 신앙공동체의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전한다.

시복시성 검찰관 박동균 신부(서울 반포4동본당 주임)는 “이번 124위 시복시성운동은 한국 교회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며 “우리 스스로 순교 조상들을 발굴하고 정리하는 과제를 안을 수 있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124위 시복시성 추진은 신앙 후손인 우리 자신, 즉 한국 교회를 위한 것임을 재확인하고 신앙을 다지기 위함인 것이다.

▲ 124위가 던지는 메시지

124위 순교자들은 초기교회 신자들로서 한국 교회의 ‘주추’를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적으로 시성된 103위 성인들은 그 주추 위에 신앙이라는 ‘기둥’을 세운 셈이다.

그만큼 124위가 갖는 의미의 무게는 무겁다. 한국 교회의 첫걸음을 뗀 신앙선조들은 우리 신앙의 ‘초심’이다. 신앙의 늘 새로움이며 새로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시대의 십자가’에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신앙의 길을 걷는 신앙선조의 면모를 보여준다.

124위가 주문모 신부를 제외하고 모두 한국 평신도들로 이뤄진 것도 의미가 크다.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자신들의 신앙을 잃지 않은 평신도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복시성 재판관 대리 이찬우 신부는 “주문모 신부 입국 전 순교자들은 사제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하고 순교하셨을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평신도들에 의해 신앙을 접한 분들, 사제를 한 번 만났거나 만나지도 못한 분들을 복자품에 올린다는 것은 의의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 ‘이슬은 빛이 되어’

가톨릭신문은 이러한 기획의도를 담아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를 약전 형식으로 연재한다. 이번 기획 ‘이슬은 빛이 되어’는 시복시성 역사전문가 위원 유은희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복자총서 ‘이슬은 빛이 되어’의 제목에서 착안했다.

기획을 통해 124위의 약전 뿐 아니라 124위와 관련된 순교지, 순교과정, 순교특징, 103위 성인과의 관계, 유품 등도 소개할 예정이다. 다양한 형태로 신앙 선조들의 삶과 신앙의 진면목을 재조명하는 기획 ‘이슬은 빛이 되어’에 많은 관심을 바라며 124위의 시복시성을 기원한다.

[124위 시복시성 기원 특별기획 - 이슬은 빛이 되어] - 총론
[124위 시복시성 기원 특별기획 - 이슬은 빛이 되어(2)] 103위 성인들의 아버지·어머니(上)
[124위 시복시성 기원 특별기획 - 이슬은 빛이 되어(3)] 103위 성인들의 아버지·어머니(下)
[124위 시복시성 기원 특별기획 - 이슬은 빛이 되어(4)] 순교지별로 살펴보는 124위 - 서울대교구 ①
[124위 시복시성 기원 특별기획 - 이슬은 빛이 되어(5)] 순교지별로 살펴보는 124위 - 서울대교구 ②
[124위 시복시성 기원 특별기획 - 이슬은 빛이 되어(6)] 순교지별로 살펴보는 124위 - 서울대교구 ③
[124위 시복시성 기원 특별기획 - 이슬은 빛이 되어(7)] 순교지별로 살펴보는 124위 - 수원교구 ①
[124위 시복시성 기원 특별기획 - 이슬은 빛이 되어(8)] 순교지별로 살펴보는 124위 - 수원교구 ②
[124위 시복시성 기원 특별기획 - 이슬은 빛이 되어(9)] 순교지별로 살펴보는 124위 - 수원교구 ③

한국순교복자수녀회 124위 정보 링크
http://www.sbkm.kr/info/martyr_kr/index.asp?g_id=2

2009년 순교자 백일장과 심사평

2009년 9월 20일 순교자축일이자 제1획 샌디에고 한인성당의 날을 맞아, 순교자 백일장을 개최하였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이 참여하진 않았지만 좋은 글이 모였고, 수녀님과 김관숙 크리스티나 자매님께서 수정해주시고 좋은 글로 다듬어 주시어 다른 분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를 죽이고 낮추는 것이 사랑의 길이라면 - 박명열 가브리엘
오늘, 바로 지금 - 오효섭 사무엘
그 분을 향한 사다리 - 박희숙 헬레나
평신도 사도직의 표본인 삶 - 이재흡 바오로
심사평 - 김관숙(크리스티나) 소설가

2009년 10월 18일 주일미사후에 신부님께서 시상해 주셨습니다.


성인 성녀에 관한 포스터 전시회 - 유중철 요한, 이순이 루갈다 동정부부

샌디에고 한인 천주교회의 날을 맞이하여 순교복자 수녀원에서 협찬해주신 성인 성녀에 관한 포스터 전시회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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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중철 요한 동정 부부 순교자(1799 - 1801.11.14)

2. 이순이 루갈다 동정 부부 순교자(1782 - 1802.1.31)

3.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행렬

4. 조선의 사도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5. 주문모 야고보 신부와 이순이 루갈다의 영세

6. 주문모 야고보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는 이순이 루갈다 동정 부부 순교자

7. 영조대황의 탕평책은 국가 정치의 쇄신을 꾀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아들인 당시의 세자를 쌀독에 가두어 죽

게 만드는 비운을 겪었다.

8. 주문모 야고보 신부의 전교활동

9. 이순이 루가다의 모친 권씨 부인이 이순이 루갈다의 혼인을 성사 시키기 위하여 문중 어른들을 초대하여 뜻을 밝힘.

10. 유중철 요한의 집에서 신부인 이순이 루갈다에게 보내는 혼인 예물

11. 동정부부로서 맺어지는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의 혼인 예식 장면

12. 혼인식이 끝나고 9개월여 만에 시댁을 향하여 떠나는 신혼 행렬

13.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동정부부는 4년 동안 혼인 생활 동안 끊임 없는 유혹에 시달렸으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를 바라보다 살얼음 판을 걷는 것 같고 깊은 물가에 서 있는 듯한 위기를 넘기며 깊은 우정을 나누는 오누이 정을 쌓았

다.

14. 당시 왕의 서제 은언군의 부인 송 마리아와 그의 자부 신 마리아가 사학을 했다는 죄목으로 사약을 받고 순교함.

15. 신유년의 전라도 박해로 인해 체포되어 끌려간느 유향검 아오스딩과 그의 식솔들.

16. 주문모 야고보 신부의 순교.
1801년 5월 31일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였다.

17. 강완숙 골롬바와 동료 순교자들의 순교

18. 이순이 루갈다와 시댁 가족들의 체포

19. 유항검 아오스딩의 순교

20. 이순이 루갈다의 어린 시동생들마저 어머니의 품에서 빼앗겨 노비의 신분이 되어 유배되었다. 이들의 집안은 1870년

현재 딸 하나가 살아 있다는 이야기만 전해질 뿐 집안이 완전히 풍비박산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21. 교수형을 받아 목 졸려 죽은 유중철 요한과 유문석 요한의 거룩한 주검

22. 유배형을 받아 유배지로 떠나는 이순이 루갈다와 그의 일행

23. 옥중의 이순이 루갈다가 서울의 친정 어머니로부터 그의 오빠 이경도 가롤로가 체포되었다는 편지를 받고 그의 치마

폭을 뜯어 어머니께 눈물로 답신을 보내고 있다.

24. 이순이 루갈다의 동정 부부로서의 남편이자 오라비인 유중철 요한과 그의 시동생 유문석 요한이 1801년 10월 9일 옥

중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유중철 요한은 자신의 옷섶에 그의 부인 이순이 루갈다에게 "나는 누이를 권면하며 위로

하오.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쪽지를 남겼다.

25. 이순이 루갈다.

26. 토사교문
섭정을 하고 있던 정순왕후 김씨가 천주교를 금하는 교서를 발표했다.

27. 이순이 루갈다의 순교
1802년 1월 31일 전주 숲정이 사형장에서 참수 치명하였다.

28. 유항검 가족묘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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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성월기도

한국 순교자 들에게 바치는 기도

순교자 성월기도
○ 이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 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께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 (영문, Prayer for the Canonization)

Prayer for the Canonization

of the Korean martyrs
Heavenly Father,

through the suffering and death

of the Korean martyrs

You have revealed the mystery of the Cross.

All glory and honor are Yours.

in Your mysterious way

You spread the seed of the Gospel

and helped the Church to grow in Korea.

Thank You for this grace.

Loving Father,

grant the glory of the canonization

to our martyrs so that together with them

we can praise Your love with one voice.

Send Your Holy Spirit to help us

follow their example,

so that we can deepen our faith in You

and be witnesses of the Gospel in our world.

Holy Mary and St. Joseph,

patrons of the Church in Korea,

pray for us.

All Holy Korean Saints,

Pray for us.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 (한글)

시복시성기도문

순교자들의 피와 땀으로
십자가의 신비를 드러내시는 하느님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주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 주시고
교회가 성장하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자애로우신 주님!
자랑스러운 믿음의 선조들에게
시복 시성의 영예를 허락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그들과 한 목소리로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하게 하소서.

또한 저희가
선조들의 순교 정신을 본받아
악의 유혹이 끊이지 않는 이 세성에서
믿음을 굳건히 지키며
복음의 증인으로서 살아가도록
성령의 은총으로 도와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한국 교회의 주보이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한국의 모든 성인 성녀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 (한글) - 상본 뒷장 사진 설명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순교자 대축일(9/20/2009)에 나눠드린 상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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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순교자 대축일(9/20/2009)에 나눠드린 상본 뒷장 사진에 대한 설명 추가합니다.

1. 갈매못성지
갈매못 성지는 전국에서 유일한 바닷가 성지입니다. 갈매못은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안 주교, 오메트르 신부, 위앵 민 신부, 황석두 루가, 장주기 회장 등 다섯 명과 5백여 명의 이름 모를 교우들이 순교한 곳이다. 1845년 조선 땅에 입국한 다블뤼 주교는 조선 교구 4대 교구장이었던 베르뇌 주교의 순교로 1866년 3월 7일 제5대 조선 교구장으로 임명됐다가 4일 만인 11일 그의 복사였던 황석두 루가와 함께 내포 지방에서 체포됐다.

http://galmaemot.kr/

2. 절두산성지
대원군이 자신의 쇄국 정책을 버티어 나가기 위해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함으로써 당시 절두산에서만 무려 1만여 명의 교우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산되지만 정확한 숫자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http://www.jeoldusan.or.kr/

한국 순교자 어록

1. 내 마음에 아픈 것이 하나 있다면 이 나라 불쌍한 백성들의 구령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게 되니 그것만이 마음 아플 뿐이오.
- 민 위앵 루가 신부 –
2. 이제 저는 여러해 동안 신부없이 지내는 나라 조선의 전교를 맡게 되었으니 큰 행복입니다.
– 안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
3. 순교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로다. 반면 자기 집에 앉아 안일하게 죽는것은 진정 두려운 일일 수밖에 없도다.
– 정의배 마르꼬 –
4. 저는 비록 무식하지만 천주께서 나의 아버지이신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만하면 된것입니다.
– 임치백 요셉 –
5. 만일 천주께서 나를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내 힘만으로는 벼룩이나 이가 주는 괴로움조차 잠시라도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련을 참아내는 힘은 오직 천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 손소벽 막달레나 -
6. 우리 주 예수님께서 나처럼 불쌍한 죄인을 사랑하셨으니, 나도 그분을 사랑하는것이 마땅하다.
–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
7. 입으로는 일시적인 형벌을 못이겨서 배교하였지만, 마음에 있는 신앙심은 버리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 신앙심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제 잘못을 통회하고 새로운 형벌을 당할 작정으로 왔습니다.
– 허협 바오로 –
8. 회장들이 마련하여 준 조그마한 집에서 그들은 굶주림과 추위로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마음 놓고 신심생활을 하면서 곤궁과 고통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 이영덕 막달레나 –
9. 우리는 오늘 천국의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은 복된 날입니다.
-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
10. 천주와 성모 마리아의 특별한 도우심으로 오늘날까지 무사히 살아왔으니, 적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괴로움을 이겨냄으로써 그분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 정정혜 엘리사벳 -
11. 그녀의 박애심은 대단하여 어느 때에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하여 자신의 식사를 빠뜨리기도 하였다.
– 유 체칠리아에 대하여 –
12.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이런것 쯤으로 죽지 않아요.
– 유대철 베드로 –
13.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 영혼을 구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배교하면 영혼을 잃게됩니다.
- 원귀임 마리아 –
14. 저도 죽기는 무섭습니다. 그러나 제가 살려면 천주를 배반하라고 하시니,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 김 루치아-
15. 나는 천주를 내가 원하는 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그를 사랑하는데 힘쓰겠다.
– 박아기 안나 –
16. 비록 형벌을 당해 죽는다고 할지라도 ‘천주교는 끝내 옳은것’이다.
– 김현우 마태오 -
17. 제가 천주님의 성스러운 뜻에 순종하도록 놓아두십시오.
– 심아기 바르바라 –
18. 만 번 죽더라도 천주교를 믿어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 김연이 율리아나 –
19. 참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모독하기 보다는 차라리 천 번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
- 지황 사바 -
20. 정산 고을을 다 주신다해도 천주님을 배반하지 못하겠습니다.
– 이도기 바오로 –
21. "그렇구 말구,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을 천주님께 바치는거야"
– 인언민 마르티노 –
22. 신앙을 고백하고 천국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라.
– 이보현 프란치스코 –
23. 사람들의 기원이 태초에 그들을 창조하신 천주님께 있으니, 어찌 그분을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이보현 프란치스코 –
24. 모든 사람들의 임금이시며 아버지이신 참 천주님을 알고 그분을 섬기는 행복을 받았으니, 저희들은 그분을 배반할 수가 없습니다.
– 최창주 마르첼리노 –
25. 제가 천주님의 성스러운 뜻에 순종하도록 놓아두십시오.
– 심아기 바르바라 –
26. 여러해 동안 독실히 믿어 온 신앙인데,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 문영인 비비안나 –
27. 만 번 죽더라도 천주교를 믿어 온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 김연이 율리아나 –
28. 스스로 지은 죄를 생각하니,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
– 한신애 아가다 –
29. 우리 천주님께서 저의 비밀한 생각과 감정과 의향을 보고 계시므로 마음속으로라도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 김광옥 안드레아 -
30. 아우그스티노에게는 빈부귀천이 따로 없었다. 그는 교회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면서 모두에게 모범을 보여 주었으며, 가난한 이웃은 물론 자신의 종들에게도 애긍과 희사를 베풀었다.
-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에 대하여 -
31. "천주님과 성모 마리아님의 도우심에 의지하여 교우답게 살아가는 데 힘쓰도록 하여라."
– 김사집 프란치스코 –
32. 제 일생동안 지은 조가 하늘까지 닿았고, 제마음은 목석과 같아 이와 같이 뛰어난 은혜를 받으면서도 아직 눈물도 흘릴 줄 모릅니다. 아무리 천주님의 인자하심이 무한하다고는 하지만, 어찌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천주님께서 당신의 너그러운 손으로 저를 이끌어 주신다면, 만 번 죽는다해도 무엇이 원통하고 무엇이 불안하겠습니까?
– 이경도 가롤로 –
33. 이 세상에서는 다시 돌아보아도 마음 둘 데가 없어 생각하는것은 오직 주님이며, 제 마음이 향하는 것은 하늘 나라 뿐입니다.
– 이순이 누갈다가 두 언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34. 내 육신은 관장에게 맡기지만, 영혼은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 박경화 바오로 –
35. 이 옥을 복락소로 생각하시오. 밖에 있는 가족들로 인해 분심을 갖지말고 내 뒤를 따르시오. 예수 그리스도님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오.
– 박경화 바오로 –
36. 나의 평생 소원은 천주와 성모 마리아를 섬기는 것이요, 밤낮으로 바라는 것은 천국뿐이로다. 펠릭스 베드로는 능히 주님 대전에 오르기를 바라옵나이다.
–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
37. 나는 영원한 배필이 하늘에 계시니, 누구에게 보다는 그 분에게 순종하여야 하오.
- 이사벨라(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여인)가 남편이 배교하였으니 배교하라는 권고를 듣고 –
38. 10년, 20년 ,100년까지 내가 살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짧은 동안이니, 우리 천주께 충실하기 위하여 온 일생을 형벌 중에 지내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겠소.
- 10년이고 20년이고 고문하겠다는 형리들에게 한 이사벨라(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여인)의 답변 –
39. 우리 교회는 여러 가지 계명 중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를 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저는 누구를 비판하거나 비교할 생각은 없고, 다만 천주교를 신봉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 윤지충 바오로 –
40. 물질적 양식이 육신의 음식인 것처럼 덕행은 영혼의 음식입니다. 온 힘을 기울여 덕행을 닦는데 전심하여 그 결과를 돌아가신 분들에게까지 미치게 하고, 동시에 우리 영혼도 기르는 것은 참된 길이요 바른 도리입니다.
- 윤지충 공술서에서 조상제사에 관한 참된 의미를 설명 -
41. 만약에 제가 살아서건 죽어서건 가장 높으신 아버지를 배반하게 된다면 제가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 윤지충 바오로의 수기에서 –
42. 맞은 매로 쇠약하여진 권상연 야고보는 "예수 마리아"의 이름만 부르고 있었다. 윤지충 바오로는 즐거운 표정으로 나아가며 죽음을 향하여 가는 것을 마치 잔치에 나가듯 하였다. 그리고 어떻게나 의젓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하였든지 천주교인들 뿐 아니라 외교인 들까지도 감탄하였다.
-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보여준 신앙 -
43. 9일 만에 장사지낼 허락을 받고 친척들과 장례식에 왔던 친구들은 죽은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야고보의 시체가 조금도 썩은 흔적이 없고, 그 날 참수 당하기나 한 것처럼 붉고 녹신한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44. 하늘과 땅과 천신과 사람을 창조하신 위대하신 천주를 섬기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무엇을 준다 하여도 그분을 배반할 수 없고, 그분에게 대한 제 의무를 궐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당하겠습니다.
- 권일신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신앙고백 -
45. 사람은 누구나 천주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천주께 대한 본분을 다할 용의가 있습니다.
- 최필공 토마스 -
46. 무죄한 사람들을 사납게 매질하고 여러 달 동안 옥에 가둔다는 것은 무서운 죄가 아닙니까.
- 옥에 갇힌 교우들을 찾아가서 위로와 용기를 주고, 관장에게는 부당함을 직언 하는 박취득 라우렌시오 -
47. 50여 년 동안 나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소. 그러나 지금은 수 천년 동안 목숨을 보전하게 해 주는 약을 가지고 있소. 여러분은 모두 내 말을 내 유언으로 알고 나처럼 천주교를 신봉하시오.
- 원시장 베드로 –
48. 살점은 너덜거리고 두 어깨뼈가 부러지고 등뼈는 으스러져 허옇게 드러났다. 이렇게 참혹한 상태로 그는 옥으로 다시 끌려갔다.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만족과 기쁨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는 옥졸과 아전과 포졸들에게 전도를 하기 시작하였고, 며칠 후에 한 교우가 그를 보러 옥을 찾아 왔으므로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 원시장 베드로가 감옥에서 –
49. 이 죄인은 매맞은 것을 느끼지 못하니, 끝장을 낼 방법이 없소." 그러니까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저는 매맞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천주께서 여기 계셔 저를 직접 굳세게 해 주십니다.
- 원시장 베드로가 형틀 위에서 -
50. "나를 위하여 온 몸에 매 맞으시고 내 구원을 위하여 가시관을 쓰신 예수여, 당신 이름을 위하여 내 몸이 얼음으로 덮여 있는 것을 보십시오.
- 원시장 베드로를 얼려 죽이려고 물을 퍼부어 추운 밤중에 밖에 내놓자 얼음으로 뒤덮인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 -
51. 저도 하느님 안에서 항상 영원히 희망을 가질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려고 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의 손에 맡겼으니 그분을 언제나 믿을 것입니다.
- 최양업 신부의 다섯 번째 편지 중에서 -
52.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쓰라림을 하느님을 위해 참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위로시요, 우리의 희망이시며, 우리의 원의이시니 우리는 그분 안에 살고 죽습니다.
- 최양업 신부의 첫 번째 편지 중에서 -
53.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서 떠나고 또 저의 유일한 동료 안드레아(김대건)와도 떨어져 있는 저의 작은 방에 외톨이로 남아 있습니다마는 하느님과 홀로 서기가 소원입니다.
- 최양업 신부의 첫 번째 편지 중에서 -
54. 이제 발걸음은 가볍게 뛰어 달리고 있으나 얼굴은 무겁게 푹 수그러지고 있습니다. 대단히 불리한 역경과 극도의 빈곤과 허약으로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풍부한 자비심에 희망을 가지고, 지극히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의 섭리에 저를 온전히 맡깁니다.
- 최양업 신부의 세 번째 편지 중에서 -
55. 저의 빈곤과 허약을 의식하고 있는 저는 매우 두렵고 겁이 납니다만 하느님께 바라는 희망으로 굳세어져서 방황하지 않으렵니다.
- 최양업 신부의 세 번째 편지 중에서 -
56. 원컨대 지극히 강력하신 저 십자가의 능력이 저에게 힘을 응결시켜주시어, 제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게 하시기를 빕니다.
- 최양업 신부의 세 번째 편지 중에서 -
57. 만일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이번만은 성공하여 지극히 가난한 우리 포교지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최양업 신부의 네 번째 편지 중에서 -
58. 여하간에 우리의 모든 희망은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고,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것뿐입니다. 그 밖의(소원이 있다면)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죽고 묻히는 것입니다.
- 최양업 신부의 네 번째 편지 중에서 -
59. 저는 서원까지 하면서 간절히 소망하여 마지않았고 또 천신만고 끝에 가까스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손안에까지 들어온 우리 포교지를 어이없게 다시 버리고 부득이 상해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 최양업 신부의 다섯 번째 편지 중에서 -
60.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직도 낙담하지 않으며 여전히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고 하느님의 전능하시고 지극히 선하신 섭리에 온전히 의지하고 있습니다.
- 최양업 신부의 다섯 번째 편지 중에서 -
61.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을 찾아 얻을 수 있겠습니까?
- 최양업 신부의 여섯 번째 편지 중에서 -

한국 천주교회사 요약 (영어)

❦ THE BLOOD OF MARTYRS IS THE SEED OF CHRISTIANS ❦

THE BACKGROUND OF KOREAN RELIGIONS

Korea, since its foundation some 3,000 years ago, has preserved its own unique history and culture. Geographically Korea is located in a peninsula between China and Japan. It developed ties with these countries through cultural exchanges. The traditional religions of Korea were Buddhism and Confucianism though many Koreans believed in Shamanism alongside of these two religions. In the 17th century, a new philosophy, called Shilhak(Neo-Confucian Pragmatism), began to emerge as a practical breakthrough.

1. INTRODCUTION OF CATHOLICISM INTO KOREA

Korea had direct contact with Catholicism through the royal diplomatic envoys who were sent to China four times a year. Through these visits they made contact with Jesuit priests. The priests gave them some Catholic books that they brought back to Korea. Korean scholars became interested in these books and began to study the new religion. They compared it with Neo-Confucianism. The scholars understood and appreciated the new religion.
Finally in 1784, a new era of Catholicism began in Korea. A noble scholar, Yi Byǒk, read Catholic books and through the Korean envoys, tried to get in touch with the foreign priests in Beijing. He encouraged one of his friends, Yi Sǔng-hun, to go with his father, who was a royal envoy, to Beijing. Yi Sǔng-hun showed great intelligence and could read the difficult Chinese literature at a very young age.
In the winter of 1783, his father was assigned to go to Beijing as a chancellor and Yi Sǔng-hun accompanied him. During his forty days in Beijing, Yi Sǔng-hun visited the Catholic Church and the Western priests. He was baptized in February of 1784 with the name Peter. When Peter returned home he organized a Catholic faith community made up entirely of lay people. The Catholic Church in Korea began with lay people. In March of 1785 government officials discovered the newly founded Catholic community. Two years later, Yi Sǔng-hun organized a new Catholic group and Kwǒn ll-shin, Yi Tan-wǒn, Yu Hang-gǒm and others (about 10 people) were appointed as priests. They offered Sunday Masses and administered the sacraments. However, they soon realized that this was irregular and stopped the practice. They sent Yun Yu-il to Beijing in 1789 to consult with the bishop and he advised them to seek the entry of priests into Korea.
Kwǒn ll-shin and his associates repeatedly requested the bishop of Beijing to send priests and a Chinese priest, Jean dos Remedios, was finally assigned. However, he failed to enter Korea as he was unable to contact the guide sent to escort him.
A new persecution began when Yun Chi-ch’ung Paul, a man of the nobility, refused to offer sacrifice to his deceased mother. The local officials were displeased with his attitude and sent repeated reports to the king, denouncing the Catholic religion as a heresy. The king ordered Yun Chi-ch’ung to be sentenced to death on December 7, 1791.

2. THE PERSECUTIONS

In its first hundred years, the Korean Catholic Church experienced continuous persecutions during which 10,000 believers and ten priests were killed. 103 of these martyrs were canonized in 1984. Some of the persecutions were local and some national; some did not last long while others continued for a number of years. In particular, four persecutions were noted for their severity.

❦ The Great Persecution of 1801
This was the persecution carried out by Queen Regent Kim Chǒng-sun. She was the Grandmother of King Sun-jo. Her mission was “to root out the Evil Teaching (of the Catholic Church) once and for all and to leave no trace of it at all.” Among the three hundred who died as a result of this persecution was a Chinese priest, Father Chu Mun-mo, who in 1794 was the first priest to enter Korea. Many founders of the Korean Church and some female members of the Royal Family were also killed.

❦ The Great Persecution of 1839
This persecution began when the presence of French missionaries in the country was discovered. By 1801, there were about 10,000 people who embraced the Christian faith, but this growth was soon obstructed by the persecutions. Korean Catholic attempted to contact the Bishop of Beijing and the Holy See to alert them of their situation. They constantly appealed to the Holy See to send missionaries. They also wanted to have their own diocese. In 1831 the Congregation of Propaganda Fidei in Rome established the Joseon Apostolic Vicariate and from 1835 French missionaries began to enter the country. Most of the two hundred believers who died in this persecution were from the middle class and seventy of them were canonized. The canonized include three French priests.

❦The Great Persecution of 1846
The third “Great Persecution” broke out after the arrest of the first Korean-born priest, Father Kim Tae-gǒn Andrew. Of the three young men who had been sent to Macao to study for priesthood in 1836, Ch’oe Pang-che died abroad from an illness and the other two, Kim Tae-gǒn and Ch’oe Yang-op, were ordained. Father Kim died at the age of twenty-five as a martyr but Father Ch’oe continued to minister in Korea till his death in 1861. Besides Father Kim Tae-gǒn, eight others who were martyred at that time were later canonized.

❦The Great Persecution of 1866
The final “Great Persecution” took place at a time when there was fear of Western invasions. Thousands were arrested and the number of those who died is not known. Twenty-four of these martyrs were later canonized and among them were Bishop Berneux, Bishop Daveluy and seven French priests. The number of Catholics at that time was 175,000.

In 1984 on the occasion of the celebrations in Seoul to mark the 200th anniversary of the founding of the Korean Church, Pope John Paul II canonized 103 martyrs who died in the persecutions of 1839, 1846 and 1866. 124 Korean martyrs are currently undergoing the process toward canonization.
Reference Link : http://english.cbck.or.kr/

한국 천주교회사 요약 (한글)

2009년 9월 순교자의 달에 샌디에고 한인공동체에서 만들었습니다. 뒤에 PDF 첨부파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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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 신자의 씨앗 ❦

1. 한국 천주교의 주요인물

*창립의 주역 이벽(1754-1785)
한국 천주교회 창립의 주역을 담당했던 이벽(李檗)은 1754년(영조 30년) 경기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학문에 뜻을 두고 경학(經學)연구에 몰두하다가, 새로운 학문인 서학(西學)을 접하게 되자, 기존 학문인 유학(儒學)에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었다. 1779년 겨울, 당대의 저명한 학자인 권철신이 이름있는 학자들과 더불어 천진암 주어사에서 강학회(講學會)를 연다는 소식에, 그는 이 모임에 참석하여 천주교 도리의 위대함을 발견하였다. 1784년 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 온 이승훈에게 천주교 서적을 건네받은 이벽은 두문불출하고 이 책들을 숙독하고 나서, 곧 선교 활동에 나서 정 약전•약용•약종 형제들과, 유명한 학자 권철신•일신 형제들도 입교 시켰다. 1784년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래 초기 천주교 신자들은 모진 박해를 받았다.

*초기한국 교회의 건설자 정하상(1795-1839)
정하상(丁夏祥)은 20세가 되던 해, 홀로 서울에 올라와 청어(淸語) 통역관 으로 북경을 왕래하던 유진길과 손을 잡고 교회의 재건과 성직자 영입에 힘 쓰기 시작했는데, 청나라 내의 사정으로 인해 성직자 영입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아홉차례나 북경을 왕래하며 한국교회 재건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정하상은 기해년 박해가 시작되자 천주교회 교리의 공명정대함을 우의정에게 알리고자「상재상서(上梓相書)」를 지어, 천주교 박해의 부당성을 주장하였다. 이 「상재상서」는 황사영의「백서(白書)」와 아울러 우리 교회사의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유교 사상을 성경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천주교에 대한 그릇된 비난을 통쾌하게 논박하고 있는 점에서 우리겨레의 손으로 직접 쓰여진 최초의 「호교론」이라고 할 수 있다. 성직자 영입에 대한 그의 노력은 1837년 11월 앵베르(Imvert)주교를 맞이함으로 결실을 보게 되고 이는 조선교회에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해 주게 된다. 그 후, 앵베르 주교의 충실한 동반자가 되어 전교활동에 열중하다가 1839년 체포되어 갖가지 고문과 형벌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증거 하다 45세때 참수형을 당하게 된다.(기해박해) 성직자의 영입과 교회의 재건을 위해 일생을 바친 정하상의 업적은 한국천주교회사에 영원히 빛날 것이다.

*위대한 성웅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1821-1846)
1821년 충남 당진군에서 신앙심이 깊은 집안에 태어난 그는 1836년, 15세 때 조선인 사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프랑스인 모방신부의 눈에 띄어 신학생으로 최양업, 유방제와 함께 중국 마카오로 유학길에 오른다. 1844년 12월에 부제품을, 이듬해 8월 상해 부근 김가항(金家港)신학교 성당에서 조선교회 창설 후 60년 만에 우리 겨레의 첫 사제가 되었다. 1845년 페레올 주교와 함께 비밀리에 입국하여 서울과 지방을 순회하며 전 교활동을 펴다가 뜻하지 않게 신분이 탄로나서 체포되고, 서품받은지 겨우 1 년이 되던 해인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행복을 얻고자 하면, 천주교 신자가 되라”고 군중에게 힘차게 외치고, 군문효수형을 당하게 된다. 뛰어난 학덕과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진리를 증거한 김대건 신부의 순교정신은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고 있다.

2. 천주교 4대박해

*신유박해 1801
천주교에 대해서 온화한 정책을 써 오던 정조가 별세한 뒤, 순조가 11세로 왕위에 오르면서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여 벽파가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벽파가 정순왕후를 움직이면서 조선 천주교회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박해의 진짜 이유는 남인•시파의 숙청이었다. 이 사건으로, 중국인 천주교 신부이자 한국교회 최초의 선교사인 주문모를 비롯하여 만천 이승훈, 정약종(다산 정약용의 형), 여성 평신도 지도자인 강완숙 등이 사형 당했고, 한때 천주교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념의 차이로 멀리한 정약용 등은 귀양보내져, 박해 피해자는 수백 명에 달하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오가작통법을 통해 다섯 집 중 한 집에서 천주교 신자가 적발되면 모두 처벌하는 가혹한 연좌제를 실시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애꿎은 피해를 보았다. 이 옥사로 만 1년 내외에 박해 받아 죽은 신도만도 300명이 넘었다.

*기해박해 1839
신유박해 이후로 교세가 몹시 위축되었으나, 그 후 안동 김씨가 세도를 누리면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없었다. 그동안 교구가 천주교 조선교구로 독립(1831년9월9일)하였으며,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는 서양인 천주교 신부로서는 처음으로 모방(Maubant), 샤스탕(Chastun), 앵베르(Imbert) 등이 들어와서 천주교의 교세가 회복되고 신도는 증가되어 갔다. 신자가 만명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놀라, 조정에서는 다시 박해 의논이 일어났고, 드디어 1839년(헌종 5년)에 제2차 박해를 전개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헌종의 할머니인 명경대왕대비 김씨를 중심으로 한 안동 김씨에 대립하여 헌종의 모후(母后)인 효유왕대비 조씨의 척족 풍양 조씨의 벽파가 새로 등장하면서 무자비한 박해 선풍이 휘몰아쳐 3인의 서양인 천주교 신부를 비롯한 200여명의 천주교인이 투옥•처형되었다. 여기에서 순교한70명이 이후에 시성(諡聖)되었다.

*병오박해 1846
1846년 6월 5일(음 5월 12일) 김대건 신부의 체포를 계기로 시작되어 9월 20일(음 7월 30일)에 종결된 천주교 박해를 말한다. 기해박해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대체로 평온하였으나 박해의 근거는 남아있었다.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는 1846년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Ferreol) 주교의 지시로 외국의 선교사가 입국하기 쉬운 새로운 해로를 개척에 나서야만 했다. 그는 이 지시에 따라 서해안 등을 항해하다 체포되었다. 이 박해로 형벌을 받고 순교한 사람은 성직자 1명, 평신도 8명 등 모두 9명으로, 기해박해 때의 순교자들과 함께 1984년에 모두 시성되었다.

*병인박해 (丙寅迫害) 1866
1866년(고종 3)부터 1871년까지 계속된 한국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이다. 이 박해는 네 차례에 걸쳐 전개되었는데, 8000여 명 이상의 순교자를 내었다. 대원군은 원래 천주교에 대해 묵시적으로 이해를 지녔던 인물이었다. 서양세력의 침략적 접근이 많아지자, 대원군은 정치적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쇄국양이와 사교금압의 정책으로 전환하고 천주교 탄압을 결심하여 박해령을 선포하였다. 이때 천주교신자는17,5000명에 달했다고한다. 이때 순교한 24명은 1968년에 복자(福者), 1984년에는 성인(聖人)에 올랐다.

*103위 성인은
기해박해 70명 + 병오박해 9명 + 병인박해 24명 = 103위 성인

3. 순교자 124위 시복준비

*124위 순교자 시복시성 심사중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이 되는 1984년의 103위 시성식은 한국 천주교회의 큰 기쁨이요 영광이었다. 그러나 시성식이 끝난 직후, 여러 신자들은 한 가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신해박해(1791)와 신유박해(1801)의 순교자들이 아직도 시복 시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해인 2001년 10월 18일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 안건을 통합적으로 추진해 온 결과, 2004년 7월 5일 시복 조사 법정을 개정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법정이 지난 2009년5월 20일 폐정돼 모든 서류가 교황청 시성성에 전해짐에 따라 이제 복자 124위 탄생의 숙제는 ‘기다림’으로 남았으며, 우리 신자들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의 지침에 따라 “시복 시성을 위한 기도”“103위 성인 호칭기도”를 바치며, 우리 일상의 삶 안에, 우리 선조 순교자들의 피끊는 신앙심을 본 받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추가정보: 성당웹사이트 가톨릭정보->한국 순교성인 및 성지
http://www.kccosd.org/103

한국의 성지 - 김철호작가님 slide